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사의 허무맹랑하고도 엉뚱한 모험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돈키호테. 이 위대한 기사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이렇게나 방대한 분량을 가졌을 줄은 직접 접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에 돈키호테 소설을 원문으로 읽게 되면서 많은 분량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리뷰 역시 두 번으로 나누어지는 게 적절하다 생각된다. 1권의 모험이 끝난 지금, 첫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이것이 소설 돈키호테의 정식 명칭이다. 여기서 이달고는 스페인에만 있는 하급 귀족 작위인 <이달기아>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라만차 지역에 사는 돈키호테라는 의미이다. 

 

돈키호테를 떠올리면 늘 옆에서 그를 따라다니는 산초가 떠오른다. 거기에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까지. 이 셋은 떨어질 수 없는 돈키호테 3종 세트이고,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자 단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산초와 로시난테를 떼어 놓고는 그의 모험은 진행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산초는 돈키호테 못지않게 독특하고 엉뚱하다. 처음에 돈키호테의 종자로 산초가 따라나서게 된 이유는 그의 욕망 때문이다. 돈키호테야 수많은 기사소설에 빠져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하게 됐지만 산초가 원래부터 분별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돈키호테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 주인에게 용기와 분별력 있는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무모하고 허황된 욕심이 그를 점점 돈키호테 못지않게 현실감각을 잃게 하여 갖은 고초에 빠지게 만든다. 

 

 

산초는 모험이 끝나고 나면 섬을 하사하겠다는 돈키호테의 약속에 눈이 멀어 돈키호테와 함께 미쳐가는 모습을 보인다. 돈키호테가 왕이 되면 자신에게 백작 지위를 주겠다는 말에 혹시나 그가 마음이 변해 왕이 아닌 대주교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이는 순전히 본인의 욕심을 이루지 못할까봐 보이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돈키호테와 더불어 수많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면서도 그 끈을 끝내 놓지 못한다. 

 

1권에서는 이러한 돈키호테와 산초 앞에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돈 페르난도와 카르데니오, 도로테아와 루스신다라는 네 남녀가 우연히 한 자리에 만나 격렬한 말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때이다. 이들 간에 연정의 마음이 얽키고 설켜 분노와 배신감, 증오 등이 극대화된 장면이다. 사실 이들 인물들과 돈키호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돈키호테의 모험으로 인해 골이 깊었던 이들의 갈등과 아픔은 해결되고 모두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돈키호테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개입한 것은 없다. 그는 이들이 그런 복잡한 사이이고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벌인 엉뚱한 모험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들었다. 또한 네 남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신부 역시 돈키호테 때문에 길을 떠나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으니 의도했는지 여부를 떠나 돈키호테가 네 남녀를 살리는 데 공을 세우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데에 돈키호테의 모험은 기여한 바가 있지만 돈키호테의 망상과 그로 인한 오지랖은 사실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온 면이 더 컸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목동 안드레스가 자기 주인에게 붙잡혀 매질을 당하고 있을 때 돈키호테가 개입한 사건이다. 

 

안드레스가 주인에게 자기가 일한 만큼의 급료를 요구하자 이를 무시하면서 매질을 당하고 있던 것을 돈키호테가 그냥 넘기지 못하고 달려든 것이다. 안드레스를 도우려는 좋은 의도로 개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안드레스에게는 더 큰 불행이 되고 말았다. 돈키호테 앞에서는 안드레스를 놓아주고 급료까지 제대로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던 주인이 그가 떠나자마자 다시 안드레스를 매달고 그가 고자질한 것까지 포함하여 더욱 매질을 해댔고 급료 역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드레스는 돈키호테가 떠나면 주인이 그렇게 할 줄을 알고 돈키호테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돈키호테는 주인의 말만 믿고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고 여기고 그냥 떠나버린 것이다. 이후 다시 돈키호테 일행과 만난 안드레스는 돈키호테에게 저주를 퍼붓게 된다. 그냥 갈 길을 갔으면 적당히 맞다가 끝나고 급료도 받았을 일을 돈키호테가 개입해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이렇게 돈키호테는 기사도를 실현하겠다는 본인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는 안하느니만 못한 짓들을 일삼아가며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좋은 의도로 행한 것이 결과까지 좋게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돈키호테가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돈키호테를 악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처럼 순수하게 그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사소설에서 읽은 기사들처럼 편력 기사가 되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일말의 타협 없이 신념대로 행하는 그의 모습은 지행합일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만들어낸 신념이 얼마나 위험하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지도 돈키호테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돈키호테는 그가 벌이는 무모하고도 엉뚱한 말과 행동의 결과를 본인이 고스란히 받는다. 산초 역시 본래 가지고 있던 순박함과 분별력을 그의 욕망에 의해 잃어가면서 그의 주인 못지않은 고생을 겪는다. 이렇게 희화화된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습을 통해 작가 세르반테스는 풍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돈키호테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권에서 그의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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