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깨서 그랬는지 예상보다 늦게 일어나 바욘에서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조식을 챙겨 먹고 배낭은 잠시 숙소에 맡겨 놓은 후 도시를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잠시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지도 못한 채...

 

 

 

바욘은 큰 강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강 주변으로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면서 경치가 완성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날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면서 날이 흐렸지만 그럼에도 이 도시가 주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강물과-도시가-어우러진-바욘의-아름다운-풍경입니다

 

전날 잠깐 보았던 바욘 대성당도 다시 둘러보았습니다. 건물 외관의 위용도 멋이 있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성당 창문에 수놓아져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도 꽤나 아름다웠습니다.

 

바욘-대성당의-외관-모습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돋보이는-바욘-대성당의-내부-모습입니다

 

본격적으로 도시 구경을 하기 전에 바욘역으로 가서 이따가 타고갈 생장행 기차표를 예매하러 갔습니다.

 

생장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루트의 첫 출발지로, 정식 명칭은 St. Jean Pied de Port 입니다. 보통 줄여서 생장이라고 부르죠. 파리로 들어오는 순례자들이 생장을 가기 위해서는 바욘이라는 도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곳을 한번씩은 거쳐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욘역의-모습입니다

 

바욘역에서 생장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는데요. 역무원에게 가고자 하는 곳을 말하면 영수증을 발급해주는데, 이걸로 발권이 끝난 게 아닙니다. 이 영수증을 한쪽에 놓여있는 기계에 찍으면 표 가격이 화면에 뜨고, 해당금액을 지폐나 동전을 이용해서 기계에 넣어주면 이때 표가 나오게 됩니다(비용은 11.1 유로, 2023년 10월 기준)

 

바욘에서-생장으로-가는-기차표입니다

 

지폐를 넣는 과정에서 잘 인식을 못해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는데, 발권을 마치고 돌아설 때 뒤에 줄을 서 있던 한 외국인 노인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는 내게 웃음을 지어 주었고, 나 역시 마주보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음에도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리며 미소를 지어준 그 노신사 덕분에 따뜻한 감정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작은 친절이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었네요.

 

표 발권을 마치고 다시 바욘 주변을 둘러보는데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구경하는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지만 계속 밖을 돌아다니기는 힘들어졌고, 기차 출발시간 1시간을 남겨두고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해보니 불이 꺼져 있었고,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잠겨있는 것이었습니다. 불투명한 유리창에 내 배낭이 놓여져 있는 게 보였지만 가져갈 수 없었고, 굳게 잠겨 있는 문을 부질없이 몇 번이나 돌려보다가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관리인이 계속 숙소에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고, 미리 언제 돌아올 지 얘기를 해둘껄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좀 무겁더라도 배낭을 가져가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을 탓하기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했기에 빨리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대안책을 생각을 해봤지만 모두 시간이 붕 뜨게 되기 때문에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건 관리인이 빨리 숙소에 오게 해달라는 기도뿐이었습니다.

 

숙소에서 역까지의 거리를 고려했을 때 기차 출발시간 1시간 전까지만 관리인이 오기를 정말 간절히 빌었습니다. 전에 그렇게 절실하게 기도를 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숙소 근처 길가로 나가보기도 하고 혹시나 관리인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할까 다시 숙소 앞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차 출발시간이 1시간이 채 남지 않게 된 무렵 멀리서 한 사람이 숙소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숙소 관리인이였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이란...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솟구쳐 오르더군요.

 

그 관리인은 숙소에 필요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것으로 보였고, 내가 급하게 가야한다고 말하자 담담하게 숙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마음이 급하긴 했지만 그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배낭을 가지고 나가려는 찰나 그가 순례자 표식인 가리비를 가방에 달아주려 했습니다. 그 성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아서 애써 급한 마음을 누르며 그가 가리비를 달아주는 것을 기다렸다가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숙소를 떠났습니다.

 

기차역으로 빠른 발걸음을 옮기면서 방금 있었던 일이 정말 아슬아슬하면서도 꿈만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한 것이 응답을 받은 건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죠. 어쨌거나 감사한 마음만은 계속해서 들었고, 다행히 출발 시간 전에 도착하여 기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바욘에서-생장으로-가는-기차입니다

 

오랜만에 타보는 생장행 기차. 이번에는 가는 동안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았습니다. 기차는 1시간 여를 달려 생장에 내려다 주었습니다.

 

다시 만난 생장역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천천히 숙소로 향했습니다. 원래 생장에 도착하면 순례자 사무실부터 들러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숙소로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미 바욘에서 여권을 발급받았기에 바로 숙소로 갔습니다.

 

생장역의-입구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일명 55번 알베르게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사전에 알아봤을 때 생장 숙소로 그곳에 대한 추천이 많았고, 가는 길에 다른 숙소들이 보이긴 했지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가서 체크인을 했습니다.

 

생장에-있는-55번-알베르게-입구입니다

 

배정받은 자리를 가보니 바로 창가 옆이었고, 창문 밖 풍경이 매우 멋져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짐을 풀어놓은 후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여권은 따로 발급은 받았지만 앞으로 걸을 프랑스 길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죠.

 

생장의-아름다운-풍경입니다

 

나에게 설명을 해준 이는 나이는 지긋해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얘기를 하는 모습에서 뭔가 모를 박력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면서 특히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비바람이 많이 불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약간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염려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생장에-있는-순례자-사무실-입구입니다

 

그렇게 앞으로 걸을 길에 대한 정보도 얻고 숙소로 돌아가보니 같은 침대 아래층에 한 여성이 짐을 풀고 있었습니다. 잠시 지켜보다 말을 걸어보니 한국인 여성이었고, 여기까지 오게 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생장 주변을 같이 산책하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이렇게 순례길에 들어서면 함께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말이죠.

 

그녀와 저녁도 시간이 되면 같이 먹자 했는데 길이 엇갈려 낮에 다녀온 마트에서 사온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생장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규모의 까르푸 매장이 있었고, 비를 뚫고 걸어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올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순례길에서 큰 마트에 들러 구경도 하고 필요한 것을 사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생장에-있는-까르푸입니다

 

내 침대 맞은편에 동양인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만에서 온 순례자였습니다. 그녀와도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영어로 하는 소통이 잘 통하지는 않아 좀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몰랐지만 그녀와는 나중에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저녁이 되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조금 추워지긴 했지만 숙소 밖을 나와 주변을 잠시 산책하며 맑은 밤하늘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의 출발지점인 생장에 도착을 하여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순례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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