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어렸을 적 청소년 권장도서에서 한번쯤은 봤던 책. 그 책을 성인이 되서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허클베리 피'라는 래퍼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허클베리 핀에서 이름을 땄나보다 생각했던 정도가 이 책에 대한 사전지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첫 대목에서는 허클베리 핀(이제 허크이라 부르자)과 톰이 등장한다. 톰은 마찬가지로 유명한 소설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나오는 그 톰이다. 톰과 허크가 어울리면서 일어나는 일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반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톰 소여의 모험' 후속작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 책만 읽어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만 톰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이해하고 싶으면 '톰 소여의 모험'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은 될 것이다.



톰과 허크은 둘 다 백인 소년이면서 또 악동이다.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긴 하지만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움직이기도 한다. 그 중 톰은 허크보다 더 짖궂고 치밀하다. 둘 다 자유를 추구하고 구속받거나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지만 허크가 본능적이고 순수하게 움직인다면 톰은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아 나름 명분과 원칙을 세우고 움직인다. 이런 톰의 행동에 허크조차 불편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두 친구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없다. 톰의 행동에 대해 허크는 불만을 가지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수긍을 금방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체로 동조하면서 함께 움직인다. 


그런 허크의 모습에서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의식이 강해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믿고 따르기보다 그 의도를 따지거나 의심해보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설사 따르더라도 마음으로 승복하기보다 설정된 관계에 의해 혹은 특정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경우도 많아진다.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른 것은 없다. 허크가 친구를 대하고 그에 대처하는 방식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것은 짐과의 관계에서 허크가 보여주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초반에는 등장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때까지는 좀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다 허크가 죽은 것처럼 해서 과부댁과 왓슨 아줌마 그리고 그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잭슨 섬으로 도망을 가고 거기서 마찬가지로 도망쳐 온 짐을 만나면서부터 허클베리 핀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허크과 짐은 종속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거기에 얽매여 있지는 않는다. 허크에게 불만이 있을 때 짐은 화를 내기도 하고 할 얘기도 또박또박 한다. 그러면서도 늘 허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돌봐준다.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씨가 착하고 따뜻한 짐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허크과 짐은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돌보면서 점점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다 자칭 왕과 공작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사기꾼이다. 여기저기 마을을 들리면서 그들은 사람들을 속이면서 많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결국은 몽땅 잃게 된다. 정직하게 벌지 않은 돈은 결국 자기들 것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허크는 두 사람이 처음부터 왕과 공작이라고 본인들을 소개하는 것부터 거짓말인 줄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 하고 그들을 받들고 시중도 들어준다. 뗏목 위에서 생활하는 처지이기도 하고 도망친 짐과도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분란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게 본인에게 유리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은 처세를 잘한다기보다는 본능적인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같이 다니다가 왕과 공작은 사정이 어려워지자 동거동락했던 짐을 그만 어느 한 농장에 팔아버린다. 그것도 헐값에. 그들의 인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허크는 짐이 팔려버렸다는 것을 알자마자 짐을 구출하러 간다. 그리고 거기서 톰을 다시 만나게 된다. 어지간한 톰도 죽은 줄만 알았던 허크가 눈 앞에 나타나자 혼비백산한다. 귀신이 나타난 줄 알고. 그러다 진짜 허크인 줄 알자 다시 그의 악동 기질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짐이 팔려간 곳은 톰의 이모댁이였다. 허크가 그 농장에 도착하자 샐리 이모는 그를 톰으로 착각한다. 허크는 처음에는 사실대로 얘기하려다 그냥 톰인 척 한다. 톰으로 위장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가슴이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능청스럽게 잘 대처해서 자신을 톰으로 믿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 톰이 곧 온다는 사실을 하고 미리 나가 톰을 맞으러 간다. 톰은 처음엔 놀랐지만 본인은 시드가 되어 허크와 함께 짐 탈출작전을 계획한다. 허크는 하루빨리 짐을 자유의 몸으로 구해주고 싶었지만 톰은 허크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지 자꾸 요상한 장난을 친다. 그냥 쉽게 구해주는 건 재미없다면서 일부러 구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상황을 점점 곤란하게 하다가 결국 본인의 장딴지에 총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톰은 그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것만 보더라도 톰이 얼마나 짖궂은 악동이면서도 범상치 않은가를 알 수 있다. 허크는 톰의 지나친 장난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결국 그 뜻에 따른다. 허크도 결국엔 같은 악동이니까.


톰이 그렇게 총에 맞자 허크는 그를 구하기 위해 의사에게로 간다. 톰이 총에 맞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짐은 그 옆에서 의사를 도와 정성껏 톰을 간호해준다. 톰이 자신에게 했던 짖궂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짐의 마음씨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톰이 왜 그랬는지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톰은 이미 허크랑 만나기 전에 짐의 원래 주인이었던 왓슨 아줌마가 그에게 자유를 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톰이 샐리 이모에게 그 사실을 얘기만 하면 짐은 바로 풀려나는 것이었는데 그건 톰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어렵게 일을 만든 것. 사실 여기서 톰이 짐을 구출하는 과정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못된 짓을 하는 가에 대해 이해되지 않아 톰에게 분노와 짜증의 감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톰이 지독한 악동이긴 하나 그에 대한 미운 마음은 사라지게 됐다. 샐리 이모와 가족들도 그걸 알았기에 혼쭐을 내주겠다고 말은 할지언정 톰과 허크를 용서해준 것이었겠지.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되고, 샐리 이모는 허크를 양자로 삼아 문명인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허크에겐 악몽 같은 일. 하여 허크가 자유를 찾아 다시 떠날 것을 계획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책의 본문 앞에는 다음과 같은 저자의 경고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는 자는 기소당할지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려는 자는 추방당할지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줄거리를 찾으려는 자는 총살당할지어다.



표현은 무시무시한데 내용은 웃기기도 하고 재밌다. 왜 저자는 이런 얘기를 했을까? 이 이야기는 허클베리 핀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험담이다.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겪게 되지만 허크는 또다시 자유를 찾아 떠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줄거리를 파악하고 동기를 찾고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보다는 허크를 따라 그의 모험을 함께 즐기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 당시의 시대상과 문제 의식을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가 정말 이야기하고자 한 건 본디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게 아니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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