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역사문화연구회 오동철 선생님이 안내하는 역사투어가 춘천 프렌즈 프로그램으로 세 차례 진행이 되었다. 두번째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 참여하지 못했고 첫번째와 세번째 역사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 시간에는 첫번째 역사투어의 주요 장소였던 춘천 서면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춘천은 시내의 경우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금방 가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시내를 벗어나게 되면 거리가 상당히 늘어나면서 차가 없으면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관심이 있는 곳이라도 혼자서 가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면도 시내에서 대교를 건너가야 볼 수 있는 곳이다. 역사투어는 차로 이동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마침 인원도 적당해 이동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대교를 건너면서 우리는 중도라는 섬을 보게 됐다.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뉘어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최근에 청동기 유물이 많이 발견된 곳이다. 그런데 강원도에서 레고랜드를 이곳에 지으려고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공사를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고 안내자분이 얘기를 해주셨다. 이런 장소는 역사적으로 발굴해서 연구해야 할 가치가 큰 곳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곳이고 잘 보존할 필요가 있는데, 개발논리로 밀고나가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웠다. 역사의식에 대한 부재가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런지.



중도를 지나 곧장 서면으로 들어섰다. 첫번째로 들린 곳은 박사마을. 이곳은 춘천에서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라고 한다. 박사마을은 말 그대로 박사를 많이 배출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단다. 동네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늘 교통이 불편했는데, 이러한 점이 동네 주민들을 더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그런 영향으로 교육열도 다른 어느 곳보다 높았고, 새벽부터 강을 건너 장을 열고 산나물과 채소를 팔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 해서 공부를 열심히 시켰던 것이다. 이 마을에는 박사학위 취득자만 해도 50명이 넘어(1999년 10월 기준) 전국적으로 '박사마을'로 알려지기도 했다. 어려울수록 더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했을 그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장절공 신숭겸 묘역. 이곳은 외곽에 있긴 하지만 춘천에서 잘 알려진 묘역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는 데 옆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 중 한명이 신숭겸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이 대구 팔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싸우다 위험에 처하자 자신이 왕건의 옷으로 갈아입고 왕 대신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에 왕건이 전쟁이 끝나고 그를 잃은 것을 슬퍼하며 묘역을 세운 곳이 이곳이다. 왕건에 대한 충절로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신숭겸 장군의 묘역에는 봉분이 세 개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도굴을 염려하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묘역 자체가 굉장히 넓어서 봉분을 보러 올라가는 데만 해도 상당한 거리였고, 거의 왕에 준하는 무덤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 묘역은 손꼽히는 명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묘역의 규모가 원래부터 이렇게 넓었던 것은 아니고 후손들 중 일부가 그의 업적을 기리거나 조상의 음덕을 기원하고자 지금처럼 만들었다고 안내자분이 설명해주었다. 봉분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세가 마침 안개도 껴서 그런지 신비롭게 보였다.



묘역을 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 주변에 산들이 병풍처럼 뺑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역시 강원도는 산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내자분이 석파령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석파령은 춘천의 대표적인 옛길이자 관문이었던 곳이었다. 강원도의 많은 산 중 삼악산은 춘천의 경계가 되는 곳인데, 춘천 부사의 교구식(새로 부임하는 수령과 떠나는 수령이 고을의 경계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 이곳에서 이루어져 '석파령'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높고 가파른 고개로 유명했던 석파령은 일명 사직령으로도 불렸는데, 여기에 재밌는 일화가 있다. 서울을 떠나 춘천으로 부임하던 한 관리가 마석, 가평의 큰 고개를 넘어 힘겹게 당도했는데, 또 다시 석파령을 넘어 신연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그만 ‘사직’을 하고 돌아갔다고 하는 얘기.


차를 몰아 어느 마을 깊숙히 들어간 다음 장소는 충장공 한백록 묘역. 한백록 장군은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승리하고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도 연전연승하며 무인으로서 특출한 능력을 드러냈다. 그러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미조항 전투에서 38세의 젊은 나이로 그만 전사하고 만다. 춘천 서면에서 태어난 그는 이순신 장군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투에 공이 많고 충신으로도 추모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소로 들린 곳은 태실이었다. 태실이란 왕실의 왕, 대군, 군, 공주, 옹주 등의 태를 석함에 넣어 길지에 보관한 곳을 말한다. 이것을 보기 위해 어느 카페 옆에 좁다랗게 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과연 이 길이 사람이 다니는 길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앞서 가는 안내자분은 사람이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휘적휘적 올라갔다.


마침내 마주치게 된 태실의 모습. 현암리 태봉귀부라 불리는 이곳은 고려시대 왕의 태를 묻은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은 거북 모양의 받침대만 남아 있긴 하지만 충분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신기한 마음에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태실의 흔적을 확인한 후 올라왔던 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헤어지기 전에 전망이 좋다는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오늘 투어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가진 안내자분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춘천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궁금증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함께 참여한 사람들도 다들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느낌이었다.


 

밖에는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오늘 우리가 돌아봤던 서면의 모습이 안개에 젖어 뿌옇게 보였다. 쉽게 가보기 힘든 곳을 이번 기회를 통해 보고 느낄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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