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잠언 수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무엇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시종일관 저자의 경험과 거기서 나온 통찰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진한 향기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류시화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좀 더 어렸을 때 그의 잠언 시집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난다. 하나하나의 시가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들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또는 살펴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번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역시 그런 힘을 가지고 나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책을 막 다 읽고 난 지금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나-너'와 '나-그것'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크게 이 두 가지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나와 그것은 상대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관계에 놓인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 상대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교체가 가능하다. 반면 나와 너는 존재 자체로 상대와 이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상대는 그 자체로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그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만남은 결코 존재의 모자람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만남이 존재를 발견하게 한다. 만남을 통해 존재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온전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의 만남은 '너'의 존재로 인해 '나'라는 존재의 온전함을 알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려고 할 때에는 어떤 필요함에 의해 혹은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만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서 만나는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기 쉽다. 자신의 모자람이 채워지면 더이상 그 관계는 나에게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다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그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쉽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온전함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온전함을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온전함을 발견함으로써 그 상대와의 관계는 어떤 조건과 무관하게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그 사람과는 혹은 그 사물과는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에게는 '나와 너'의 관계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나와 그것'의 관계로 쓸모 있는 관계만을 추구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되기도 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도 인생에서 때로는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관계는 어떤 것인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책에서 나온 표현처럼 숫자에 포함시킬 수 없는 사람, 즉 사랑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얘기는 이타카에 대한 것이었다. 이타카는 오딧세우스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자 목적지이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고향인 이타카로 향하는데 도착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기간동안 수많은 고난 그리고 위험한 여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여정이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고 힘들기만 한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티카는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설정일 뿐 삶은 이 여정을 통한 경험으로부터 풍요로워지고 가치 있게 된다.

 

인생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여정을 통해 감동과 깨달음을 얻고 그것 자체가 삶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목적지는 우리를 떠나게 하고 나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타카를 이상향이라고 지칭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는-날아가면서-뒤돌아보지-않는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목적지를 설정하고 거기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멈춰 서서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는가. 일단 안전지대에서는 벗어났다. 그렇다면 이제는 분명한 목적지를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통해 삶의 기쁨과 즐거움, 감동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으며 나의 길을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나와 너의 관계가 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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