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에서 부를 법한 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침 7시가 되자 방불이 켜졌다. 이미 일어나 있던 상태였는지라 잘됐다 싶어 씻고 나서 빨래를 걷으러 갔는데 일출 무렵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은 벌써부터 시끌벅적. 아침 먹을 생각은 없어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니 7시 40분. 오랜만에 7시대에 숙소를 나선 것이었다. 어제 아스토르가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침에 아스토르가를 충분히 즐기고 갈 생각이었다. 급경사진 곳을 서서히 내려가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을 감상하고 로마성벽이 남아있는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성벽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점점 규모가 커졌다. 중간에 허물어져 이그러진 형태도 보였는데, 그것도 나름의 멋으로 느껴졌다. 저런 모습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갑자기 경주가 떠올랐고, 한국에 돌아가면 경주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벽을 따라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웅장하고 섬세한 건물이 보이길래 뭔가 했더니 대성당의 뒤쪽 모습이었다. 목이 빠져라 올려다보며 서서히 앞쪽으로 이동하니 와우! 어제도 잠깐 봤지만 장대하고 멋진 대성당의 자태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아스토르가-대성당
아스토르가 대성당

 

규모도 크지만 곳곳에 보이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과 장식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부르고스나 레온의 대성당보다 규모는 다소 작을지 몰라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자태였다. 여기저기서 둘러보며 감상을 하는데 이른 아침이라 춥기도 하고 계속 올려다봐서 목도 아프기도 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충분히 봤다 싶을 때쯤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가우디가 만든 주교궁이었다.

 

가우디-주교궁
가우디 주교궁

 

주교궁은 건물 자체도 독특하면서 아름다웠고, 각 창문의 문양들도 반복과 변형이 어우러지면서 이 건물만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가우디가 지었다고 해서 더 유심히 보기도 했지만 건물 자체의 멋뿐만 아니라 바로 옆의 대성당과 나란히 위치하여 멋진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그 다음에 본 것은 시청 건물. 시청의 전면은 매우 화려하면서도 특색 있게 지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 건물도 어젯밤에 잠깐 스쳐 지나가며 봤는데, 밝을 때 보니 더욱 볼 만했다.

 

 

아스토르가의 주요 건물들을 보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시청 광장 주변에 바가 여럿 있었고, 괜찮아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아침 메뉴를 시켰다. 곧 차와 또르띠야, 오렌지주스가 나왔고, 따뜻하고도 맛있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까지 먹고 나서야 아스토르가를 나섰다. 어차피 오늘은 오래 걸을 예정이 아니었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천천히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다 마을 하나를 만났고, 한번 둘러보고 싶어 들어가게 됐다. 거기엔 지붕 색깔이 푸른 계열을 띠고 있는 성당이 있었는데, 꽤나 특색 있게 보였다. 좀 더 둘러보다 또 배가 고파 남아있던 초콜릿을 마저 씹으며 마을을 나섰다.

 

 

길은 도로 옆으로 이어졌고, 조금 가다보니 새로운 마을이 보였다. 이 마을에는 큰 놀이터가 있었는데, 할머니와 손주로 보이는 남자애 두명이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게 보였다. 아직 어려보이는 동생은 공 쫓아가는 것도 벅차보였는데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잠시 지켜보다 다시 길을 나섰고, 마을의 출구부터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가운데 길이 나 있고, 양 옆에 작은 나무들과 풀들이 뒤섞여 펼쳐졌다. 멀리 높은 산들도 보였다. 풍경이 변하면서 새로운 구간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기분이 살짝 들떴다. 길을 걷다가 오른편 저멀리 제법 규모 있는 건물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고, 저곳이 안내서에서 나와 있던 다른 루트의 마을인 것 같았다. 본 김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가던 길을 벗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얼마 간의 시간을 거쳐 마을에 다다랐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니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으로 보아 관광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입구부터 주변 건물들이 황토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황토빛 건물들은 길 양쪽에 나란히 쭉 이어졌다. 아까 멀리서 봤던 건물을 찾으러 가보니 역시나 성당 건물이었다. 성당은 지붕 형태로 이어져 있어 꽤나 독특하게 보였다.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다가 빠져나오게 됐다. 대단한 것까진 아니었어도 충분히 독특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어서 그냥 지나쳤으면 아쉬웠을 곳이었다. 여유가 있으니 이렇게 보러 온 것도 있었는데, 충분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길을 걷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목적지 산따 까달리나 데 소모사에 도착했다. 아직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마무리 장소로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알베르게가 같은 가격으로 나와 있었는데, 시설을 살펴보고 샤워하기에 더 나은 곳으로 골랐다. 여기는 자율적으로 방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고, 그와는 다른 방에 자리를 잡았다.

 

 

세탁을 하고 카운터로 나갔는데, 함께 운영하는 바에선 간단한 먹을 거리만 팔고 있었다. 물과 빵 하나를 2유로 주고 샀다. 물은 마트에서 사면 1유로에 다섯병도 살 수 있지만 이런 데서는 별 수 있나. 그래도 빵은 다행히 맛있었다. 

 

샤워를 하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상점은 없고 시골 느낌은 나지만 그렇게 작은 마을은 아니었다. 조용한 휴양지에 와서 마실 걷는 느낌도 났다.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나니 컨디션도 좋아졌다. 

 

 

곧 저녁 시간이 되었다. 내가 머무는 곳은 식당도 하고 있었는데, 영 시끄러워서 이곳은 제외하고 다른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샌드위치 믹스토라는 것을 시켰는데, 식빵 양면에 햄이랑 치즈를 함께 구운 것이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가성비는 좀 떨어지는 느낌. 경험으로 먹어본 건 괜찮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방이 두 개가 있었는데, 늦게 들어온 남자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독방처럼 쓸 수 있게 되어 편안한 잠자리가 될 듯 싶다. 오늘 하루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충전을 잘 했으니 내일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 즐겁게 걸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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