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알베르게라는 순례자 숙소가 있다는 것을 이전에 언급을 했었는데요. 저렴한 비용으로 묵을 수 있는 만큼 대부분의 숙소가 다수의 이층 침대가 놓여진 도미토리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침대는 오래된 경우가 흔해서 조금만 힘을 줘도 흔들리는 곳도 많습니다.

 

이층 침대를 혼자 쓰는 경우도 생기지만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는 보통 같이 쓰게 됩니다. 생장은 프랑스길 코스의 출발점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숙소에 오게 되고, 이번에 묵게 된 곳에서도 다른 사람과 한 침대를 쓰게 되었죠.

 

이때 어떤 침대 메이트를 만나는 지가 잠자리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생장에서 함께 침대를 쓰게 된 사람이 밤새 계속 뒤척이는 바람에 그 울림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어 잠을 자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깨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아침 6시 무렵이었습니다. 이미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더 누워 있고 싶지는 않아 몸도 풀어줄 겸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직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숙소 로비는 어느덧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씻고 다시 나와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날이 생각보다 춥지는 않아 좀 더 멀리까지 가보기로 했고, 경사진 곳을 올라갔습니다. 고요한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데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며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주를 펼쳐 놓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직접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황홀한 정도의 기분좋음을 느끼며 캠핑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향하니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있었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별볓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산책 나온 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례길 첫날부터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례길에서 생장을 들리게 된다면 밤이나 새벽에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지대가 높은 곳에 올라가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꼭 보라고 추천을 드립니다. 물론 날씨가 맑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겠지만 생장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조식을 챙겨먹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어제 이야기를 나눈 한국인 여성을 보았습니다. 다른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출발할 것으로 보여 인사를 하고 먼저 숙소를 나섰습니다. 그렇게 순례길의 첫 발을 떼었습니다.

 

비바람이 불던 어제와 다르게 이날은 날씨가 화창했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얘기를 나눴던 한국인 여성은 사실 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으려다가 악천후로 인해 다시 돌아왔던 것이었습니다. 날씨운이 좋음을 느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생장에서-출발하는-순례길-풍경입니다

 

마을을 벗어나 양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이전 순례길에서 별 생각없이 길을 선택했다가 아무도 걷지 않는 차도를 한참 걷다가 되돌아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표지판을 잘 보면서 길을 나아갔습니다.

 

앞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가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길을 헷갈릴 염려는 없기도 했습니다. 길이 헷갈린다 싶으면 많은 사람들이 나아가는 쪽으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생장에서-벗어나-순례길-초입에-나온-양갈래길입니다
피레네-산맥으로-가는-나폴레옹-루트입니다

 

2시간 정도 쉼없이 걷다가 오리손 알베르게가 보이는 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첫 휴식을 가졌습니다. 오리손 알베르게는 생장과 더불어 순례자들이 프랑스길을 처음 걸을 때 자주 이용하는 숙소이기도 한데, 이 시기에는 영업을 하고 있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없었지만 조금씩 몸이 힘들어지는 때라 주변에 잠시 머물며 쉬었습니다.

 

오리손-알베르게-모습입니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걷는 것 뿐만 아니라 쉬는 것도 중요합니다. 잘 쉬어줘야 그만큼 잘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걸어보면서 본인에게 맞는 휴식 주기를 찾고 적절하게 중간중간 쉬어준다면 큰 무리없이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남들이 한번에 많이 간다고 똑같이 따라할 건 아닙니다. 자칫 오버페이스를 하게 되면 나중에 탈이 나게 마련이죠.

 

휴식을 마친 후 다시 길을 걷다보니 피레네 산맥을 절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코스의 첫 백미는 바로 피레네 산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장에서 출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그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산맥을 넘는 게 꽤나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강한 비비람이 부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힘들게 이 구간을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다는데, 운이 좋게도 화창한 날씨 속에서 피레네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피레네-산맥의-아름다운-풍경입니다
피레네-산맥의-멋진-풍경입니다

 

물론 편하게 움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피레네의 절경은 그러한 몸의 힘듦을 보상해주었고,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주위 다른 순례자들도 풍경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고, 무리로 온 어느 순례자들은 한쪽에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피레네-산맥에서-노래하고-있는-순례자들입니다
피레네-산맥에서-론세스바예스로-향하는-길입니다

 

그렇게 피레네 산맥을 넘고 나서 내리막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길이 험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양갈래 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쪽은 급경사이면서 상대적으로 구간이 짧고, 다른 쪽은 완만한 경사에 좀 더 긴 구간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다리에 무리가 느껴져 완만한 경사길을 선택하는 게 더 나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급경사로 가는 것을 보고 별 생각없이 그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상당한 경사길을 계속 내려가다보니 하중이 계속 발이 쏠려 다 내려왔을 때 즈음에는 물집이 잡힌 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다른 길로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순례자들이 평온한 표정으로 가는 것을 보고 길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길을 갈 때는 무조건 다른 사람을 따라갈 게 아니라 내 상황에 맞게 잘 선택해서 갈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내리막길을 갈 때는 무리가 될 수 있는 길은 선택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이렇듯 걸으며 시행착오도 겪고 나에게 적합한 길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순례길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초반에 이런 경험을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리막이 서서히 완만해질 무렵 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그곳이 론세스바예스의 초입이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초입의-풍경입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이곳에 도착해서 여유 시간이 많아져 기운이 났습니다. 곧장 숙소를 찾아 자리를 잡고 빨래와 샤워부터 한 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론세스바예스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생장을 출발한 순례자들이 처음으로 묵게 되는 곳입니다. 수도원이 위치하기도 한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를 갖추고 있는데, 순례길 전체를 통틀어서 공립으로 운영되는 숙소 중에는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피레네 산맥을 넘은 순례자들이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알베르게-모습입니다

 

한가지 팁이라 할만한 것은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1층에는 커다란 주방시설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맛이 상당히 좋다고 합니다. 저도 한번 마셔보았는데 물맛이 괜찮았습니다. 그곳 안내자들이 알려준다고 하니 이곳에서 물이 필요한 경우에는 한번 이용해보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이전에 순례길에서는 론세스바예스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시간도 여유가 있겠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 곳의 정취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이 곳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날 저녁식사는 론세스바예스 호텔에서 순례자 메뉴를 먹었습니다. 순례자 메뉴는 순례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코스 요리인데, 순례길 위의 많은 곳에서 이 메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에는 식당이 마땅치가 않아 순례자 메뉴를 많이들 이용하곤 합니다. 또한 순례자 메뉴는 순계자들끼리 모여 앉은 자리에 음식이 나오기 때문에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생기게 됩니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먹고 나니 피레네 산맥을 넘은 이날의 피로가 선명하게 올라왔고, 곧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론세스바예스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여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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