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티아고순례길 잼유이칸
아침부터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구름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금방 더워져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온몸으로 생생히 느끼며 걷게 되었다. 17일차. 이제 까미노의 중반부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생활리듬이 익숙해졌고 드디어 발에 밴드를 붙이지 않고도 걷게 된 첫 날이기도 했다. 아직 완전하진 않아도 발가락의 통증은 거의 사라져 걸을 맛이 난다고 할까. 이때쯤 오니 발이 길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신발도 길이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방심은 금물! 끝낼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까스뜨로헤리스를 떠나 고원 위로 올랐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고, 넓게 펼쳐진 주변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이후부터는 사방이 들판과 언덕의 연속이었다. 절로 사색을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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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에 시작한 순례길의 하늘은 아직 어스푸름했다. 곧 해가 뜨려는 듯 보였고 마을을 막 벗어날때 쯤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조금씩 붉은 기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앞쪽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눈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뿌했다. 이런 안개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안개 속에서 걷다보니 어렸을 적 안개가 뿌옇게 낀 논밭을 걸었던 기억이 났다. 신비롭고 설레었던 느낌이 다시 피어오른다. 그렇게 걷다 문득 뒤를 보았다. 해가 안개 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몹시 인상적인 풍경에 홀린 듯 바라보다 마침 같은 숙소에서 머물렀던 순례자 아저씨를 만나서 그에게 사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을 찍은 그는 한번 보라고 했고 난 풍경을 담은 것만으로도 기꺼워 대충보고 집어 넣었다. 나..
부르고스를 바로 떠나기엔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도시의 규모가 커서 짧은 시간 안에 다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산타 마리아 성당은 가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 예배도 보고 가기로 했다. 아침햇살에 비친 성당의 모습은 어제 볼때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담고자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누구지 하고 봤는데 매그너스라고 본인을 밝히자 그제서야 알아봤다. 전에 같이 순례길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이번엔 안경을 써서 생소했던 것. 어쨌든 다시 봐서 무척 반가웠다. 매그너스는 부르고스가 순례길의 종착지라고 했다. 이후엔 빌바오로 넘어간다고 하더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는 얘기를 끝으로 그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반갑게 헤..
오늘 순례길에서는 저번 로그로뇨에 이어 또다른 대도시를 볼 수 있다. 그곳의 이름은 부르고스. 아헤스에서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중간에 산을 올라가면서 큰 돌들이 박혀 있는 땅을 만나긴 했지만 그 외엔 무난하게 갈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려지더니 알베르게를 나서자마자 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두방울 내리길래 배낭커버만 씌우고 나섰는데 곧 비가 몸이 젖을 정도로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우의까지 장착한 후 길을 나서야 했다. 비를 맞으며 출발한 두번째 여정. 비 자체의 양은 많지 않았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시야를 가렸다. 비가 오면 날이 흐려져 주변 풍경이 희미해진다. 특히 바람이 거세지면 앞만 보고 가기가 쉬워져 목적지향적인 걷기가 되버리기 십상이..
13일째 순례길을 걷다 보니 느낌이 비슷한 곳이 많아져서 오늘 걸어온 구간구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 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는 포인트는 분명 있었다. 간만에 고속도로 옆길을 벗어나 넓은 고원 지역으로 나왔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의 모습에 감탄이 연신 흘러나왔다. 주위에 산이 있음에도 사방이 넓게 펼쳐져서 하늘의 모습을 360도로 볼 수 있었다. 파아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다양한 구름의 모습과 어우러졌고, 세찬 바람은 구름을 빠르게 이동시키고 있었다. 넓디넓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따라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이번 길에는 오랜만에 오르막다운 오르막도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이전 마을에서부터 산을 넘어가는 코스가 있었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다양한 길과 풍경이 연..
어제 숙소 와이파이가 갑자기 끊기는 바람에 오늘 일정정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목적지만 확인한 채 떠나게 됐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떠난 길은 발의 통증이 다시 느껴지면서 처음부터 걷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도로 옆을 지나야 했기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금방 도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자연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정은 중간에 가장 많은 마을을 경유했다. 목적지인 벨로라도까지 중간에 무려 5개의 마을이 있었다. 덕분에 길가에서 앉아 쉬지 않아도 됐다. 들리는 마을마다 쉬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 또 마을 사이사이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들을 맘껏 즐기기도 했다. 출발할 때 날이 흐렸기에 비가 오나 싶었는데 다행히 비는 안오고 ..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새벽에 깼을 때 비오는 소리가 들렸다. 숙소를 나갈 때쯤 날이 개는 듯 해서 비가 안 올꺼라 생각했지만 마을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얼른 커버를 덮어 씌웠다. 다행히 그 이상 더 내리진 않아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날이 점점 흐려지더니 빗방울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발상태도 좋지 않아 빨리 걷지는 못한 채로 첫 마을 아소프라에 도착했다. 잠시 쉬려고 성당 앞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점점 많이 내리는 비를 보며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됐다. 이 곳 아소프라는 알베르게가 유명했는데,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2층 침대인 것과 달리 여긴 단층침대였다. 게다가 2인 1실! 계속되는..
어느덧 산티아고 순례길에 접어든 지 10일차. 오늘은 나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의 여정이다. 안내서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순례길 중 가장 평탄한 구간이면서 시간도 적게 걸리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여느때보다 많이 늦은 9시가 넘은 시각에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전날 머무른 곳이 사설 알베르게였기 때문에 체크아웃 시간이 공립처럼 이르지 않았던 덕분도 있었다. 잠을 잘 잔 편이어서 컨디션은 좋았는데, 발에 여전히 통증이 있어 천천히 걷기로 했다.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주변에 걷는 순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길 위에서 저벅저벅 내 발소리를 들으며 걷는 느낌도 나름 괜찮았다. 다음 마을인 벤또사로 가는 길 옆에는 고속도로가 길게 나 있었다. 그냥 걷기엔 심심해서 노래를 흥얼거리다 나중에는 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