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순례길에서는 저번 로그로뇨에 이어 또다른 대도시를 볼 수 있다. 그곳의 이름은 부르고스.

 

아헤스에서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중간에 산을 올라가면서 큰 돌들이 박혀 있는 땅을 만나긴 했지만 그 외엔 무난하게 갈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려지더니 알베르게를 나서자마자 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두방울 내리길래 배낭커버만 씌우고 나섰는데 곧 비가 몸이 젖을 정도로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우의까지 장착한 후 길을 나서야 했다.

 

 

비를 맞으며 출발한 두번째 여정. 비 자체의 양은 많지 않았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시야를 가렸다. 비가 오면 날이 흐려져 주변 풍경이 희미해진다. 특히 바람이 거세지면 앞만 보고 가기가 쉬워져 목적지향적인 걷기가 되버리기 십상이다. 그래도 간간히 주위풍경을 보면서 가다보니 어느덧 첫번째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마을 이름은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가장 오래된 까미노 마을이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유심히 보려 했지만 발이 아파 우선 쉬는 게 먼저였다. 그러다 비가 점점 더와서 처음에 본 원시적(?)인 조형상 외에 다른 건 결국 보진 못했다.

 

 

쉼터에서 브라질 부부를 또 만났다(그들과는 정말 인연인가 보다). 보아하니 일찌감치 출발한 것 같았다. 나보다 이전 마을에서 왔는데 먼저 도착한 걸 보면. 그들은 일단 부르고스까지 간다고 했으니 아마도 이게 그들과 보는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졌다. 이제부터의 길은 오르막이 시작됐고, 여기저기 큰돌들이 박힌 구간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르막의 끝에 다다르자 드넓은 전경이 펼쳐졌고, 곧 주변 풍경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제 비가 점점 그치고 있었다. 주위 풍경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내려왔다. 부르고스일까? 저 멀리 큰 규모의 도시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도착까지는 아직 한참 뒤의 일이었다.

 

 

중간에 갈림길에서 작은 마을 쪽으로 빠지면서 한참을 돌아가는(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스페인 친구 오스발도(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이런 느낌의 이름이었다)와 통성명을 하고 동행 아닌 동행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친구, 생각보다 말이 많다. 처음엔 교회 얘기를 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하는데... 억양이 강하고 목소리가 커서 내용도 잘 모르겠거니와 계속 듣다보니 슬슬 지쳐갔다. 그런 낌새를 눈치를 챈 것일까? 오스발도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고 자연스레 거리가 생겼다. 나는 여유를 되찾게 되었다.

 

 

그때쯤 비는 그쳐 있었고 이제는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갈 수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져 브런치를 먹으러 바에 들렀다. 거기서 역시 길을 걸으며 자주 보던 한 커플을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호주에서 왔다고 했다. 그후 걷는 속도가 비슷해 부르고스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게 됐다.

 

 

이번 여정은 초반에 나온 마을들 빼고는 마을의 모습을 분간하기가 힘든 특징이 있었는데, 부르고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는 어디부터가 입구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부르고스에 들어가기 전에도 한참을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잘 정돈된 듯한 마을을 발견했다. 여긴 사전에 정보가 있던 마을은 아니었는데 왠지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렇게 들어간 마을에는 상점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주택가가 쭉 늘어서 있었다. 좀 더 들어가니 넓은 쉼터가 나왔다. 그냥 지나치기 아쉽기도 하고 마침 쉼터 근처에 부르고스로 가는 표지판과 까미노 화살표가 보여서 여기서 쉬다 가면 되겠다 싶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가운데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간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부르고스로 향했다.

 

 

드디어 부르고스 입성! 며칠 전부터 계속 어떤 곳일까 생각해 왔는데 이곳에서 받은 느낌은 처음엔 별 특색없는 도시였다. 일반적으로 도시라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들. 그러다 성당이 위치한 구시가지로 들어서면서 부르고스는 유서 깊은 도시로 변모했다.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크다는 산타 마리아 대성당을 봤을 때 그 규모와 섬세함에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도시 구경은 이따가 하기로 하고 숙소를 잡기로 했다. 도시가 넓다 보니 숙소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기도 하면서 한참을 돌아다니다 공립 알베르게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 알베르게가 계속 날 불편하게 했다. 와이파이가 안된다고 했을 때 고민이 되긴 했지만 뭐 그건 그렇다고 넘어갔다. 그런데 나중에 물을 틀어보니 따뜻한 물만 나오는 게 아닌가. 찬물은 안나오냐고 카운터에 물었는데, 어디에서 나온다고 얘기해서 알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래저래 느꼈던 불편함은 이제 불쾌감으로 바뀌었다. 더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환불한다고 하자 카운터 직원이 지폐가 없다고 동전으로 다 주는 것을 보고 짜증이 올라왔다. 게다가 그는 다른 알베르게 위치도 잘못 알려준 것 같았다. 그때는 욕도 나왔다. 갑자기 스페인 욕을 알고 싶네.

 

다른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가 없던 터라 좀 막막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못찾을 쏘냐! 사람들한테 묻고물어 결국 찾아냈다. 여기 사람들은 구글지도로 열심히 위치를 찾아주었다.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들 같으니.

 

부르고스-알베르게
부르고스 알베르게

 

그렇게 새롭게 찾은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아까 잠시 봤던 산타 마리아 성당은 정말 크기가 웅장했고 세공이 섬세해서 절로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산타-마리아-대성당
산타 마리아 대성당

 

한참을 바라보다 큰 길가로 나갔다. 그런데 알베르게 찾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서인지 어둠이 벌써 깔리기 시작했다. 날도 추워졌다. 그래도 거리의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구경하다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샀다. 따로 먹을 데가 없어서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어둡고 쌀쌀한 날씨 탓이였을까?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새로운 숙소는 분위기도 조용하고 쉬기에 좋았다. 금방 어두워져 부르고스의 모습을 제대로 못 본 건 다음날 출발 전에 좀 더 살펴보기로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밝은 날 바라볼 부르고스의 모습을 기대하며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