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서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게 있었다. 그러다 점점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쓰는 용어와 이야기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공감가는 부분이 생겨났다.

 

책의 제목 이름이기도 한 '피로사회'는 저자의 명명에 따르면 성과사회를 말한다. 후기근대사회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도 부르는 사회 말이다. 이에 대립되는 개념은 규율사회다. 이는 근대사회와 그 이전을 지칭하는 것으로 규율과 억압의 기제가 작동한 사회를 의미한다.

 

규율사회는 금지, 강제, 규율, 의무, 결핍, 타자에 대한 거부 등 부정성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 패러다임은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서양 사회를 지배했고,  저자는 이를 면역학적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성과사회로 오면서는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되었다.

 

규율사회에서 인간은 지배와 강제에 의한 착취를 받는 복종적 주체였다면, 성과사회에서의 인간은 성과주체가 되어 과거의 지배와 강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성과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형태의 착취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과 주체는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착취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착취의 진화로, 타자의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착취의 결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에 빠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는 현 사회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생각해볼 것들을 계속 던져준다. 우리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더욱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결국은 자기 착취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면? 그리고 그 결과로 우울증을 겪을 뿐이라면? 

 

저자가 얘기하듯이 오늘날 사회에서 성과주체들 중 긍정성 과잉으로 인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 등을 겪는 이들이 분명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증상을 겪는 이들은 짐작건대 방향성을 잃은 이들이라고 본다.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왜 하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계속해서 성과를 추구하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목적성 없는 이들이 이러한 증상이 찾아오기 쉽다. 성과를 많이 추구한다고 무조건 이러한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책에서는 성과주체에 대한 위와 같은 구분에 대한 언급은 나와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근대사회를 전후하여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생겼고 그 패러다임으로 인해 사람들이 시대별로 겪고 있는 '착취'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의 이런 구분은 타당성이 있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면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 그것이 자기 착취인지 아니면 의미 있는 성과의 추구인지를 판별해내는 것은 본인의 몫일 것이다.

 

본문의 내용 중 활동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흥미롭다. 그는 귀 귀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두고,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긍정적 힘과 부정적 힘이다. 긍정적 힘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부정적 힘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정적 힘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무력함과 구별된다. 만약 부정적 힘이 없이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잉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인간을 우울증과 소진 상태로 몰고가는 것이다.

 

피로사회
피로사회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를 구분하고 각 사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오늘날 지나치게 성과를 추구하는 행태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성과를 추구하는 목적과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성과사회의 주체들이 모두 똑같은 증상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과사회에서 성과주체가 빠질 수 있는 증세에 대해서는 한번쯤 귀 귀울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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