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구름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금방 더워져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온몸으로 생생히 느끼며 걷게 되었다.

 

 

17일차. 이제 까미노의 중반부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생활리듬이 익숙해졌고 드디어 발에 밴드를 붙이지 않고도 걷게 된 첫 날이기도 했다. 아직 완전하진 않아도 발가락의 통증은 거의 사라져 걸을 맛이 난다고 할까. 이때쯤 오니 발이 길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신발도 길이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방심은 금물! 끝낼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까스뜨로헤리스를 떠나 고원 위로 올랐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고, 넓게 펼쳐진 주변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이후부터는 사방이 들판과 언덕의 연속이었다. 절로 사색을 하게 만드는 길.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은 일찌감치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고요히 유유자적 걸을 수 있었다.

 

 

이번 길은 마을 간 간격이 넓어 중간에 휴식의 텀이 길었다. 그러다보니 길게 걷는 시간이 많아져 어깨가 자주 아파왔다. 잠깐씩 배낭을 내려놓기도 했는데, 중간에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고 태양이 오전부터 강하게 내리쬐어 뜨거워지다보니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얼른 도착해서 쉬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중간에 브런치 먹으러 바에 들린 것 빼고는 계속해서 걸었다.

 

 

이번 길은 특색이 여럿 있었다. 일단 부르고스 주를 지나 팔렌시아 주로 진입을 했다. 그러면서 멋진 숲을 발견했다. 차를 피하려고 옆길로 간 것인데, 숲을 보게 된 것이다. 숲은 아름다운 잎색깔을 띤 큰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팔렌시아로 넘어오면서 색깔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땅색깔이 잿빛이나 회색빛이었고 나무도 거의 없어 전체적인 느낌이 우중충하고 쓸쓸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여기 땅은 밝은 황토색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생기 있고 밝은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노랗고 연두빛 잎들이 달린 나무들까지 가세하니 생동감이 넘치고 경관이 뚜렷해보였다.

 

 

색깔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각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과 개성을 통해 고유의 색깔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색깔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긴 들판의 시간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따 전 마을에서 다시 출발할 때 길이 헷갈렸다. 분명 운하를 따라 계속 간다고 나와 있었는데 까미노 표시가 되있는 곳은 그게 안 보이는 것이었다. 오히려 다른 길이 수로 같은 게 있어서 잘못 표시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들어갔는데, 뒤에서 어떤 순례자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돌아보니 뭐라고 하는 지는 몰랐지만 그쪽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 이 길도 확신은 없었기에 다시 돌아가 원래 표시된 길로 들어갔다. 

 

길 옆으로 나무들이 예쁘게 늘어서 있었으나 마음에 의혹이 있으니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표지판을 하나 보게 되었다. 까스띠야 운하 표지였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고 마음 놓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눈앞에 들어오는 운하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 늘어서 있는 나무들 그리고 운하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운하 건너편에는 사막 같은 언덕이 펼쳐져 있었는데,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언덕의 모습에 '천국의 언덕'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연신 감탄이 흘러나왔다.

 

 

운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운하를 조절하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프로미스타의 입구기도 했다. 

 

 

저녁 석양이 질 무렵 운하를 다시 보러 왔을 때의 모습은 낮과는 또 달랐다. 붉은 빛으로 둘러싸인 운하는 또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운하를 통해 자연스럽게 프로미스타로 들어왔다. 숙소를 잡았고, 여느 때처럼 샤워와 빨래를 했다.

 

프로미스타
프로미스타

 

언제부터였을까.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들어왔다. 오늘 걸었던 길도 좋았는데 왜 그럴까... 한국이었다면 외로움을 달랠 뭔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선 그럴 게 딱히 없다. 혼자서 다녔기 때문에 같이 얘기를 나눌 사람도 있지 않았다. 혼자서 다니는 게 길을 감상하는 데 편하기도 하고 익숙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일까? 숙소에 도착해서 하루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이런 욕구들이 이제는 생겨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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