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식용으로 사놓은 빵과 주스를 먹고 오늘의 순례길에 나섰다. 이번 코스는 그동안에 비해 거리가 비교적 짧고 걷기에 순탄한 곳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심한 경사라던지 힘들게 느껴지는 구간은 없었는데, 다만 어깨가 아프고 물집 잡힌 부분이 계속 쓰라려 내리막이나 평지를 걷는데 오히려 애를 많이 먹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오르막이 걷기가 좋고 발도 덜 아프다. 그래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거리가 짧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길에 들어서는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마을을 빠져나와 조금 나가다 보면 넓은 들판이 나오고 길게 이어진 들판 사이로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 나 있는 길을 순례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전부터 더운 날씨에 다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그런지 점심 때가 되어도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다. 다만 강한 햇빛과 발상태로 인해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따로 점심은 먹지 않고 마을 구경을 하다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에는 색다른 풍경들이 나타났다. 지어진지 얼마 안된 듯한 다리를 지나니 고속도로가 나왔다. 도로는 넓은데 차는 별로 다니지 않아 한적한 느낌이었다. 

 

 

얼마간 들려오는 차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다시 넓은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 한쪽에는 와인밭이 보였다.

 

 

좀 더 가다보니 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과수원 같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거나 쉴 수 있게 만든 곳인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특색 있는 휴식공간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것도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한참을 가다가 다리 밑 굴을 지나게 됐고, 이 굴을 벗어나니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왔다. 마을을 지나가면서 집을 예쁘게 꾸며놓은 장식에 눈길이 갔다.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도 하나 있었는데, 한글로 재밌게 써놓은 안내문도 있었다. 그 옆에는 예쁘게 치장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숙소로 오라고 초롱초롱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순례길에는 중간에 마을들이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마을이 나왔는데, 제법 규모가 있는 성당이 있었다. 더운 날씨에는 성당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당은 비교적 깨끗하게 되어 있고 앉을 곳도 있기 때문이다.

 

잠깐 쉴겸 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니 먼저 온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 뒤로 다채로운 색깔로 입체감 있게 만들어진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지나자 오늘의 목적지인 에스떼라를 가르키는 표지판이 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보니 기운이 났다. 길에 이어진 돌담 사이와 나무 다리를 지나고 보니 어느덧 에스떼라의 초입에 들어오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피로감이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에스떼라
에스떼라

 

무니시팔을 찾아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에스떼라는 공립 알베르게 외에는 딱히 숙소가 마땅치 않아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숙소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특히 한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다.

 

에스떼라-알베르게
에스떼라 알베르게

 

자리에 짐을 풀어놓고 주방으로 가보니 요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맛있는 냄새에 허기가 올라왔다. 주방이 넓고 잘 되어 있어 좀 더 구경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리하고 음식을 먹고 있어 복작거렸고, 괜히 먹고 있는데 가만 있기도 뭐해서 마을 구경이나 할 겸 밖으로 나왔다.

 

에스떼라는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웠다. 규모가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골목을 걷다가 어디서 큰 진동소리가 들려와서 봤더니 코끼리 열차같이 생긴 관광용 전동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곳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관광객들도 놀러오는 것을 보면 꽤나 볼거리가 있는 곳으로 짐작이 됐다.

 

 

저녁식사를 하기에 마땅한 데를 못 찾아 마트에서 먹을 거리와 다음날 조식거리를 사서 주변 공원으로 갔다. 꽤나 넓은 공원 안에 벤치가 여럿 놓여져 있었다. 벤치에 앉아 공원의 다양한 풍경을 보면서 음식을 먹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아직 발상태가 좋지가 않아 오래 걷지는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는 물집을 빼주고 주변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아, 시간 참 빨리가 가는구나. 이젠 이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졸음이 오나보다. 곧 불이 꺼졌고, 어느새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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