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어렸을 때 한번쯤은 읽어봤을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걸리버라는 인물이 소인국에서 우연히 거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벌어지는 이야기. 실제로 걸리버 여행기에는 소인국의 나라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부의 이야기였을 뿐.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걸리버가 소인국 나라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온 몸이 포박되어 있는 장면일 것이다. 아동용 그림책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 모습이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그래서 흔히 이 책을 아동용 도서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책에 등장하는 배경과 인물들의 모습에서 동화적 상상력과 환상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것도 책의 성격을 그렇게 규정짓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을 들어 보면 그러한 생각은 이 책의 본래 성격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략) 세상이 이 작품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쇄업자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할 용기를 갖게 되면 출판해 볼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는 이 책의 발표와 출판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럽의 상황, 특히 정치, 법률,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를 강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출판 전에 그 내용의 위험성을 감지한 인쇄업자에 의해 책의 일부분이 삭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과연 어떤 책인가? 주인공 걸리버는 고국을 떠나 총 네 곳의 나라에 표류하게 된다. 릴리퍼트로 대표되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 브롭딩낵으로 대표되는 큰 사람들의 나라 그리고 하늘을 나는 나라와 말들의 나라. 우리에게 친숙한 거인 걸리버 나오는 나라는 바로 릴리퍼트였다.



작가는 다소 딱딱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여행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처음부터 흥미진진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사실적으로 서술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걸리버가 여행하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점점 느껴진다. 걸리버의 손가락 마디만한 사람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반대로 걸리버를 손가닥 마디만한 크기로 보이게 하는 거인들도 나타난다. 떠다니는 섬 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가 만들어져 있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이동한다. 마치 거대한 우주선 처럼. 


가장 압권인 장면은 마지막으로 여행한 말들의 나라에서 나온다. 말들이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말은 사람들이 이끄는 수레에 올라타 이동하기도 한다. 마차가 아니라 인차(!)다


이 나라에서 말은 휴이넘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거짓말이나 위선 같은 개념 자체가 없다. 걸리버의 표현에 따르면, 휴이넘들은 현명하고 덕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상하고 예의바른 기질을 가졌다. 어떤 일이든지 이성적이고 올바르게 판단하여 어긋나게 처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여기서는 인간들이 원시적인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휴이넘의 나라에서 야후라고 불리는 생명체는 걸리버와 비슷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느 다른 동물들보다 거칠고 말을 안듣고 욕심이 많다. 성질도 사납고 거칠어 휴이넘들에게는 골칫거리인 존재들이다. 



이러한 곳에 걸리버가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말들의 주인인 인간들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워 했다. 그러나 곧 휴이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다른 어떤 나라에서보다 그들에게 흠뻑 빠져들게 된다. 휴이넘들의 결정에 의해 그 나라에서 떠나야만 하게 되었을 때도 그는 절망적이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한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아내와 자식들을 만났지만 이미 휴이넘들의 모습에 동화된 그는 그들을 야후라고 칭하며 같이 있기를 극도로 혐오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조건적인 혐오가 조금씩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는 끝내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말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그들과 교감하고 애정하며 지내는 것을 선택한다. 


이렇듯 걸리버라는 인물의 사실적인 여행기는 실제로는 당시 유럽 사회에 대한 강력한 풍자를 담고 있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인류혐오자라고 불렀다. 그는 일반적인 인간들을 '이성적 동물'이라는 정의 대신에 '이성적일 수 있는 동물'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천성적으로 선하다는 당시의 낙관적 견해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 


이는 그가 신학자이면서 성서에 대한 논쟁자였고, 아일랜드의 지도자로서 영국의 지배에 대한 반발로 저항운동을 이끈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그가 당시의 시대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하며 쓴 것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였던 것이다.





인간만을 혹은 자기 민족만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자신들만의 잣대로 세계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책을 덮으면서 걸리버가 여행했던 나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들이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 생명들과 조우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 지 흥미로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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