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로 가는 날이 밝았다.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산티아고를 앞두고 들뜬 기색들이 역력했다. 산티아고까지 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순례길의 끝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남달랐다.



마을을 나와 처음 마주친 것은 숲길이였다. 눈 앞에 보이는 숲은 캄캄했다. 아침부터 안개가 끼어서 더욱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빛이 들어올 공간이 별로 없어 보였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마치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듯 했다.




중간중간 숲이 갈라지는 구간에서도 짙은 안개로 인해 눈 앞의 거리만 볼 수 있었다. 주변의 풍경을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안개에 휩싸인 숲의 모습이 신비롭기도 하고 나름의 운치를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혔고, 숲도 본연의 선명한 녹색빛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기도 하고, 재밌게 생긴 조형물도 보였다.

 





슬슬 배가 고파지자 산티아고에서 10km 떨어진 마을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고지가 얼마 안 남아서인지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메뉴를 살피다 괜찮아 보이는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햄버거는 순례길 들어와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양도 푸짐하고 채소도 많이 들어가 있어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되었다.

 


이번 여정에는 중간에 마을들이 많았다. 그 중 한 마을에서 말을 타고 움직이는 남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을에서 말을 타고 버젓히 다니다니... 이곳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산티아고를 얼마 남기지 않고 몬떼 도 고소에 이르렀다. 이곳은 마을이긴 했지만 문화 및 체육시설이 주로 갖춰진 곳이었다. 넓게 펼쳐진 언덕 위에 세워진 기념비는 이곳의 랜드마크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의 형체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산티아고를 보니 설레기 시작했다.



몬떼 도 고소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도 있었는데, 사용가능한 침대가 무려 400개나 됐다. 군대 병영 숙소처럼 생긴 많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면서 그 많은 인원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잠시 건물 안을 살펴보기도 했다(문이 잠겨 있어 제대로 보진 못했다).




몬떼 도 고소를 빠져나오니 이젠 산티아고를 정말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주변 모습들을 즐기며 가다보니 어느새 시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거기서 좀 더 걷다 보니 멀리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성당의 모습이 점점 다가오면서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 같지 않게 조금이라고 빨리 대성당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달려가듯 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건물 한 귀퉁이를 돌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이 내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부옇게 보이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공사하는 부분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대성당을 눈 앞에 마주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공식적인 순례길의 마지막 지점이고, 그동안 하루하루 꾸준히 걸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다가왔다. 내 자신한테 자랑스러웠고 고마웠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데 도움을 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있어서 무사히 산티아고까지 올 수 있었기에. 



대성당을 둘러보기에 앞서 순례자증서를 받기로 했다. 증서를 발급해 주는 순례자 사무실을 한참 찾아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아서 금방 증서를 받을 수 있었다. 증서를 들고 인증샷을 찍으니 그제야 뭔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 나가 보니 먼저 온 순례자들이 다양하게 기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 찍는 사람, 펄쩍펄쩍 뛰는 사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등 각자의 방식으로 순례길을 마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나 역시 아는 순례자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그 기쁨을 즐겼다.



그곳에는 관광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중 일본인 아줌마들이 내 국적을 묻더니 같이 사진찍자고 했다. 먼 이국에서 옆 나라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나보다. 흔쾌히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조금씩 내리던 빗방물이 점점 굵어져 일단은 비를 피해 쉬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바에 들어가 따뜻한 녹차를 마시면서 숙소를 알아봤다. 여러 곳을 살펴봤는데 눈에 딱 들어오는 곳이 없어 직접 돌아다니면서 알아보기로 했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여 바를 나섰는데 그때 일본인 순례자 준을 만났다. 그는 봉지에 신라면을 한 가득 담아 들고 환한 표정으로 있었다. 자신은 이미 오전에 와서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본다고 하길래 거기서 헤어지고 숙소를 찾으로 대성당을 빠져 나갔다.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들어왔던 초입까지 가게 됐다. 무거운 배낭을 들고 힘들게 지나왔던 곳을 그 상태로 다시 온 것이다. 게다가 찾고 있던 알베르게를 지나친지 한참 된 것을 그때서야 알고 다시 돌아가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 상황에서 머리보다 몸을 쓰면서 스스로를 고생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까지 다시 쏟아져 고스란히 맞으며 계속 돌아다녔는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산티아고에 잘 도착해놓고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니... 그래도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몸이 좀 힘들었지만 이렇게 다니는 것도 구경이라 생각했다. 


원래 찾던 숙소를 겨우 찾아 갔는데, 지금 시기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폰으로 들리는 '쏘리'라는 얘기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날도 어두워지고 계속 지체할 수 없었기에 차라리 대성당 근처로 가서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다 괜찮은 알베르게를 발견했는데 좀 비싼 느낌이 들어 다른 곳을 더 둘러봤지만 그만한 데가 더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다시 아까 본 알베르게로 들어가게 됐다.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치고 갖고 있던 젖은 빨래를 바깥에 있는 건조기 시설에 말리러 갔다. 거기서 먼저 건조기를 돌리고 있던 아줌마가 자기껏 한번 더 돌린다고 해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어찌어찌 해결하고 돌아오니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 됐다. 상점 문을 닫을까봐 먹을 것부터 먹기로 하고 근처 빵가게에서 빵을 샀다. 숙소로 돌아와 식사를 한 뒤에야 빨래와 샤워를 했고, 다 마치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이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에도 늦게까지 할 일을 하고 나니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도시 탐방은 다음날부터 하기로 했다. 산티아고에서의 첫날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은 거리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체감상으로는 상당하게 느껴졌다. 심리적인 게 컸던 것 같다. 중간에 휴식을 잘 못 취하기도 하고. 그래도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고 순례자 증서를 받으면서 그간의 순례길을 무사히 완주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긍정적인 에너지와 힘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배우고 느낀 것들과 받은 에너지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고, 내 인생도 보다 재밌고 즐겁게 살아야지. 


다시 한번 여기까지 오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이들과 함께한 순례자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Glac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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