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티아고순례길 잼유이칸
오랜만에 여유 있는 아침을 보냈다. 알베르게가 사설이라 일찌감치 나가지 않아도 됐다. 일찍부터 준비하고 나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분주한 느낌은 났지만 그들이 일찍 나가고 나니 조용해져서 좀 더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같은 방을 썼던 외국인 순례자 중 한 아줌마가 날 보고 반가워하길래 왜 그러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론세스바에스에서 출발할 때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당시 누군가를 찍어준 건 기억나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알 리가 있나. 그래도 그 얘기를 들으니 나 역시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렇게 짧은 재회를 하고 그녀는 무리와 함께 먼저 떠났다. 가볍게 아침을 챙겨 먹고 나서 숙소를 나섰다. 어제 동네를 둘러보지 못해서 다는 못보더라도 주요 포인트는 보고 가기로 했다. 밝을 때 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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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음날 새벽 5시 반. 이미 5시 전에 깨서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는데, 손등이 자꾸 가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 잠결에 긁고 있는데, 문득 거기는 가려웠던 적이 없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갑자기 잠이 달아났고, 일어나서 보니 오른손 등에 모기 물린 것처럼 두 곳이 크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기는 아니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베드버그?! 아, 나는 안 물릴줄 알았는데 정녕 이렇게 물린 것인가... 이미 이삼일 전부터 발등부터해서 손등의 노출된 부분에 빨간 반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더 생기는 느낌이 들었고, 간지럽기도 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방심을 한 것 같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
엘 아세보의 숙소에서 눈을 떴을 때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오늘도 비가 올 것 같다는 생각에 그에 대비한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섰다. 전날 젖은 신발은 아직 축축해서 신자마자 양말이 금방 젖었다. 그렇게 나선 이번 순례길은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 비가 조금씩 오다말다 하기는 했지만 오전 중에는 거의 내리지 않았고 어제 비가 와서 만들어진 구름과 안개들이 햇빛과 어우러지면서 레온산맥을 멋지게 수놓고 있었다. 머물렀던 곳이 산 위쪽이어서 거기로부터 내려가며 산맥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감탄에 거듭된 감탄. 보이는 풍경마다 포토존이 되어 걷는 속도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첫번째 들린 마을은 여전히 산 속에 있었다. 허름해보이는 초입을 지나가자 예쁜 휴양지 느낌의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을 ..
잠을 자며 하룻밤 보냈지만 이름이 어려워 잘 기억나지 않는 마을을 떠나 오늘의 순례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가 계속됐다. 첫번째로 도착한 마을은 전날 머물렀던 곳보다 더 오래되어 보였다. 입구에는 돌담이 늘어서 있었고 대부분의 건물이 낡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정겨운 느낌을 줬다. 다음으로 도착한 마을은 오르막이 인상적이었는데, 브런치를 먹으려 식당을 찾다 마땅한 곳이 없어 작은 슈퍼에서 빵과 주스를 사서 허기를 채웠다. 마을을 막 벗어날 즈음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비가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가방을 비닐커버로 씌우고 우의를 꺼냈다. 그러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굿 타이밍!). 우의를 걸쳐입고 다시 걷기 시작하여 도착한 곳은 포세바돈이란 마을. 여긴 집들이 부서져 있는 곳이 ..
성가대에서 부를 법한 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침 7시가 되자 방불이 켜졌다. 이미 일어나 있던 상태였는지라 잘됐다 싶어 씻고 나서 빨래를 걷으러 갔는데 일출 무렵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은 벌써부터 시끌벅적. 아침 먹을 생각은 없어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니 7시 40분. 오랜만에 7시대에 숙소를 나선 것이었다. 어제 아스토르가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침에 아스토르가를 충분히 즐기고 갈 생각이었다. 급경사진 곳을 서서히 내려가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을 감상하고 로마성벽이 남아있는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성벽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점점 규모가 커졌다. 중간에 허물어져 이그러진 형태도 보였는데, 그것도 나름의 멋으로 느껴졌다. 저런 모습들이 사람들을..
이번 순례길의 출발 역시 도로길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레온 전후해서 계속 도로와 함께 가는 길이라 얼른 벗어나고 싶었지만 금방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순례길 들어 두번째 안개낀 아침을 맞았다. 안개가 상쾌하게 느껴졌고, 안개가 뿌옇게 도로를 가려주어 걷기에는 좋았다. 오래지 않아 안개가 걷히고 파아란 하늘이 나타났다. 도로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고,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차들이 지나다닐 때 가끔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맑게 드러난 풍경을 보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도로 옆을 걷는 도중 오솔길 비슷하게 나 있는 곳이 있어서 그 구간을 걷게 됐다. 길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사막 속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도로를 걷다 보니 도로에 거리를 표시한 게 보였는데, 걸..
사실 전날 레온에 오후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오늘 여유있게 둘러본 다음 잠깐만 길을 걷고 마무리를 하려는 게 이날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바뀌기 쉽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길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는 와중에 곳곳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대놓고 피는 건 한국과 다르긴 한데... 아침 햇살에 비친 레온 대성당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서 레온을 빠져나가는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밑에는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는 차에 외국인 아줌마가 내 모습을 보고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풍경사진을 찍으려고 했기에 괜찮다고 했는데도 계속 찍어준다길래 여러 배경으로 찍게 됐다. 사진..
어쩌다보니 레온까지 도착했다. 레온 전 마을에서 레온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묵으려 했는데, 그 마을은 레온과 붙어있다시피한 곳이라 레온과 다름이 없었다. 어쩐지 알베르게 목록에도 나와있지 않더라니... 렐리에고스에서 오전 6시가 채 되기 전에 깼다. 그 전에 여러번 잠에서 깨기도 했고, 그냥 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 창밖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시계를 확인했는데, 7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까 시간을 잘못 본줄 알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준비를 서두르다 나와서 시간을 다시 보니 7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일출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분명 어제까지는 8시가 넘어도 어둑어둑했는데 말이다(알고 보니 이날은 유럽의 서머타임이 끝난 날이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