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들어와 처음으로 편안하게 잤다. 컨디션도 좋았다. 여유를 좀 부렸는지 출발시간은 좀 늦어지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제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스떼라보다는 좀 더 나아간 지점에서 출발하니까 오히려 시간은 좀 벌었다고 생각하면 많이 긍정적인 걸까. 

 

 

짐을 챙기고 출발하니 얼마 안 가 이라체 수도원과 와인 수도꼭지를 볼 수 있었다. 밝은 시간에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다. 

 

이라체-수도원-와인-수도꼭지
이라체 수도원 와인 수도꼭지

 

어제는 이른 시간이라 닫혀 있던 대장간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물품들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모녀로 보이는 순례자들이 갈길을 멈추고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서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꼬스로 가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어제와 다른 코스를 선택했다. 어제 올랐던 산길은 왔다갔다하면서 이미 충분히 만끽(?)하기도 했지만, 방향이 다른 길을 감으로써 어제와는 사실상 아예 다른 일정이 되는 셈이다. 되돌아옴으로써 남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양갈래의 길을 모두 걸어보게 되는 것이니 이 역시 좋지 아니한가.

 

 

새로운 길은 어제 올랐던 산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평탄하고 넓은 들판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곳곳에 포도밭이 넓게 펼쳐졌고, 간간히 길가에 높다랗게 뻗은 나무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날은 흐렸지만 선선하게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잠깐 들른 마을에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떠났다. 한참 들판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집 같은 모양의 독특한 건물이 나왔다. 내부에는 많지는 않지만 우물처럼 물도 고여 있었다. 

 

무어인의-샘
무어인의 샘

 

두 개의 아치를 가지고 있는 무어인의 샘이었다. 이름만 들어봤지 누가 어떤 용도로 만들었는지는 몰랐기에 궁금한 마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기에 아쉬움을 남긴 채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무어인의 샘을 지나자 곧 마을이 하나 나왔다. 마을 한쪽에 있는 성당 건물이 눈에 띄어 구경도 할겸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성당 안에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성당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대어 달콤한 쉼을 즐겼다.

 

 

길은 여전히 넓은 들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했지만 눈앞의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도, 주변의 나무들도, 길의 모습도. 이런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다른 매력이다.

 

 

조금 힘이 들다 싶을 무렵, 공터가 하나 나왔다. 넓게 드리워진 그늘에 벤치까지 있어서 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까지 가기 전에 에너지를 제대로 충전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어떤 여자가 길 한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손에는 악기도 들려있는 채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에 심취해 있는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노래하는 여인을 지나 걷다보니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꼬스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마을 입구에는 표지판이 순례자들을 먼저 맞아주고 있었다.

 

로스-아르꼬스
로스 아르꼬스

 

오후 3시가 채 안 된 시간에 도착하다보니 숙소에서 빨래와 샤워를 하고 나서도 밖은 여전히 한낮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로스-아르꼬스-알베르게

 

 

로스 아르꼬스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 곳곳에 바와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면서 식사를 대충 때워서 그런지 허기가 밀려왔고 저녁을 일찍 먹기로 했다. 

 

근처 레스토랑 야외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펴보았다. 전에 한번 먹어본 빠에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약간 실망스럽긴 했지만 오늘 식사를 부실하게 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고 다시 빠에야를 선택했다. 

 

그렇게 나온 빠에야는 와우~ 맛있었다. 여기서 먹어보니 전에 먹은 곳이 맛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명색이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데. 빠에야와 함께 나온 바게뜨를 함께 먹으니 맛과 양 둘 다 만족스럽게 채워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사 전에 성당에 잠깐 들러 구경하다가 저녁에 미사가 있다는 알고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문화체험의 차원에서 미사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시간적 여유도 한 몫 했고.

 

로스-아르꼬스-성당
로스 아르꼬스 성당

 

낮에 본 이 곳 성당은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내부는 넓은 공간에 철제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볼 만했다. 

 

 

어느덧 순례길에 들어선 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혼자서 길을 걸어왔는데, 어느 시점에는 다른 순례자들과도 함께 어울리면서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래, 자연스럽게 되겠지. 

 

7일차 순례길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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