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소설 돈키호테. 2권(속편)에서도 수많은 사건과 모험들이 돈키호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속편에서 돈키호테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편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편에는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인물의 행적을 알고 그에게 장난을 쳐서 재미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돈키호테와 산초는 또다른 수난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전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이미 발간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돈키호테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습만 보고도 그가 누구인지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런 돈키호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동시에 기사도에 빠진 그의 우스꽝스러운 광기를 이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진다. 특히 공작과 공작부인이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선사한 수많은 모험은 마치 판타지적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적어도 기사도에 있어서만큼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돈키호테. 그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비록 악의에 차 있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순수하고 진지하게 믿어버리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의 옆에는 겁도 많고 단순하지만 재기발랄한 산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초 역시 돈키호테 못지않게 유명세를 탔기에 그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했다. 섬이라고 믿고 있는 곳의 통치자가 되어 솔로몬 못지 않은 판단력을 보여줬지만 그에게 제공되는 건 쥐꼬리만한 음식뿐. 게다가 갑작스레 만들어진 전투로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발에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둘시네아 델 토보소의 마법을 풀기 위해서 산초 스스로 자신에게 엄청난 숫자의 매질을 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돈키호테의 눈을 속여 기지로 그 고난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건들과 고난을 당해도 산초의 괴로움은 그때뿐이다. 그 상황만 벗어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먹고 자는 본능적인 욕구에 있어서는 단 한번의 어려움을 겪지 않은 이가 산초다. 그만큼 단순하고 낙천적인 인물이다. 돈키호테가 연이은 수난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을 때도 산초는 그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돈키호테를 위로하거나 정신차리라며 다그친다.

 

 

속편에서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관계가 주인과 종자보다는 친구나 동료처럼 변해간다. 돈키호테가 둘시네아의 마법을 풀기 위해 잠든 산초에게 다가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을 하려고 하자 산초는 돈키호테를 떠밀어 눕혀버리고 또다시 이런 행동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서 사실 이미 그들의 위계적 관계는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산초가 말할 때마다 뱉어대는 무분별한 속담 테러를 영 못마땅해한다. 산초는 돈키호테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마법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미쳤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인데다가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 정도 깊어졌기 때문이다. 각자가 당하는 아픔과 고난에 대해 마음아파하고 자기 일처럼 걱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들이 기사와 종자로 만났지만 어느새 우정을 나누며 함께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얀 거울의 기사와의 결투에서 패한 직후부터 기사도에 대한 돈키호테의 광기가 조금씩 깨져나간다. 동시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깊어진다. 그의 모험을 지탱하고 있던 절대적 신념이 점점 무너져가면서 그는 '번뇌의 기사'가 되어간다. 결국 그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그가 고향 라만차에 돌아오면서 끝을 맞게 된다.

 

여기서 '잠'의 역할에 대해서 한번 짚어보고 만하다. 라만차에 돌아온 돈키호테는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잠을 자게 된다. 잠에서 깨어난 돈키호테는 기사도에 미쳐있던 지난 날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고 자기가 '알론소 키하노'였음을 시인하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제정신을 차린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편력 기사로서 모험을 떠난 이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는 잠이 부족해 늘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서 기사도라는 환상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언을 남기고 돈키호테는 세상을 떠난다. 그래도 그는 편력기사로서는 매우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온화하게 대했기 때문에 산초를 비롯한 가까운 이들은 그의 죽음을 진정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이것으로 비추어 봤을 때, 돈키호테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빠져 편력기사임을 자처하고 길을 떠나 수많은 여정과 고난을 겪었다. 좌충우돌 사고를 치며 엉뚱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의 상태를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온갖 굴욕과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괴로워할지언정 다른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기를 떠받치고 있던 기사도의 신념으로 불의라고 생각되는 것을 참지 못했고 자기가 한 약속은 꼭 지켰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있어서 망설임 없이 행동하며 순간순간을 살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매순간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망설이고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살기도 하는 현대인들에게 돈키호테의 모습은 색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 돈키호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각자의 몫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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