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 있는 사립 알베르게는 공립과는 달리 출발시간이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숙소마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른데,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머문 곳은 보통 8시가 체크아웃인 공립보다는 30분의 여유시간이 있었습니다.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더 마음이 편안했던 것인지 아침에 눈을 떠보니 8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후다닥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발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이전에 잡혔던 물집이 커져서 움직이기만 해도 통증이 유발되었고, 잠깐 쉬었다가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근처 교회에 들러 잠시 휴식과 정비를 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잠시나마 편안하게 머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약간의 기부금을 넣고 나서 이날의 순례길을 나섰습니다.

 

에스테야로-가는-순례길

 

순례길에 있는 마을에는 대부분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데요. 비수기에는 작은 규모의 마을 교회들은 보통 문이 닫혀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에는 교회가 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순례자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또한 잠시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또한 비가 내리거나 마을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 경우에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정류장에서는 비도 피할 수 있고 의자도 잘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좋은 휴식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순례길에서-쉴-수-있는-버스정류장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불쾌한 일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앞서 가던 순례자 중 한 명이 담배를 피면서 걸어서 그 연기가 고스란히 뒤에 걷고 있던 내게 전달이 된 것입니다.

 

순례길 위에서 담배를 피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다소 거리가 있어 담배 핀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큰 소리로 한참을 통화하면서 길을 걷는 한 외국인 아줌마를 지나쳤을 때 왠지 이 사람이 담배도 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보통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은 비슷한 행위를 또 한다는 것을 경험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안 좋은 감정을 유발하는 사람의 영향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발에 통증이 여전히 있었지만 발걸음을 빨리 놀렸고, 그러다가 발에 느껴지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왠지 물집이 터진 것 같았는데 휴식을 취할 때 확인해보니 역시나 물집 잡힌 부분이 완전히 터져 진물이 새어나와 양말을 적신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기에 일단 다시 출발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물집이 생기고 터진 이유 중 하나로 양말이 문제였음을 알았습니다. 스포츠양말이라고 산 것이 신축성이 떨어지고 발에 작아서 그 양말이 발가락 부분을 계속 쪼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압박이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터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양말은 신축성이 있고 사이즈가 여유가 있는 것을 신는 게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또한 물집은 놔둘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생겼을 때 바로 터트려서 대처를 해줘야 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집 관리에 대해 그냥 놔둬서 알아서 터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는 글도 본 적이 있었는데, 경험상 물집은 생겼을 때 바로 터트려서 관리를 해주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됩니다.

 

물집이 터져서 그런지 전보다 걷는 데 아픔이 덜해지긴 했지만 오래 걸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중간에 나오는 마을마다 들러 휴식을 취해주며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던 중에 오늘의 목적지 에스테야 이전 마을에서 출발할 무렵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순례길 들어 처음으로 우의를 꺼내 입었습니다.

 

그렇게 우의를 챙겨 입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는 부슬비로 바뀌었습니다. 잠시 기다렸다 출발했으면 우의를 굳이 입지 않아도 됐던 상황이어서 비가 갑자기 많이 올 때는 잠시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경험삼아 우의를 꺼내 입었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머지 않아 에스떼야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테야도 전날 머무른 푸엔테 라 레이나처럼 마을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는 풍경이었는데, 마을 초입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가 괜찮아 보여 그곳에 묵기로 했습니다.

 

짐을 풀고 마트로 먼저 향해 양말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아쉽게 양말은 팔고 있지 않아 먹을 것만 사서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을 하고 그날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했습니다.

 

이날 순례길은 물집으로 인한 아픔과 배려가 없는 순례자로 인해 걷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나의 경험으로 여기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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