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였다. 오늘보다 더 걸은 적도 있었지만 보통 길을 잘못 들거나 착오에 의한 것이었는데, 오늘은 계획대로 간 거여서 걸은 만큼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리고 이번 길은 숲의 연속이었다. 마을도 많았지만 숲길이 가장 기억에 남고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이 계속 이어져 목이 뒤로 넘어갈 듯 본 시간도 많았다. 



멜리데에서 까미노로 나가는 길은 느낌이 좋았다. 출구에서 바로 숲길로 이어지는데, 그게 끝까지 이어질 줄이야... 막 마을을 빠져나갈 때 앞에 가는 순례자가 있었다. 천천히 걷던 그는 숲에서 뭔가를 유심히 보는 것인지 이따금 멈추기도 하고 그랬다. 나 역시 숲의 느낌을 온전하게 느끼고 싶어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주 마주치게 되고 동선이 겹치는 게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사람이 앞뒤에 있으면 그 길을 온전히 감상하는 데 불편함이 있기도 하다. 특히 뒤에 사람을 두고 걸으면 돌아볼 때 배경보다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쉽고, 그러면서 의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뒤쪽에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먼저 보내곤 한다. 


보통은 순례자들이 빨리 가는 경우가 많아서 속도를 조절하면 더 안 마주치게 되는데, 속도가 비슷하면 계속 마주쳐 신경이 계속 쓰이기도 한다. 물론 같이 걸어도 괜찮은 경우도 있지만 특히 둘 이상 몰려 다니는 무리들은 크게 얘기하면서 소음을 발생시키며 가는 경우가 많아 걷는데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멜리데의 숲길에서 먼저 가고 있던 순례자가 그런 부류는 아니었지만 길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일정거리를 두며 걸었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오늘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숲길이었다. 무성하고 울창한 나무들이 연이어 늘어서고, 그렇게 다양하게 어우러져 풍성한 숲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 숲길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커다란 나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목이 빠져라 올려다봐야 꼭대기가 보이는 나무들이 정말 많았다. 이러한 나무들이 양쪽에서 계속 늘어서 있으니 감탄이 멈출 줄 몰랐다. 단지 높게 뻗어있을 뿐만 아니라 기둥을 감싸고 있는 잎사귀며 줄기가 수갈래로 뻗어 있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자연이 만든 작품에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감상에 푹 빠진 채로 숲길을 나오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 걸을 구간이 거리로는 가장 길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어느 정도 속도 있는 걷기가 필요했다. 도로가 나와 이제 속도를 내면 되는 구간이구나 싶었는데 도로를 가로지르니 또다시 숲으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이번 여정에는 숲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간중간에 나오는 마을들이 많았다. 그 중 도시 같은 느낌을 주는 아르수아가 있었다. 도로가 가운데 놓여 있고, 양쪽으로 마을이 일렬로 이어져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크기는 멜리데와 비슷하게 보였는데 느낌은 좀 달랐다. 멜리데가 오밀조밀한 느낌이라면 아르수아는 직선으로 뻗어 있어 그런지 딱딱한 느낌이 강했다. 지나가면서 본 느낌이긴 했으나 멜리데에서 하룻밤 보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르수아에 들어오기 전에는 같은 공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첫 끼니를 먹던 곳에서부터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상당 시간 같은 길을 여러 사람이 걸었고, 거기서 다양한 풍경과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날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던 여자 순례자를 여기서 또 볼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어디서 큰 음악소리가 들려오길래 돌아보니 그 여자였다. 그런데 배낭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달고 음악을 틀면서 까미노길에 음악이 다 들리도록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으면서 예전에 알베르게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요리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뭐 버릇 누구 못준다고... 지나가던 다른 순례자들도 음악소리에 힐끔힐끔 쳐다봤다. 음악을 좋아해서 듣는 거야 자유지만 이런 길에서 들으려면 이어폰을 끼고 혼자 감상해야지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듣게 해서 민폐를 끼쳐서야 되나. 


한편으로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니 특별히 화가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갑자기 그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져서 나를 스쳐 지나갈 때 물어보니,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사랑한다고 하더라. 나한테도 좋아하냐고 묻자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얘기를 해 줬다(물론 당신처럼 듣지는 않지만).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나니 그 여자가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산티아고를 눈앞에 두고 기분 내는 건가 싶기도 하고 왠지 이해하고픈 마음이 들었던 걸까? 나중에 봤을 땐 음악을 끄고 가더라. 왠지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는 다그치기보다 동조해주는 게 잘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밖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걸었는데, 그 중에는 혼자 걷는 이도 있고 무리도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다 같이 걷는 느낌도 좋았다. 산티아고를 앞두고 부쩍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길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르수아에서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인 오후 여정에 나설 때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지 않았다. 하루 더 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왔기에 다들 어디론가 발길을 옮기고 있겠지. 


오후에도 숲길은 계속 됐고,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도 이어졌다. 그림 같은 전원마을도 나오면서 파란 하늘 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쉴 만한 마을이 없었다. 그래서 한참 걷다 돌의자로 만든 쉼터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빼드로우소를 얼마 남기기 않고 지쳐 있을 무렵 나온 식당에서 초코빵을 먹으며 달콤한 휴식을 즐기기도 했다.






이번 여정에서는 휴식을 적절하게 취했다. 긴 길을 걷는 만큼 잘 쉬어야 잘 걸을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중간중간 필요할 때 쉴 수 있어서 목적지까지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들어가기 전에도 숲길이 나왔는데 커다란 나무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주변 길이 어둡기도 했지만 그 느낌도 좋았다. 사람 없는 숲에 나 홀로 산티아고 도착 전날의 길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서 좋았고, 그 길들은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이윽고 목적지 빼드로우소에 도착하여 중심부로 들어가며 바라본 석양 무렵의 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숙소를 알아보려 길 끝에 있는 공립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자 미련 없이 나왔고 마음에 드는 사립 알베르게를 잡았다. 짐을 두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다가 디아를 발견했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필요한 것들을 샀다. 맛있어보이는 빵이 있어서 원래 사려고 했던 것을 내려놓고 구입했는데 먹어보니 생각했던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인지 우걱우걱 다 먹었다. 숙소에서 콸콸나오는 샤워물에 빨래와 샤워를 하고 나와 내일 일정을 살펴보고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숲의 연속이었던 오늘 여정에서는 다양하고 웅장한 자연의 모습에 감탄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어떻게 나무들이 그렇게 자랄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면 식물박사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픽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내일은 드디어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날. 멋진 숲길 여정을 마친 지금, 마지막 순례길에서는 어떤 길을 마주할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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