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론세스바예스의 숙소에 불이 켜지며 노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알람이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얼른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라는 얘기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길래 이른 아침부터 청소를 하나 했는데 누군가가 수도를 사용하는 소리 같아 보였습니다. 이곳은 물을 트는 방식이 수도를 누르는 것이었는데, 물이 계속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 수도를 계속 누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사람이 유난히 크게 소리를 내서 없던 잠도 쫓아버릴 기세였습니다. 숙소 화장실 소리가 외부에도 잘 들리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씻고 잠시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깜깜한 시간이었는데도 일찍 출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에 천천히 짐을 챙기고 1층 주방에 가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아는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다가 8시가 될 무렵 출발을 했습니다.

 

참고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체크아웃 시간은 8시인데요.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면 안내자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론세스바예스부터는 스페인 영역입니다. 피레네 산맥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사이에 걸쳐 있기 때문에 피레네를 넘어 이곳으로 오면서 자연스레 스페인으로 진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국경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경험은 다소 신기하기도 할 수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갔다는 것을 휴대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다른 나라로 넘어가면 휴대폰에 안내문자가 오거든요. 자세히 보면 통신사 표시가 달라진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례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보여주는 표지판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보니 내가 순례길에 다시 올랐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나기도 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에서-산티아고까지-남은-거리를-알려주는-표지판입니다

 

해는 떴지만 흐려서 그런지 날은 아직 어두운 느낌이었고, 초반에는 숲길에 이어져 더욱 그러했습니다. 꽤나 날이 추워서 오전 10시 이전까지는 계속 추위에 떨기도 했습니다. 추울 때 햇빛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죠.

 

길을 걸으면서 예전에 걸었던 기억도 나고 생소한 느낌의 길도 보였습니다. 비슷하게 걷는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혼자 걷는 사람부터 가족단위로 가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는데요. 아이들이 쫑알거리며 가는 폼은 귀여우면서 순례길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같이 출발한 순례자들과는 순례길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가는 방향이 같고 걷는 속도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이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게 되는데, 이러한 순례자들 중에 젊은 프랑스 남자 무리가 있었습니다. 전날 봤을 때 론세스바예스로 내려가는 길을 내게 묻길래 알려주었고, 그 중 한 명이 내게 중국인 인사말을 하더군요. 그들이야 동양인들이 다 비슷해 보이니까 별 생각없이 그런 인사를 했겠지만 그들에게 한국인 인사말을 한번 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날 그들을 만났을 때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며 인사를 알려주었고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친구가 번역을 도와줘서 그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뭔가 후련한 느낌도 들더라고요.

 

이날 도착지는 처음에 정해 놓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길을 걷다보니 전날 체력소모를 많이 한 것도 고려하여 수비리에 머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수비리는 앞에 철자가 Z로 시작해서 주비리라고도 많이들 부르던데요. 수비리든 주비리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마을인 것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수비리-입구-풍경입니다

 

수비리에 도착을 하니 한낮의 태양 아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짐을 놓고 휴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일단 무거운 배낭을 한쪽에 내려놓고 숙소를 정하기 위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순례길에서 머문 숙소와 다른 곳에 머물고 싶기도 하여 가 보았으나 답답함을 느껴 결국 전에 머물렀던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숙소에 들어가니 아는 얼굴들이 보여 인사를 나누고 정비를 한 다음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날 마을 상점문이 다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사온 음식이 있었는데, 잘못된 정보였지만 그 음식양이 많아서 그걸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자판기 콜라를 그 사람 것까지 함께 뽑아 음식과 같아 먹었는데, 평소 잘 먹지 않은 콜라였지만 그때는 그렇게 시원하고 달콤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꽤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더 무엇을 할 여력이 없이 그대로 침대로 직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피곤했음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는데요. 수비리 공립 알베르게의 이층 침대는 그 흔들림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죠. 같이 침대를 쓰는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서 그 흔들림이 실시간으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전 순례길에서 이 숙소를 쓸 때도 그랬다는 것을 상기하며 그 흔들림을 받아들이고 잠을 청해보았습니다. 잠자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 수비리에서 숙소를 정할 때 이러한 점을 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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