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날도 추워서 걷기에 괜찮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출발할 무렵에는 비가 멈추었습니다. 생장 때도 그랬는데, 이렇게 이 길을 걷는데 날씨가 돕는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아직은 어둑한 느낌이 있는 때에 출발을 하면서 나가는 길이 헷갈렸고, 순례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보여 지금 가는 길이 맞냐고 물었더니 확신이 없는 말투로 혼란스럽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녀가 길을 가는 방향으로 별 생각없이 따라가다가 도로가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알게 되었죠. 순간 길을 잘못 들었음을 직감하고 그 사람에게도 큰 소리로 알려준 뒤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가다보니 순례길로 향하는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실하지 않은 길에 들어설 때는 무조건 다른 사람을 따라갈 게 아니라 방향을 내가 잘 파악하고 갈 필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방향이 잘못된 상태에서 빨리 가는 건 나중에 더 힘들어질 뿐이니까요. 시간과 에너지를 다소 소모하긴 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이런 일을 겪게 돼서 앞으로의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비가 막 그치고 난 뒤라 그런지 공기가 상쾌하여 걸으면서 기분도 좋아졌는데요. 땅이 질퍽거리는 데가 많아 좀 불편하긴 했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습니다. 기온도 전날보다 올라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됐고요.

 

이번 순례길 구간은 중간에 마을들은 자주 나타났는데 먹을 데가 보이지 않았고, 식량이 이미 떨어진 상태여서 배고픔을 느끼며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힘들기보다는 나중에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희망회로를 돌렸습니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항상 비상식량을 챙기는 게 좋습니다. 걷는 중간에 나오는 마을에 마트나 상점이 있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구간도 있기 때문에 미리 챙겨놓는 게 유리합니다.

 

마을에 먹을 데는 없었지만 쉴만한 곳은 군데군데 나타났고, 그 중 한 곳에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쉬고 나니 몸도 가뿐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져 힘을 잘 충전하여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순례길을 잘 걷기 위해서는 나에게 적절한 휴식을 갖는 게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식당이나 바 같이 먹을 데가 있지 않아도 잘 찾아보면 마을에서 쉴만한 장소를 발견하여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좁은 구간이 나타났고, 내 앞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외국인 무리가 길을 걷고 있었는데요. 좁다란 길에서 그들이 줄줄이 가고 있어 정체가 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멈춰서 있길래 먼저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간을 내주어야 좁은 길을 지나갈 수 있는데 뒤에 사람이 오는 것을 인지했는지 못했는지 가만히 멈춰있더라고요. 그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먼저 가려고 할 때 자리를 확보해주면서 먼저 가라고 길을 내주었습니다. 어떤 방식이 맞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같은 상황에서 비교가 되는 모습을 보니 사람인지라 그때 드는 감정도 다르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좀 더 기분 좋은 일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자연의 길을 벗어나 어느덧 규모가 큰 마을이 나타났고 좀 더 지나니 도시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팜플로나 이전에 인접한 도시로 보였습니다. 익숙한 도시의 길을 걷는 것은 편한 것도 있었지만 복잡함이 느껴져 얼른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한 끼도 먹지 못한 상태여서 중간에 마트에 들러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팜플로나로 향했습니다.

 

곧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팜플로나에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팜플로나는 들어가는 길이 성벽을 따라 나 있고 성문을 통과하면 도시의 모습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돌로 된 성문을 통과하자 팜플로나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팜플로나로-들어가는-성벽-모습입니다
팜플로나로-들어가는-성문-모습입니다

 

아직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힘이 든 상태여서 우선 숙소부터 찾기로 했습니다. 미리 위치를 파악해놓지 않아서 한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숙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팜플로나의 공립 알베르게인 이 숙소는 이전 순례길에서도 머무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보니 반갑기도 했습니다.

 

짐을 풀고 빨래와 샤워부터 했는데요. 사실 이때 바로 씻기보다 휴식을 취하는 게 낫다는 것을 나중에 느꼈습니다. 물론 씻으면서 피로를 풀 수도 있지만 보통 샤워와 빨래를 하면서도 힘을 쓰기 때문에 하루의 순례길을 마친 직후에 몸이 많이 지친 상태라면 나름의 방식으로 휴식을 먼저 취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렇게 씻고 나서 이제 뭘 좀 먹어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갔습니다. 아직 음식을 사온 건 아니었고 주방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보러 간 거였습니다. 그렇게 살펴보고 있는데 웬 외국인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보더니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얼떨결에 그냥 보러 왔다고 말하자 이후에도 이런저런 질문을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기분이 안 좋아졌고 다소 퉁명스럽게 답을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 상황을 돌이켜보니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이고 나에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일일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음을 알게 되면서 이상한 사람들도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내 태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주변 구경도 할 겸 숙소를 나와 먹을 것을 사러 가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마트에만 들러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돌아왔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와 곧 침대로 향하게 되었죠.

 

이렇게 팜플로나에 도착하면서 이번 순례길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날은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할 지를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팜플로나에서는 하루를 더 묵기로 하였기에 다음 글에서는 팜플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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