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역사문화연구회 오동철 선생님과 함께 하는 두번째 역사 투어. 이번 시간은 춘천 시내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예전에 시내를 도보투어로 진행했을 때 날씨의 영향도 있었지만 걸어다니는 특성상 먼 곳까지 가기는 힘들었다. 이번 코스도 저번 도보투어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차를 이용해 움직였기 때문에 날씨가 꽤 추웠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었다. 

 

도보 투어도 그렇고 그 이전에 답사를 하면서 한번씩은 다 둘러보며 알아봤던 곳이었지만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실제로 각 코스를 돌면서 검색만으로는 알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우리가 들린 곳은 소양정 비석군이었다. 옛 관리들의 업적이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들을 한 데 모아놓은 이곳에는 비석뿐만 아니라 그 비석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이 있었다. 거북 모양으로 생긴 받침돌들을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바라보니 거북이 웃고 있었다. 세월에 닳고 닳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웃고 있는 얼굴이였다(자세히 봐야...)

 

 

전에 이곳에 왔을 때 궁금증으로 남았던 게 있었다. 맨 안쪽에 있는 '친일파 이범익 단죄문' 표지판 옆에 있는 비석 두 개 중 어느 것이 단죄문이 쓰여 있는 비인지에 대한 부분. 그때 알아본다고 하고 아직 확인을 못해봤는데 오늘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두 비석 모두 거기에 써 있는 내용이 단죄문이 아니었던 것! 표지판 바로 옆의 검은 비석은 일제 때 이범익이 강원도지사로 재임했을 당시 자신이 세운 기념비였다. 그 옆에 표지판을 세워 이범익이 이런 비석을 세워 친일 행적을 했다는 것을 알린 것이 바로 단죄문이었다. 

 

 

그렇다면 검은 비석 옆의 작은 비석은? 그것은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비석이었다. 소양정 비석군 맞은편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그 나무가 이승만 하양목이였다. 그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거기에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윗부분에 한문으로 '이승만'이라는 글자가 또렷히 새겨져 있었다.


 

 

이승만 하양목 왼편에는 하얀색 건물이 있었는데, 문을 닫은 곳인 줄 알았던 그곳은 예술인들이 모여 술 한잔하고 이야기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겉보기와 달리 문도 매일 열려 있는 곳이고. 거기야말로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곳처럼 보였다. 안내자분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곳이었다. 

 

소양정 비석군을 살펴보고 옆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소양정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춘천 절기 전계심묘비를 다시 만났다. 진주에 논개가 있다면 춘천에는 전계심이 있다는 안내자분의 설명을 들으며 소양정으로 들어섰다. 

 

춘천 곳곳을 다녀보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답게 소양정의 이름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원래 정자는 1층으로 되어 있는데 소양정은 2층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름에 대한 얘기를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니 곳곳에 걸려 있는 편액들이 보였다. 조선 중기와 후기에 당시 내노라 하는 선비와 관리들이 찾아와 앞다투어 시를 남긴 소양정. 현재 걸려 있는 것들은 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새롭게 만든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어쩐지 보관상태가 좋아 보이더라니. 

 

소양정을 보고 내려와 차를 타고 우리가 간 곳은 근화동에 있는 당간지주였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해 돌기둥을 세워 놓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왜 절에서 이런 당간지주가 있었을까? 그건 일종의 현수막 게시대였다. 광고물 홍수시대에 우후죽순처럼 내걸리는 홍보용 현수막의 정비를 위해 지자체마다 시내에 현수막 게시대를 설치하는데, 이러한 현수막 게시대의 원조가 사찰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시에도 절을 통해 알릴 것들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간지주에서 걸어가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서 본 것은 허물어져 있는 담벼락이었다. 그쪽을 기점으로 넓게 펼쳐진 부지가 옛 미군기지였던 캠프페이지였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예전에는 담벼락이 이어져 있었고, 그렇게 기지가 한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지금은 그 흔적만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7층 석탑이었다. 7층 석탑은 당간지주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둘 다 고려 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당간지주와 나란히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7층 석탑은 사실 원래부터 지금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고 했다. 좀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여기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주변은 많은 유물들이 발굴된 지역인데 현재는 덮여져 아래에 묻혀져 있었다. 

 

7층 석탑까지 살펴보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의 중앙시장으로 건너갔다. 지하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가 뜨끈한 국물을 먹으며 몸을 따뜻이 녹인 우리는 다음 장소인 강원도청으로 향했다. 

 

강원도청 건물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시원한(어쩌면 차가울 수도 있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왠지 산토리니 느낌이 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리스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애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원도청 자리는 조선시대에 이궁이 있던 곳이다. 조선 왕실에서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유사시에 안전하게 대피할 곳을 전국적으로 물색하다 결정한 곳이 춘천이었고, 나중에 이궁이 세워진 곳이 현재 강원도청이 있는 자리였던 것. 도청 주변을 걷다 보도에 강원도의 역사연대가 시대별로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춘천 이궁에 대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이렇게 강원도청에서 춘천 이궁에 대한 이야기까지 살펴보고 나서 우리는 차를 타고 춘천대교를 건너 안내자분이 전망이 좋다고 추천한 카페에 들어갔다. 유럽 황제들과 귀족들이 즐겨 먹던 300년 전통의 비엔나 커피를 재현한다는 이름만 들어도 특별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특색있었지만 무엇보다 강과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 춘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그만이었다. 함께 모여 앉아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오늘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오늘의 투어는 마무리됐다.

 



추운 날씨였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며 안내자분의 상세하고도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투어였다. 대부분 이미 가본 곳들이었어도 거기에 좀 더 살이 붙은, 그리고 비하인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개인적으로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역사투어에 참여하면서 춘천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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