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는 괴짜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조르바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괴짜라고 외치는 그들의 이면에는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고 동경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와 '조르바'라는 인물이 크레타 섬으로 통행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고용인(나)과 피고용인(조르바)의 관계이지만 둘 다 그런 것에 별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나'는 조르바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갖고 그를 겪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르바 역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투닥거림은 일상이 된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였기 때문. '나'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통제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데 반해, 조르바는 그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본능적이다. 원시적이고 야생적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하면서 거침없이 행동한다. '나'는 늘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고 기록한다. 그로부터 인생을 통찰하고 연구해간다.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전형적 인간이다. 


하지만 조르바에게는 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가 겨우 읽어본 책이라곤 '신드바드의 모험'(조르바의 말에 따르면). 몸으로 직접 부딪쳐가면서 살아가는 게 그의 방식이다. 인생의 달고, 쓰고, 맵고, 짠 것을 직접 맛보고 완전히 씹고 소화시켜 체화된 자신의 언어로 내뱉는다. 그에게도 생각은 있다. 하지만 늘 본능에 밀린다. 일단 하고 본다. 그런 면에서 그 역시 전형적인 인물이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둘의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다. 매력적이고 육감적인 여인 한 명이 그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느끼지만 그것을 애써 숨기려 한다. 눈조차 마주치는 것을 겁낸다. 그런 모습을 조르바는 한심하고 답답해한다. 그는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다. 일단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흥분된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움직여야겠다 싶으면 망설임이 없다. 그냥 돌진한다. 


조르바는 '나'의 본능에 충실하지 못하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사내답지 못하다며 나무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생각에 잠긴다. 때로는 그런 조르바의 말에 대항하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괴로워한다. 그리고 조르바의 솔직하고 거침 없는 행동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기도 한다. 그도 변화를 시도하긴 하나 쉽지 않다. 조르바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그도 서서히 동화되어 간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과부댁을 안게 되고, 케이블과 철탑이 몽땅 무너져내려 사업이 망했을 때도 춤을 추면서 황홀한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변하지 않는다. 조르바가 조르바의 방식으로 살아가듯이 나도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또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점잖고 고상한 체하만 뻔뻔하고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 수도승들, 부불리나의 죽음 앞에서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기뻐하며 잔칫상을 벌이고 그녀가 죽자마자 서로 앞다투어 재산을 훔쳐가는 크레타 마을 사람들의 모습 등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조르바라는 인물은 괴짜이긴 해도 너무나 인간적이고 건강해 보인다.


조르바는 자신에 하는 것에 늘 집중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사랑을 할 때는 사랑에 온전히 빠져든다. 이런 그의 특성은 마치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계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 옳다고 여기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서는 그는 당당하고 자립한 어른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나와 조르바는 사업에 실패하고 곧 헤어지게 된다. 몸은 떨어졌지만 서로의 마음에는 늘 상대방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가끔 편지를 주고받을 뿐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던 그들은 조르바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 재회한다. 조르바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특유의 익살스럽고 괴짜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나보고 이제는 철 좀 들라면서 창 밖의 먼 산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고 말처럼 울다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의 분신 같은 산투르를 나에게 남긴다. 슬프지만 담담하게 여운을 남기며 그리스인 조르바는 막을 내린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특징 중 하나는 풍경과 사물에 대한 의인화된 표현 그리고 인물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작품 전반에 녹아있는 것이다. 배경에 대한 섬세하고도 풍부한 묘사는 나와 조르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와 한데 어우러져 마치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이러한 생동감과 더불어 조르바라는 자유롭고 호쾌한 영혼을 만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강렬한 영감을 받아보는 것은 한번쯤은 해봐야할 경험이 아닐까 싶다.


조르바의 명언이 여럿 있지만 가장 조르바다운 대목을 소개하며 마무리해 본다.


나는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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