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티아고순례길 잼유이칸
13일째 순례길을 걷다 보니 느낌이 비슷한 곳이 많아져서 오늘 걸어온 구간구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 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는 포인트는 분명 있었다. 간만에 고속도로 옆길을 벗어나 넓은 고원 지역으로 나왔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의 모습에 감탄이 연신 흘러나왔다. 주위에 산이 있음에도 사방이 넓게 펼쳐져서 하늘의 모습을 360도로 볼 수 있었다. 파아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다양한 구름의 모습과 어우러졌고, 세찬 바람은 구름을 빠르게 이동시키고 있었다. 넓디넓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따라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이번 길에는 오랜만에 오르막다운 오르막도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이전 마을에서부터 산을 넘어가는 코스가 있었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다양한 길과 풍경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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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숙소 와이파이가 갑자기 끊기는 바람에 오늘 일정정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목적지만 확인한 채 떠나게 됐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떠난 길은 발의 통증이 다시 느껴지면서 처음부터 걷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도로 옆을 지나야 했기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금방 도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자연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정은 중간에 가장 많은 마을을 경유했다. 목적지인 벨로라도까지 중간에 무려 5개의 마을이 있었다. 덕분에 길가에서 앉아 쉬지 않아도 됐다. 들리는 마을마다 쉬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 또 마을 사이사이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들을 맘껏 즐기기도 했다. 출발할 때 날이 흐렸기에 비가 오나 싶었는데 다행히 비는 안오고 ..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새벽에 깼을 때 비오는 소리가 들렸다. 숙소를 나갈 때쯤 날이 개는 듯 해서 비가 안 올꺼라 생각했지만 마을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얼른 커버를 덮어 씌웠다. 다행히 그 이상 더 내리진 않아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날이 점점 흐려지더니 빗방울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발상태도 좋지 않아 빨리 걷지는 못한 채로 첫 마을 아소프라에 도착했다. 잠시 쉬려고 성당 앞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점점 많이 내리는 비를 보며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됐다. 이 곳 아소프라는 알베르게가 유명했는데,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2층 침대인 것과 달리 여긴 단층침대였다. 게다가 2인 1실! 계속되는..
어느덧 산티아고 순례길에 접어든 지 10일차. 오늘은 나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의 여정이다. 안내서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순례길 중 가장 평탄한 구간이면서 시간도 적게 걸리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여느때보다 많이 늦은 9시가 넘은 시각에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전날 머무른 곳이 사설 알베르게였기 때문에 체크아웃 시간이 공립처럼 이르지 않았던 덕분도 있었다. 잠을 잘 잔 편이어서 컨디션은 좋았는데, 발에 여전히 통증이 있어 천천히 걷기로 했다.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주변에 걷는 순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길 위에서 저벅저벅 내 발소리를 들으며 걷는 느낌도 나름 괜찮았다. 다음 마을인 벤또사로 가는 길 옆에는 고속도로가 길게 나 있었다. 그냥 걷기엔 심심해서 노래를 흥얼거리다 나중에는 큰 ..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에 깨보니 새벽 3시. 피곤함이 물밀듯이 느껴졌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자는 다른 사람도 코골이도 합세해 방은 코골이 소리와 진동으로 가득 찼다. 귀마개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뿐만 아니라 그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잠을 설쳤다는... 알베르게에서의 잠자리는 순례자들에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이기에 비용은 꽤나 저렴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도미토리에서 함께 자기 때문에 잠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번처럼 주위에 코콜이를 크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 잠자리는 괴로워진다. 잠을 제대로 못자면 다음날 길을 걷는 데도 지장을 준다. 잠을 잘잤는지 여부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크게 좌우한다. 비몽사몽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 준비는 했는데 나갈 때 시간을 보니 8시가 다 되었다. 이것저것 챙기고 발 구석구석에 바셀린도 꼼꼼히 바르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제일 먼저 일어났는데 나간 것은 거의 마지막이었다. 밖은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으니 아마 그 전에 준비를 마쳤어도 비슷하게 나갔을 것이다. 어슴푸레한 풍경의 순례길에는 이미 많은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매번의 모습이 다른 것도 순례길을 걷는 재미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길을 걷는 데 불편함이 느껴졌다. 길을 온전하게 느끼는 데 방해가 된 느낌이랄까.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의도적으로 천천히 걷는 것이다. 저렇게 얘기하며 걷는 사람들은 보통 빨리 걸어간다. 얘기하는 데 정신이 ..
순례길 들어와 처음으로 편안하게 잤다. 컨디션도 좋았다. 여유를 좀 부렸는지 출발시간은 좀 늦어지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제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스떼라보다는 좀 더 나아간 지점에서 출발하니까 오히려 시간은 좀 벌었다고 생각하면 많이 긍정적인 걸까. 짐을 챙기고 출발하니 얼마 안 가 이라체 수도원과 와인 수도꼭지를 볼 수 있었다. 밝은 시간에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다. 어제는 이른 시간이라 닫혀 있던 대장간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물품들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모녀로 보이는 순례자들이 갈길을 멈추고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서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꼬스로 가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어제와 다른 코스를 선택했다. 어제 올랐던 산길은 왔다갔..
오늘은 순례길 전체 일정 중 유일하게 빽도(!)를 하게 되었다. 혼란과 좌절, 기쁨과 환희가 뒤섞인 6일차 순례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간밤에 잠자리가 좋지 않았다. 위층에 자고 있는 사람이 계속 뒤척여 일찌감치 잠에서 깼다. 일어난 김에 일찍 나갈 생각으로 준비를 마치고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숙소 밖으로 나와보니 낯설지 않은 순례자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눈 마카오에서 온 순례자였다. 그렇게 얼굴을 본 것으로 자연스레 같이 길을 떠나게 됐다. 순례길 들어 첫 동행이었다.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에스떼라가 꽤 규모가 있는데다 주변이 잘 보이지가 않으니 빠져나가는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