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순례길의 출발 역시 도로길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레온 전후해서 계속 도로와 함께 가는 길이라 얼른 벗어나고 싶었지만 금방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순례길 들어 두번째 안개낀 아침을 맞았다. 안개가 상쾌하게 느껴졌고, 안개가 뿌옇게 도로를 가려주어 걷기에는 좋았다. 

 

 

 

 

오래지 않아 안개가 걷히고 파아란 하늘이 나타났다. 도로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고,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차들이 지나다닐 때 가끔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맑게 드러난 풍경을 보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도로 옆을 걷는 도중 오솔길 비슷하게 나 있는 곳이 있어서 그 구간을 걷게 됐다. 길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사막 속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도로를 걷다 보니 도로에 거리를 표시한 게 보였는데, 걸을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나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 그 도로는 콤포스텔라로 가는 도로로 알고 있었는데 혹시나 내가 지금 반대로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까미노 표시대로 가는 것이었기에 다른 방도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마을로 빠지는 것을 보고 역시 도로의 표시는 상관할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에는 다리 하나가 길게 놓여져 있었다. 그 자태가 꽤나 볼만했다. 다리 주위에 승마장처럼 보이는 곳도 인상적이었다.

 

 

그 마을에서 잠시 머물며 간단한 요기를 하다가 바로 앞에서 양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뛰쳐나오기도 했다.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가는 모습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을 빠져나가니 이제부턴 도로를 벗어난 구간! 드디어 까미노다운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길과 마을들을 거치며 점점 오르막을 향해 갔다. 날씨가 더워지고 한참을 걸었는데도 아직 마을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지쳐갔고, 출발 전에 안내서에서 봤던 내용을 자꾸 의식하다보니 거기에 나와있는대로 바로 안 나오면 괜히 그 내용이 잘못 나온건 아닌가 하고 탓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르막을 여러번 넘어서야 멀리서 건물의 형체가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잠깐 보이다가 금방 가려져 애를 태웠다. 오늘도 생각보다 많이 걷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발에는 이미 물집이 하나 잡힌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경이 확 들어왔다. 그런데 큰 마을 정도로 예상했는데 꽤 규모가 있는 도시가 아닌가! 지금까지 본 대도시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였다.

 

 

예상치 못한 도시의 모습에 갑자기 신이 났다. 레온을 지난지 이틀 만에 또 큰 도시를 접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발길이 빨라졌다. 시멘트로 잘 포장된 길이 내려가는 데 준비되어 있었다. 서서히 내려가면서 마을을 하나 만났고, 그 마을을 지나 철제다리를 건너니 아스토르가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아스트로가
아스트로가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오후 내내 걸었던 몸은 지쳐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몸을 호락호락 쉬게 두지 않았다. 처음 들린 공립 알베르게에서 방을 보니 침대 1층이었는데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샤워실이 예전에 큰 불편함을 느꼈던 형태였다. 여긴 아니다 싶어 환불받고 다른 곳을 찾으러 갔다. 한 곳은 문을 닫았고 다른 곳은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여기도 역시 같은 구조였다. 그렇다면 굳이 더 비싸게 주고 여기에 머물 필요는 없었다.

 

 

결국 처음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안내하고 있던 한 아저씨는 그닥 곱지 않은 눈길을 주기도 했지만 다시 반갑게 맞아주는 아저씨도 있어서 안심을 하고 짐을 풀렀다. 방을 처음 본 곳이 아닌 다른 데 배정을 받았는데 역시 1층이었지만 규모가 넓어 느낌이 괜찮았다. 숙소를 찾느라 2시간 가까이 더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론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역시나 불편함을 감지했던 샤워기에선 뜨거운 물만 나오고 거기에 수압까지 약해 빨래하고 샤워하는 데 한참 걸려 힘이 꽤나 빠지기도 했다.

 

아스트로가-알베르게
아스트로가 알베르게

 

그렇게 씻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러 나서니 이미 주위는 컴컴해져 있었다. 이젠 밤공기가 차가워져 오래 돌아다니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일단 마트에 가서 당장 먹을 것만 사고 내일이 스페인 휴일이라고 하길래 혹시 몰라 인출도 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이곳저곳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방은 시끌벅적했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 빵과 함께 캔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시원한 맥주의 목넘김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고 물집잡힌 것을 처리하기 위해 오랜만에 바늘을 꺼내 물기를 빼냈다. 그러고 나니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미 온 몸에 피로감이 업습해와 이상 뭘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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