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돌담소담
운명이라는 말을 우린 흔히 쓴다. '운명적인 만남' 같이 운명을 필연적이고 당위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단어의 의미를 풀어보면 이렇다. 운명(運命): 명(命)을 운전하다(運) 즉, 타고난 자신의 명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명이란 본래 정해져 있거나 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운명을 이끌 생각은 하지 않고 팔자타령만 하며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면 운명론은 곧 숙명론이 되고 만다. 아무리 사주팔자를 많이 보고 잘 알게 된다고 해도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본인의 팔자대로 살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나마 낫지만 거기에 대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스스로만 괴롭게 할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이하 '나운설')'는 이러한 '운명'을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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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를 내고 꾐에 빠지고... 그럴듯한 꾀의 향연이 '토끼전'에서 펼쳐진다. 토끼와 자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판소리 중에서도 가장 이본이 많은 텍스트라고 한다. '토끼전' 이외에도 '별주부전', '토별가', '별토가', '수궁가' 등등 붙은 제목만 해도 다양하다. 이 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하게 변주된 것은 그만큼 당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며 사랑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토끼전에서는 육지와 바다라는 장소의 대비를 통해 다양한 동물들이 나온다. 서로 이질적인 육지동물과 수중동물들을 한데서 볼 수 있는 것은 토끼전만의 흥미거리다. 또한 의인화된 동물들 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 세상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토끼는 대체로 재치있고 영리한 동물로 묘사가 된다. 이 ..
마음씨 착한 흥보(흥부)와 못된 심술보이자 욕심쟁이인 놀보(놀부)의 이야기. '흥보가 기가막혀~'라는 노랫말이 나올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바로 흥보전이다. '낭송 흥보전'은 이러한 흥보와 놀보의 이야기를 읽기 좋은 운율에 맞춰 구성하여 리듬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각운을 맞추어 재미있게 표현한 부분들도 많다. 요즘으로 치면 랩 가사에 어울릴만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예로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다음은 놀보가 세번째 박타령을 할 때 박타는 일꾼이 놀보의 욕심을 꾸짖으며 메긴 소리 중 일부다. "근래 풍속 매우 소박, 사람마다 모두 경박. 남의 말은 대고 타박, 형제간에 몹시 구박. 흥보가 심은 박은 제비 은혜 갚는 박. 놀보가 심은 박은 제비 원수 갚는 박. 양반 나와 바..
"암행어사 출두요!" 이 얘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소설은 무엇일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암행어사가 등장한 소설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춘향전'일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팔 청춘 남녀의 사랑 얘기는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성춘향을 구해내면서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은 춘향전의 내용을 낭송하기에 적합한 운율로 맞추었다. 4·4 운율을 기본으로, 단락에 맞추어 읽다 보면 어느새 리듬을 타며 상황에 몰입해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학창시절 시험에 단골로 나오던 춘향전의 내용을 이렇게 완본을 통해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당시에는 시험을 위해 표현법을 묻는 일부 지문만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전체 내용을 읽으며 풍부한 이야기를 접할..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소설 돈키호테. 2권(속편)에서도 수많은 사건과 모험들이 돈키호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속편에서 돈키호테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편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편에는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인물의 행적을 알고 그에게 장난을 쳐서 재미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돈키호테와 산초는 또다른 수난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전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이미 발간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돈키호테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습만 보고도 그가 누구인지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런 돈키호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동시에 기사도에 빠진 그의 우스꽝스러운 광기를 이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진다. 특히 공작과 공작부인이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선사한 수..
한 기사의 허무맹랑하고도 엉뚱한 모험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돈키호테. 이 위대한 기사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이렇게나 방대한 분량을 가졌을 줄은 직접 접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에 돈키호테 소설을 원문으로 읽게 되면서 많은 분량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리뷰 역시 두 번으로 나누어지는 게 적절하다 생각된다. 1권의 모험이 끝난 지금, 첫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이것이 소설 돈키호테의 정식 명칭이다. 여기서 이달고는 스페인에만 있는 하급 귀족 작위인 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라만차 지역에 사는 돈키호테라는 의미이다. 돈키호테를 떠올리면 늘 옆에서 그를..
'걸리버 여행기'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어렸을 때 한번쯤은 읽어봤을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걸리버라는 인물이 소인국에서 우연히 거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벌어지는 이야기. 실제로 걸리버 여행기에는 소인국의 나라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부의 이야기였을 뿐.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걸리버가 소인국 나라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온 몸이 포박되어 있는 장면일 것이다. 아동용 그림책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 모습이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그래서 흔히 이 책을 아동용 도서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책에 등장하는 배경과 인물들의 모습에서 동화적 상상력과 환상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것도 책의 성격을 그렇게 규정짓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을 들어 보면 그러한 ..
조르바는 괴짜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조르바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괴짜라고 외치는 그들의 이면에는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고 동경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와 '조르바'라는 인물이 크레타 섬으로 통행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고용인(나)과 피고용인(조르바)의 관계이지만 둘 다 그런 것에 별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나'는 조르바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갖고 그를 겪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르바 역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투닥거림은 일상이 된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였기 때문. '나'가 이성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