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시끌복잡한 숙소에서 빨리 빠져나와 후련한 기분으로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는 데만 한참 시간이 걸리면서 역시 팜플로나는 큰 도시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제대로 쉬지 못해 좋지 못한 컨디션도 길을 걸으면서 점점 회복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팜플로나를 비롯해 프랑스 코스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몇몇 대도시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도시들은 규모가 워낙 크기에 들어가는 데도 또 나가는 데도 시간이 상당히 소요됩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한동안 이어지던 도시의 풍경은 어느 순간 자연의 모습으로 뒤바뀌고 있었습니다.

 

팜플로나를-빠져나가는-지점-모습입니다

 

다시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건 좋았는데 전에 잡혔던 물집이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발걸음을 빨리 해보니 오히려 물집을 신경쓰지 않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물집이 생기면 사전에 터뜨리지 않는 이상 계속 느낌이 오는데, 그럴 때는 조심하면서 계속 신경쓰기보다 평소대로 걷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걷는 게 좀 나아지긴 했지만 중간에 힘들어질 때 쉬지 않고 계속 걸었기 때문에 좀 무리한 느낌이 있었고,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물집도 더 생기고 발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순례길에서 걸을 때는 힘들어지기 전에 쉬어주는 것이 낫습니다. 또한 무리해서 빨리 가려고 하기보다는 자주 쉬더라도 중간중간 휴식을 잘 취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팜플로나가-보이는-순례길입니다

 

길을 걷다가 기억에 남는 마을이 하나 나왔습니다. UTERGA라는 곳이었는데요. 이곳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예전에 이 마을을 빠져나올 때 걷는 길로 가지 않고 차도로 빠져 한참을 갔기 때문입니다. 당시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모양인지 무심코 마을에서 나왔는데, 한참을 걸어도 사람이 보이지 않고 이상하게 차도만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때서야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푹푹 발이 빠지는 높은 언덕을 가로질러 다시 걷는 길로 진입했었습니다.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그 기억이 선명하게 났고, 이번에는 안내표시를 잘 살피면서 걷는 길로 잘 진입을 했습니다. 사실 차도로 가도 다음 마을까지 갈 수는 있지만, 차도는 위험하기도 하고 걷는 맛도 떨어지기 때문에 차도로 원래 이어진 길이 아니라면 자연의 길을 걷는 게 개인적으로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걷다 보니 순례길에서 유명한 스팟 중 하나인 용서의 언덕을 만나게 됐습니다. 오르막의 끝 지점에 다다르면 이곳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곳은 바람을 가르며 순례길을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철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순례자들에 인기 있는 포토존이기도 합니다.

 

용서의-언덕-모습입니다

 

용서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살면서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을 이곳에서 용서를 통해 풀어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잠깐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용서의 언덕을 지나서부터는 내리막 급경사가 시작됩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 속에 내리막을 한참 걷다 보니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곳은 마을이 한 번에 나오지 않고 건물이 길게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마을에 도착했나 싶으면 더 가야 하는 형태가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마을 구조는 급경사 구간을 계속 오르내리며 온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다소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을에 진입을 하면 바로 숙소가 나오는데, 이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이곳에 묵을 때 이 알베르게를 이용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들어 등록하지 않고 한번 들어가 보았고, 역시나 분명한 이유가 있더군요. 샤워실 버튼이 원터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샤워할 때 냉온수를 조절할 수 없는데, 물온도가 보통 뜨거운 경우가 많아 샤워하는 데 불편함을 겪기 쉽습니다. 이러한 구조의 샤워시설이 순례길 숙소에 몇몇 군데 있는데, 한번 경험한 후로는 이런 구조는 피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죠.

 

망설임 없이 공립 알베르게를 지나쳐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추천받은 숙소가 있어 그곳을 가 보았고, 시설이 다소 낡기는 했지만 있을 건 다 갖추고 있어 이곳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먼저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근처 마트를 찾아봤는데, 가까운 곳에 디아(Dia)가 있었습니다. 디아는 스페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마트 체인점 중 하나인데요.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마트에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사고 숙소에 돌아와 배불리 저녁을 먹었습니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는 아름다운 아치형의 다리를 볼 수가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풍경도 좋았고 이 아름다운 다리도 천천히 감상하며 힘들게 걸은 후의 달콤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푸엔테-라-레이나에-있는-아치형-다리의-모습입니다

 

하루를 쉬고 걸어서 그런지 이날 순례길은 조금 고되기도 했는데요. 걷다가 힘들어질 때는 무리해서 계속 갈 게 아니라 중간에 잘 쉬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