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두번째 아침.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정식 이름은 ST-JEAN-PIED-DE-PORT. 보통 줄여서 '생장'이라고 부른다)으로 간다. 기대감에 부풀어서인지 잠을 설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기분만은 좋았다. 

 

기차를 타기 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전날 기차역까지 가는 동선과 타는 곳을 파악해놓은 덕분이었다. 아침으로 어제와 같은 메뉴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첫 아침을 먹는 옆의 순례자에게도 어제처럼 빵을 자랑스레 설명하며 내놓았다. 

 

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숙소 아주머니도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이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순례자만 받는 숙소를 운영하고 계셨구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1>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양한 루트가 있다. 각 루트의 출발지가 다 다른데, 그 중 가장 많이 찾는 '프랑스길' 같은 경우 시작점이 오늘 내가 가는 생장이다. 생장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피레네 산맥을 넘기 전에 위치한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프랑스길을 처음부터 걸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이 생장으로 모이게 된다. 
 
나중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의 얘기를 통해 이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생장으로 오기도 하고, 자기집에서부터 걸어서 온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길 전체 길이가 약 800km인데, 어떤 이들은 1000, 2000km를 걷는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를 타야만 올 수 있는 나로서는 꿈 같은 얘기였다. 통일이 되면 그때는 기차를 타고 올 수 있으려나.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경우, 생장에서 출발하려면 대부분 파리로 오게 된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생장으로 오기도 하고, 파리에서 관광을 하고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파리에서 잠깐 쉬거나 관광을 하고 넘어오는 경우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데, 내가 머문 올리비에 하우스 같은 숙소가 파리에 몇 군데 있다. 이곳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함께 동행하는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아주머니는 지금도 가끔씩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가볍게 짐을 챙겨서 산책하듯 며칠씩 다녀오는 식으로. 여기 살면 산티아고 순례길도 산책처럼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부럽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숙소를 나설 시간이 됐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우리에게 아주머니는 행운을 빌어주었다.

 

 

기분 좋고 화창한 날씨 속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금방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했다. 많은 인파를 뒤로 한채 어제 봐둔 플랫폼을 향해 갔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는 떼제베(TGV)였다. 프랑스의 고속철도인 떼제베는 한국의 KTX의 모델이 된 기차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KTX도 아직 안 타봤는데 프랑스에서 떼제베를 먼저 타보다니... 뭔가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플랫폼에 여러 대의 기차가 있어서 타고 갈 기차가 어떤 것인지 헷갈렸다. 이미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져 마음이 초조해졌는데, 동행한 순례자가 떼제베를 타본 경험이 있어서 다행히 출발 전에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동행자와는 떨어져있는 좌석이라 이따 보기로 하고 좌석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앉자마자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떼제배
떼제배(TGV)

 

2층짜리 기차는 처음이었다. 2층 높이에서 달리는 기차를 타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기에 좌석을 예약할 때 망설임 없이 2층을 선택했다. 뭔가 색다른 것을 기대하며.

 

우선 기차의 승차감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속도감은 느껴지면서 매끄럽게 움직이는 이 느낌! 기차 내부도 깔끔했는데, 와이파이와 플러그 연결이 가능했고, 좌석도 넓었다. 갑자기 신이 났다. 4시간 걸리는 기차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함께 탔던 순례자가 놀러와서 같이 기차 안의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기차는 꽤나 길었고 1층은 2층과 또 느낌이 달랐다. 

 

한참 가다보니 식당칸도 나왔다. 조용한 기차 안에서 유일하게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 창문 너머의 풍경에 빠졌다. 파아란 하늘 아래 평화로운 풍경이 이어졌다. 이 지역은 산이 없었고 그래서 들판과 함께 멀리 지평선이 보였다. 

 

간간히 비슷한 형태와 색깔의 집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파리 도심을 벗어나니 한국 같은 또 한국과는 다른 전원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내릴 곳을 알려주는 방송이 들렸다. 내릴 곳은 바욘(BAYONNE). 기차가 생장까지 바로 가지 않아서 이 곳에서 갈아타야 했다.

 

바욘
바욘

 

바욘은 휴양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생장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데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각자 시간을 보내다 만나기로 했다. 

 

커보이지 않은 곳이라 한바퀴 정도는 금방 둘러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강 건너에 있는 마을을 가는 데만 이미 절반의 시간이 지나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큰 성당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저기까지 갔다올 수 있을까 망설여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뛰듯이 걸어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골목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좋아 하나하나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곧장 성당으로 갔고 그 앞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웅장한 성당의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성당 곳곳에는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도 하나씩 살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바욘-성당
바욘 성당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얼마 안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바욘역까지 뛰었다. 겨우 제 시간에 도착하여 생장행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바욘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하루 정도는 머물면서 구경할 가치가 충분한 도시라고 느껴졌다.

 

생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한국인 2명을 새롭게 만났다. 이미 복장에서 순례자임을 알 수 있었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생장까지 1시간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게 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차는 어느덧 생장역에 도착해있었다. 

 

생장역
생장역

 

생장역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커다랑 여행배낭을 메고 있었다. 다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낭 하나만 걸쳐메고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제 곧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우리는 마을로 향했고, 먼저 순례자 사무실을 찾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2>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먼저 끄레덴시알(Credential)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알베르게'라고 하는 순례자 숙소가 있다. 이 숙소에 머물기 위해서는 순례자 여권이 필요하다. 순례자 여권의 빈 칸에 숙소마다의 고유한 도장을 찍어 인증을 받고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 수 있다.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도장을 찍은 순례자 여권을 통해 최종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에서 완주증명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참고로 완주증은 꼭 생장부터 걸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참가신청서를 작성하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다. 배낭의 무게를 잴 수 있는 갈고리 같은 모양의 저울이 있어서 각자 무게를 재봤다. 내 가방은 7kg 정도였다.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가벼운 편이었고 짐을 잘 쌌다는 생각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장거리를 걷는 길이기 때문에 가방 무게는 되도록 가볍게 하는게 유리하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한 쪽에 쌓여있는 가리비를 발견했다. 가리비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각자 기부금을 내고 마음에 드는 가리비를 골라 배낭에 달았다. 가리비까지 달으니 진짜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순례자-사무실
생장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

 

이제 알베르게를 찾을 차례였다. 사전에 봐 두었던 55번 알베르게로 향했다.

 

55번-알베르게
55번 알베르게

 

숙소는 남녀구분이 따로 있지 않았고 2층 침대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눈을 마주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빈 자리를 골라 배낭을 놓았다. 함께 온 사람들과는 저녁식사 때 만나기로 하고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까 생장역에서 마을까지 오면서 제대로 주변을 구경을 못한 아쉬움이 있어 생장역부터 시작해서 마을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작은 마을인 줄 알았던 생장은 생각보다 넓었다. 산과 나무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밝은 갈색 지붕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생장은 한 폭의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그 경치를 음미했다. 

 

생장에는 옛 성곽도 있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성벽과 성문에는 순례자 말고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성벽 뒤쪽으로 가니 한적한 산책길이 나왔다. 호젓하게 그 길을 걷다보니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본 마을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고 함께 왔던 순례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먹으러 갔다. 빵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을 시켜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같이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후자였다. 그렇게 일정을 확인하고 서로의 건투를 빌며 숙소로 돌아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순례길에 대비해서 일찍 자두려는 걸까. 나도 주변정리를 간단히 하고 일찍 잠을 자기로 했다. 오늘 하루 먼 길을 왔기에 사실 피곤하기도 했다. 내일 일찌감치 나갈 것은 아니었지만 푹 자두어야겠다 생각하고 침대에 누어 잠을 청했다.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일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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