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티아고순례길 잼유이칸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에 깨보니 새벽 3시. 피곤함이 물밀듯이 느껴졌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자는 다른 사람도 코골이도 합세해 방은 코골이 소리와 진동으로 가득 찼다. 귀마개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뿐만 아니라 그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잠을 설쳤다는... 알베르게에서의 잠자리는 순례자들에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이기에 비용은 꽤나 저렴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도미토리에서 함께 자기 때문에 잠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번처럼 주위에 코콜이를 크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 잠자리는 괴로워진다. 잠을 제대로 못자면 다음날 길을 걷는 데도 지장을 준다. 잠을 잘잤는지 여부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크게 좌우한다. 비몽사몽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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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일어나 준비는 했는데 나갈 때 시간을 보니 8시가 다 되었다. 이것저것 챙기고 발 구석구석에 바셀린도 꼼꼼히 바르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제일 먼저 일어났는데 나간 것은 거의 마지막이었다. 밖은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으니 아마 그 전에 준비를 마쳤어도 비슷하게 나갔을 것이다. 어슴푸레한 풍경의 순례길에는 이미 많은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매번의 모습이 다른 것도 순례길을 걷는 재미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길을 걷는 데 불편함이 느껴졌다. 길을 온전하게 느끼는 데 방해가 된 느낌이랄까.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의도적으로 천천히 걷는 것이다. 저렇게 얘기하며 걷는 사람들은 보통 빨리 걸어간다. 얘기하는 데 정신이 ..
순례길 들어와 처음으로 편안하게 잤다. 컨디션도 좋았다. 여유를 좀 부렸는지 출발시간은 좀 늦어지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제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스떼라보다는 좀 더 나아간 지점에서 출발하니까 오히려 시간은 좀 벌었다고 생각하면 많이 긍정적인 걸까. 짐을 챙기고 출발하니 얼마 안 가 이라체 수도원과 와인 수도꼭지를 볼 수 있었다. 밝은 시간에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다. 어제는 이른 시간이라 닫혀 있던 대장간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물품들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모녀로 보이는 순례자들이 갈길을 멈추고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서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꼬스로 가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어제와 다른 코스를 선택했다. 어제 올랐던 산길은 왔다갔..
오늘은 순례길 전체 일정 중 유일하게 빽도(!)를 하게 되었다. 혼란과 좌절, 기쁨과 환희가 뒤섞인 6일차 순례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간밤에 잠자리가 좋지 않았다. 위층에 자고 있는 사람이 계속 뒤척여 일찌감치 잠에서 깼다. 일어난 김에 일찍 나갈 생각으로 준비를 마치고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숙소 밖으로 나와보니 낯설지 않은 순례자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눈 마카오에서 온 순례자였다. 그렇게 얼굴을 본 것으로 자연스레 같이 길을 떠나게 됐다. 순례길 들어 첫 동행이었다.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에스떼라가 꽤 규모가 있는데다 주변이 잘 보이지가 않으니 빠져나가는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어둠..
어제 조식용으로 사놓은 빵과 주스를 먹고 오늘의 순례길에 나섰다. 이번 코스는 그동안에 비해 거리가 비교적 짧고 걷기에 순탄한 곳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심한 경사라던지 힘들게 느껴지는 구간은 없었는데, 다만 어깨가 아프고 물집 잡힌 부분이 계속 쓰라려 내리막이나 평지를 걷는데 오히려 애를 많이 먹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오르막이 걷기가 좋고 발도 덜 아프다. 그래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거리가 짧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길에 들어서는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마을을 빠져나와 조금 나가다 보면 넓은 들판이 나오고 길게 이어진 들판 사이로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 나 있는 길을 순례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전부터 더운 날씨에 다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을 먹고 ..
팜플로나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일찍 나가고 싶었으나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8시가 넘어 있었다. 이전 마을에서는 숙소를 벗어나면 곧바로 순례길로 접어들었는데 팜플로나 같은 큰 도시에서는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게다가 길도 조금 헤매다 보니 겨우 도시를 빠져나왔을 때 이미 1시간 가까운 시간이 가버렸다. 그렇게 길을 떠나 들린 첫 마을에서 물을 사고 잠시 쉬었다. 오늘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통증으로 벌써 지치기 시작한 것도 있었지만 어제부터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 부실하게 먹은 게 복합적으로 몸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점심 때가 되어 들린 마을에서 햄을 곁들인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먹고 마실 게 더 땡겨 파인애플 주스도 추가로 먹었다. 그러고 나니..
순례길 3일차.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도시 중 하나인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도시라 불릴 만한 곳들이 몇 군데 있다. 대부분 규모가 크고 유서가 깊은 도시들이다. 그 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도시가 오늘 가게 될 팜플로나다. 순례길을 걸은지 아직 3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도시가 그리웠던 걸까. 왠지 모르게 설렘이 느껴졌다. 간밤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머문 숙소가 공립이었기 때문에 가격은 저렴했지만 그만큼 시설도 부실했다. 낡아보이는 2층 침대가 겉으로 볼 때는 잘 몰랐지만 실제로 위아래로 사람이 누워있으니 삐걱거림이 심했다. 내 위층에는 건장한 스페인 남자가 차지했는데, 이 친구가 밤새 뒤척거리고 게다가 심한 코콜이까지 하는 바람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전날처럼 어둠 속에서 자그마한 불빛들이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순례자들이 하나씩 자리를 떴고 주위은 다시 조용해졌다. 눈을 뜬 김에 어제 마저 쓰지 못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원래 일기는 그날 바로 쓰려고 했는데 순례길을 걸어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일기를 쓰다 졸음을 못 이기고 그만 잠들어 버렸다(이후로도 이런 날들이 많았다). 잠깐 바깥바람을 쐬려고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숙소를 나왔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하늘엔 아직 달이 떠 있었다. 숙소가 있던 수도원 건물을 천천히 돌다가 추위가 슬슬 느껴지기 시작해 숙소 앞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숙소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져 있는게 아닌가! 당황하면서 계속 열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른 시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