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에 깨보니 새벽 3시. 피곤함이 물밀듯이 느껴졌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자는 다른 사람도 코골이도 합세해 방은 코골이 소리와 진동으로 가득 찼다. 귀마개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뿐만 아니라 그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잠을 설쳤다는... 

 

알베르게에서의 잠자리는 순례자들에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이기에 비용은 꽤나 저렴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도미토리에서 함께 자기 때문에 잠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번처럼 주위에 코콜이를 크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 잠자리는 괴로워진다. 잠을 제대로 못자면 다음날 길을 걷는 데도 지장을 준다. 잠을 잘잤는지 여부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크게 좌우한다.

 

 

비몽사몽 새벽시간을 보내다 일찌감치 숙소를 나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시작부터 발이 계속 아파왔다. 물집 잡힌 부분을 피해 걸었는데, 힘이 한쪽으로 많이 쏠려서 그런지 발목과 종아리 바깥쪽까지 통증이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비아나에서 오늘의 목적지 나바레떼까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많았다. 자갈밭길이 아닌 아스팔트를 걷는 게 처음에는 편하게 느껴졌지만 계속 이어지자 길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발의 통증까지 있으니 주변 풍경에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중간중간 나오는 흙길과 숲길을 걸을 때는 기분전환이 되기도 했다. 

 

 

이번 여정에는 로그로뇨를 경유하게 되었다. 로그로뇨는 앞서 들렸던 팜플로나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에 몇 안 되는 큰 도시다. 로그로뇨에 들어가기 전에 라 리오하주에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주에 들어와 곧바로 로그로뇨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로그로뇨로 들어가는 길목에 작은 집 한채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는게 보였다. 마리아 할머니였다!

 

 

원래 이 집은 펠리사라는 할머니가 살았던 곳이었다. 그녀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이곳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달콤한 무화과와 시원한 물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그녀의 딸인 마리아 할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순례자에게 스탬프를 찍어 주고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마리아 할머니는 미소로 맞아주며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가방에 있던 귤을 조금 꺼내 드리니 할머니는 좋아하는 기색이었고, 그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큰 도시들은 중심부로 들어가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로그로뇨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큰 강이 나왔다. 그 위에 외곽과 시내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다. 다리 진입부에는 안내데스크가 하나 보였다.

 

 

안내데스크에는 시내지도와 함께 비타민 사탕이 여러개 놓여 있었다. 무심코 맛본 사탕의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당충전을 제대로 하고 지도를 하나 챙겨 그곳을 나섰다. 

 

날은 흐렸지만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건너자 안내판이 하나 나왔다. 안내판은 로그로뇨가 리오하 주의 주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로그로뇨
로그로뇨

 

시내에 들어오자 허기가 몰려왔다. 아침도 따로 먹지 않아 얼른 뭐라도 먹고 싶었다. 주변을 살펴보다 음식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별 망설임 없이 들어가 주문을 했다. 그렇게 나온 건 빵을 곁들인 또르띠아와 오렌지 주스. 또르띠아는 계란반죽에 구운 감자가 들어간 것으로, 빠에야처럼 스페인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처음으로 먹어본 또르띠아는 맛도 좋을 뿐더러 한 조각만 먹었는데도 포만감이 느껴졌다. 나이스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니 주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럽 느낌나는 골목과 건물들, 순례자를 위한 음수터, 스탬프로 문신(?)을 한 벽화 속 거인 그리고 마리아 대성당까지.

 

로그로뇨-마리아-대성당

 

성당을 둘러보다 전에 길에서 만난 일본인 순례자를 만났다. 그녀는 로그로뇨가 여정의 종착지라고 했다.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는데 급하게 다시 내게 오는 게 아닌가. 다른 게 아니라 성당 안에서 스탬프를 찍어준다는 애기를 전하려고 온 것이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라 성당으로 들어가 보니 한쪽 사무실 같은 곳에서 노수녀님이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스탬프까지 받고 다시 길을 나섰다. 로그로뇨는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슬슬 걸어나갔다.

 

 

이윽고 넓은 공원이 나왔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공원의 모습에 잠깐 쉬어가고 싶었다. 마침 배낭 어깨끈을 조절하고 싶기도 하여 가방을 내려놓고 끈조절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조절한 배낭끈이 자꾸 균형이 안 맞는 느낌이 들어 공원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만 끈조절을 위해 가방을 맸다 벗었다를 수번 반복했다. 이러는 동안 신경은 신경대로 쓰이고 힘은 힘대로 빠지고... 길을 걷는 동안에는 배낭 같은 민감한 물품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좋다는 교훈을 남긴 해프닝이었다. 

 

그렇게 겨우 조절을 마치고 로그로뇨를 빠져나가게 되었다.

 

 

끈조절에 시간을 많이 보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대에 걷게 되었다. 힘도 빠진 상태에서 무더위에 걸으니 금방 지치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걸어나갔다. 날은 더웠지만 주변 풍경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느릿느릿 가다가 커다란 저수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라헤다 공원이라는 곳에 위치한 저수지였다.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넓게 펼쳐진 저수지와 주위의 자연 풍경을 보니 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라헤다-공원
그라헤다 공원

 

그렇게 기운을 얻어 다시 길을 나섰고, 이윽고 오늘의 목적지 나바라떼에 도착했다.

 

나바라떼
나바라떼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는데 어제 봤던 코콜이 아저씨가 있는 게 아닌가. 또다시 악몽같은 잠자리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에 과감히 그곳을 포기하고 근처의 사설 알베르게에 숙소를 잡았다. 가격은 조금 더 비쌌지만 좀 더 나은 잠자리가 우선이었다. 

 

힘들었던 여정이었던 만큼 그 끝의 휴식은 달콤했다. 그만큼 잠도 더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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