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눈을 떴을 때 잘 잔 기분이었다. 피곤할 때 바로 잠들어서 그랬을까. 주변의 고요함을 편안하게 느끼면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파리에서 하루 머무는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은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파리로 올 때 도착시간이 늦은 밤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음날 바로 출발하는 것보다 하루 쉬고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을 하여 일정을 그렇게 짠 것이다. 

 

사실 그렇게 계획만 짰을 뿐 파리에 있는 하루 동안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게 없었다. 그닥 계획적인 편은 아니어서 여행을 가도 꼭 필요한 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타일이랄까.

 

 

일단 파리의 아침을 느껴보고 싶었다. 옷을 챙겨입고 조용히 숙소를 나왔다. 아직 하늘은 어스푸름했고 간간이 불이 켜진 곳들이 보였다. 

 

숙소 주변을 산책해보기로 했다. 처음 눈에 띤 것은 편의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외국의 편의점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다. 안에는 외국인이 물건들을 나르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을 보니 여기가 외국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하늘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고, 주변 건물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리의 건물들은 확실히 한국과 달랐다. 머리 속에 있던 유럽의 건물들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오래되어 보이면서도 심플하고 깔끔한 양식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문을 연 듯한 카페도 보였다. 카페에 붙어 있는 읽을 수 없는 언어를 보고 여기가 외국인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한동안 주변을 돌아보다가 슬슬 허기가 느껴졌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길을 잃고 말았다. 건물들이 비슷하게 생겨가지고 나올 때부터 너무 멀리는 가지 말아야지 했는데도 막상 숙소를 찾으려니 쉽지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라도 보고 싶었지만 언어는 둘째치고 숙소가 있는 건물이 어디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한참 헤매다가 겨우 숙소가 있는 건물을 발견하고 한숨을 돌렸다.

 

숙소에 들어가보니 아주머니가 아침식사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토스트된 빵과 버터, 쨈, 사과와 바나나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모두 다 꿀맛이었다. 특히나 빵이 그렇게 맛이 좋을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이 빵은 특별히 맛있는 빵이라고 자랑스레 얘기를 해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주머니가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아직 계획한 게 없다고 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방에 들어가 지도와 펜을 가져오더니 가볼만한 곳의 위치와 동선을 표시해주었다. 나처럼 계획없이 온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그렇잖아도 어떻게 보낼지 생각중이었는데 이걸 참고해서 움직이면 되겠다 싶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파리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아주머니가 알려준 곳은 대부분 파리에서 유명한 관광지였다. 숙소가 있는 곳이 주요 관광지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도보로 30분에서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었다. 마침 날씨도 좋았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출발해 처음 들른 곳은 '몽파르나스역'(GARE MONTPARNASSE). 여기는 다음날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탈 곳이였다. 숙소에서 가까웠고 미리 타는 곳을 알아두려고 사전답사차 가기로 했다. 

 

차도를 건너던 중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에펠탑이라니...

 

에펠탑
길을 걷다 발견한 파리 에펠탑

 

몽파르나스는 생각보다 큰 역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다들 분주하게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다 외국인인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또다시 여기가 외국인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벌써 세번째!).

 

 

역이 크고 플랫폼이 여러 군데라 내일 탈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내가 탈 기차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미리 와보지 않았다면 큰일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되었다. 

 

역을 나와 걷다보니 곧 시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여기부터는 공원과 박물관 그리고 수많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딱 봐도 유럽에 왔다는 느낌이 왔다. 아침에 숙소 주변에서 보았던 건물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이곳저곳 둘러봤다. 곧 말로만 듣던 세느강도 보게 되었다. 강과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룬 모습이 아름다웠고 다채로운 풍경들에 눈이 바삐 돌아갔다. 그러다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모여있는 곳들이 눈에 띄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그곳이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 광장, 루브르 궁 등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던 곳들이 연이어 보였고,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거나 사진을 찍기에 바빠댔다. 

 

그리고 거기에는 익숙한 언어도 들을 수 있었다. 해외 유명한 곳에는 한국인들이 항상 있다고 했는데 역시나 여기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파아란 하늘과 화창한 날씨 속에 다들 기분 좋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공원 한쪽에는 벤치들이 줄지어 있었다. 거기는 대부분 외국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햇살을 즐기며 여유롭게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빈 의자를 찾아 앉고 여유로움을 느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어딜까? 보통은 파리의 상징처럼 생각되는 에펠탑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기왕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은 보고 싶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아까 멀리서 보았던 에펠탑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본 에펠탑은 거대한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때 철제구조물로 된 흉물이라는 오명도 있었지만 눈 앞에서 직접 본 에펠탑의 모습은 가히 파리의 명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에펠탑
파리 에펠탑

 

서울의 랜드마크가 남산타워라면 파리는 에펠탑이었다. 결국 어떤 것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거기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는가의 문제다. 프랑스 사람들이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는 에펠탑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찾아와 구경하는 게 아닐까. 

 

한쪽에서만 구경하는 건 아쉬워서 돌아다니며 여러 각도에서 에펠탑을 구경했다. 에펠탑도 좋았지만 그 주변에 잘 어우러진 공원도 참 좋았다. 공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에펠탑을 보다가 문득 밤에 보는 에펠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에펠탑의 야경도 기대가 되는 것이다. 

 

지도를 보니 에펠탑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정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또 언제 와서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저녁때 다시 와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필요한 것만 챙겨 몸을 가볍게 하고 나왔다.

 

미리 길을 봐두기는 했지만 밤이라 그런지 에펠탑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에펠탑의 야경이 기대되서 그런지 가벼운 마음이었다. 

 

어느덧 에펠탑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멀리 빛나고 있는 에펠탑을 보고 나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윽고 눈 앞에서 에펠탑을 보게 되었을 때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낮에 본 모습이 멋있었다면 밤에 보는 에펠탑은 아름다웠다. 세느강을 끼고 환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는 에펠탑의 모습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에펠탑-야경
에펠탑의 야경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연인들이 에펠탑을 바라보며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고 있었다. 에펠탑과 함께 세느강변의 야경도 무척이나 예뻤다. 한걸음씩 발을 떼면서 보이는 풍경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세느강
세느강

 

이렇게 해서 하루 동안의 파리 여행을 마쳤다. 알려진 명소들을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파리라는 도시의 모습을 천천히 눈으로 담으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명소들만 볼 게 아니라 숙소 주변의 동네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에 담은 파리의 모습이 벌써부터 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에 하루 쉬면서 파리를 돌아본 것은 잘한 선택이였다.

 

내일은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이 시작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은 '프랑스길(Camino Frances)'이다. 나도 그 길을 걸으려고 왔고 내일 그 출발이 되는 장소로 가게 될 것이다.

 

오늘 밤은 내일 같이 가게 될 순례자와 보내게 됐다.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한다는 설렘을 공유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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