여행/산티아고순례길 돌담소담
성가대에서 부를 법한 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침 7시가 되자 방불이 켜졌다. 이미 일어나 있던 상태였는지라 잘됐다 싶어 씻고 나서 빨래를 걷으러 갔는데 일출 무렵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은 벌써부터 시끌벅적. 아침 먹을 생각은 없어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니 7시 40분. 오랜만에 7시대에 숙소를 나선 것이었다. 어제 아스토르가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침에 아스토르가를 충분히 즐기고 갈 생각이었다. 급경사진 곳을 서서히 내려가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을 감상하고 로마성벽이 남아있는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성벽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점점 규모가 커졌다. 중간에 허물어져 이그러진 형태도 보였는데, 그것도 나름의 멋으로 느껴졌다. 저런 모습들이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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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길의 출발 역시 도로길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레온 전후해서 계속 도로와 함께 가는 길이라 얼른 벗어나고 싶었지만 금방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순례길 들어 두번째 안개낀 아침을 맞았다. 안개가 상쾌하게 느껴졌고, 안개가 뿌옇게 도로를 가려주어 걷기에는 좋았다. 오래지 않아 안개가 걷히고 파아란 하늘이 나타났다. 도로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고,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차들이 지나다닐 때 가끔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맑게 드러난 풍경을 보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도로 옆을 걷는 도중 오솔길 비슷하게 나 있는 곳이 있어서 그 구간을 걷게 됐다. 길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사막 속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도로를 걷다 보니 도로에 거리를 표시한 게 보였는데, 걸..
사실 전날 레온에 오후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오늘 여유있게 둘러본 다음 잠깐만 길을 걷고 마무리를 하려는 게 이날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바뀌기 쉽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길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는 와중에 곳곳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대놓고 피는 건 한국과 다르긴 한데... 아침 햇살에 비친 레온 대성당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서 레온을 빠져나가는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밑에는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는 차에 외국인 아줌마가 내 모습을 보고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풍경사진을 찍으려고 했기에 괜찮다고 했는데도 계속 찍어준다길래 여러 배경으로 찍게 됐다. 사진..
어쩌다보니 레온까지 도착했다. 레온 전 마을에서 레온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묵으려 했는데, 그 마을은 레온과 붙어있다시피한 곳이라 레온과 다름이 없었다. 어쩐지 알베르게 목록에도 나와있지 않더라니... 렐리에고스에서 오전 6시가 채 되기 전에 깼다. 그 전에 여러번 잠에서 깨기도 했고, 그냥 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 창밖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시계를 확인했는데, 7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까 시간을 잘못 본줄 알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준비를 서두르다 나와서 시간을 다시 보니 7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일출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분명 어제까지는 8시가 넘어도 어둑어둑했는데 말이다(알고 보니 이날은 유럽의 서머타임이 끝난 날이였..
사하군에서 하루 쉬고 순례길을 나서니 그 자체로 기분이 경쾌해졌다. 컨디션이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역시 순례길은 걸을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마음도 편해진다. 배낭의 무게는 여전히 묵직하게 느껴지지만 내가 싸온 배낭의 무게를 짊어지고 길을 걸을 때 가장 본질에 충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번 길은 도로를 옆에 두고 나란히 걷는 구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길의 형태는 동일하면서 주위의 풍경만 변했다. 비록 차도가 옆에 있었지만 차들이 주로 다니는 메인도로는 아니어서 신경이 많이 쓰이진 않았다. 때때로 빠른 속도로 휙 지나갈 땐 놀라기도 했지만 주위 풍경을 충분히 즐기는 걸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첫 마을에 들어설 즈음 두 갈림길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나왔다. 일단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떤 외국여자가..
순례길에 들어와 20일 만에 휴식을 갖게 됐다. 전에 이라체 포도주 사건도 그렇고 이번 휴식도 그렇고 한번쯤 일정이 계획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모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정이었다. 길을 걷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길을 걷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반복해서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게 거의 없어서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저녁때는 한국인들이 모여서 음식을 해먹고 왁자지껄 떠드는 것을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외로워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방식대로 하고 있는 것일 뿐인데 왜 그랬을까? 외국인들이 아닌 같은 한국인들끼리 알아들을 수 있는..
까리온에서 오늘 도착한 사하군까지는 40킬로가 넘는 거리였다. 처음부터 사하군으로 갈 생각은 아니었다. 일정표에는 레디고스까지 나와 있었고, 일단은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출발한 길이었다. 이번 일정은 초반에 중간 마을이 없어 긴 거리를 가야 했기에 먹을 것 등을 미리 준비했는데, 그러다보니 배낭무게가 평소보다 무거워진 상태였다. 그래도 가면서 먹다 보면 조금씩 가벼워질테니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까리온을 벗어나는 길에 전날 봤던 강을 건너게 됐다. 어제 오후 햇살에 비칠 때와 느낌이 달랐기에 미리 와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지나니 성당 같이 보이는 큰 건물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쉼터가 있었다. 건물의 자태도 좋았거니와 그 옆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잠시 배낭을 벗어두고 구경을 했다. 주변..
이번 여정의 날씨도 맑음맑음! 숙소에서 빨리 나가라는 눈치가 없어서 여유롭게 출발을 했다. 마을에서 나갈 때 잠시 헤매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마을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 등 뒤에서 붉은 기운이 확 느껴졌다. 돌아보니 태양이 형체를 점점 온전히 갖추면서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다 오늘의 순례길을 시작했다. 도로 옆의 길을 나란히 걷다 문득 지금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찍고 싶어졌다. 마침 옆을 지나가는 순례자 아저씨에게 사진찍는 걸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뒤에서 내가 걸어가고 있는 연출샷(!)을 찍어줬다. 예전부터 한번 찍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렇게 찍게 된 것. 찍은 것을 건네받고 그와 나란히 걷다가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는 프랑스에서 온 필립이었고 나이는 55세. 휴가기간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