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티아고순례길 잼유이칸
오늘은 순례길 전체 일정 중 유일하게 빽도(!)를 하게 되었다. 혼란과 좌절, 기쁨과 환희가 뒤섞인 6일차 순례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간밤에 잠자리가 좋지 않았다. 위층에 자고 있는 사람이 계속 뒤척여 일찌감치 잠에서 깼다. 일어난 김에 일찍 나갈 생각으로 준비를 마치고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숙소 밖으로 나와보니 낯설지 않은 순례자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눈 마카오에서 온 순례자였다. 그렇게 얼굴을 본 것으로 자연스레 같이 길을 떠나게 됐다. 순례길 들어 첫 동행이었다.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에스떼라가 꽤 규모가 있는데다 주변이 잘 보이지가 않으니 빠져나가는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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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식용으로 사놓은 빵과 주스를 먹고 오늘의 순례길에 나섰다. 이번 코스는 그동안에 비해 거리가 비교적 짧고 걷기에 순탄한 곳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심한 경사라던지 힘들게 느껴지는 구간은 없었는데, 다만 어깨가 아프고 물집 잡힌 부분이 계속 쓰라려 내리막이나 평지를 걷는데 오히려 애를 많이 먹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오르막이 걷기가 좋고 발도 덜 아프다. 그래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거리가 짧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길에 들어서는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마을을 빠져나와 조금 나가다 보면 넓은 들판이 나오고 길게 이어진 들판 사이로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 나 있는 길을 순례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전부터 더운 날씨에 다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을 먹고 ..
팜플로나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일찍 나가고 싶었으나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8시가 넘어 있었다. 이전 마을에서는 숙소를 벗어나면 곧바로 순례길로 접어들었는데 팜플로나 같은 큰 도시에서는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게다가 길도 조금 헤매다 보니 겨우 도시를 빠져나왔을 때 이미 1시간 가까운 시간이 가버렸다. 그렇게 길을 떠나 들린 첫 마을에서 물을 사고 잠시 쉬었다. 오늘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통증으로 벌써 지치기 시작한 것도 있었지만 어제부터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 부실하게 먹은 게 복합적으로 몸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점심 때가 되어 들린 마을에서 햄을 곁들인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먹고 마실 게 더 땡겨 파인애플 주스도 추가로 먹었다. 그러고 나니..
순례길 3일차.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도시 중 하나인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도시라 불릴 만한 곳들이 몇 군데 있다. 대부분 규모가 크고 유서가 깊은 도시들이다. 그 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도시가 오늘 가게 될 팜플로나다. 순례길을 걸은지 아직 3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도시가 그리웠던 걸까. 왠지 모르게 설렘이 느껴졌다. 간밤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머문 숙소가 공립이었기 때문에 가격은 저렴했지만 그만큼 시설도 부실했다. 낡아보이는 2층 침대가 겉으로 볼 때는 잘 몰랐지만 실제로 위아래로 사람이 누워있으니 삐걱거림이 심했다. 내 위층에는 건장한 스페인 남자가 차지했는데, 이 친구가 밤새 뒤척거리고 게다가 심한 코콜이까지 하는 바람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전날처럼 어둠 속에서 자그마한 불빛들이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순례자들이 하나씩 자리를 떴고 주위은 다시 조용해졌다. 눈을 뜬 김에 어제 마저 쓰지 못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원래 일기는 그날 바로 쓰려고 했는데 순례길을 걸어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일기를 쓰다 졸음을 못 이기고 그만 잠들어 버렸다(이후로도 이런 날들이 많았다). 잠깐 바깥바람을 쐬려고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숙소를 나왔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하늘엔 아직 달이 떠 있었다. 숙소가 있던 수도원 건물을 천천히 돌다가 추위가 슬슬 느껴지기 시작해 숙소 앞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숙소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져 있는게 아닌가! 당황하면서 계속 열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어둠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랜턴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을 비추고 있었다. 짐을 챙기는 소리도 들렸다. 불빛과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그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순례길을 향해 떠났다. 곧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반 이상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겨 한명씩 나가는 동안 오히려 천천히 움직였다. 빨리 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이순간 과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어제 함께 왔던 순례자들도 나갈 준비를 마쳤다. 씨익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먼저 보냈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
파리에서의 두번째 아침.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정식 이름은 ST-JEAN-PIED-DE-PORT. 보통 줄여서 '생장'이라고 부른다)으로 간다. 기대감에 부풀어서인지 잠을 설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기분만은 좋았다. 기차를 타기 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전날 기차역까지 가는 동선과 타는 곳을 파악해놓은 덕분이었다. 아침으로 어제와 같은 메뉴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첫 아침을 먹는 옆의 순례자에게도 어제처럼 빵을 자랑스레 설명하며 내놓았다. 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숙소 아주머니도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이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순례자만 받는 숙소를 운영하고 계셨구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양한 루트가 있다. 각 루트..
유럽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눈을 떴을 때 잘 잔 기분이었다. 피곤할 때 바로 잠들어서 그랬을까. 주변의 고요함을 편안하게 느끼면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파리에서 하루 머무는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은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파리로 올 때 도착시간이 늦은 밤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음날 바로 출발하는 것보다 하루 쉬고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을 하여 일정을 그렇게 짠 것이다. 사실 그렇게 계획만 짰을 뿐 파리에 있는 하루 동안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게 없었다. 그닥 계획적인 편은 아니어서 여행을 가도 꼭 필요한 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타일이랄까. 일단 파리의 아침을 느껴보고 싶었다. 옷을 챙겨입고 조용히 숙소를 나왔다. 아직 하늘은 어스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