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어제 숙소에 밤늦게 들어와 신경을 쓰이게 했던 외국인이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열고 왔다갔다 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남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계속 보이자 이번에는 그에게 바로 문을 닫고 다니라고 얘기를 했고, 외국인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듯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그걸 보며 할 말은 그냥 바로 하는 게 낫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 몬테 도 고소 공립 알베르게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숙소 건물 맞은 편에 건물 한 동이 있는데, 그곳이 아마도 이 주변을 순찰하며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 건물 앞에 순찰차가 세워져 있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경비 구역이 여기 숙소도 포함이 되어 있나 봅니다. 전날 9시에 체크아웃을 해서 이날도 그렇게 알고 숙소에서 여유 있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순찰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더니 나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을 하더군요. 원래 이곳 체크아웃 시간이 8시라고 하면서 말이죠.

 

 

 

분명 첫날 머물 때는 관리인이 9시까지 머물 수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들어와 딴 얘기를 하니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지만 단호하게 얘기하는 경비원의 모습도 그렇고 괜히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짐을 챙겨 곧 숙소를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첫날 있었던 관리인이 편의를 봐줘서 9시까지 있게 해준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더라도 그렇게 숙소에 들어와서 몰아내듯이 굴었던 경비원의 태도에 적이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숙소를 나서면서 여전히 강하게 불고 있는 비바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가 바로 내 옆을 스치면서 고여 있는 물이 확 튀었습니다. 그렇게 가 버린 차 뒤로 육두 문자가 튀어나왔고, 다행히 몸에 물이 크게 튀지는 않아 그걸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일단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 들러 필요한 것도 사고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쇼핑몰 같은 공간이 좋은 대피처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이날도 날씨 때문에 숙소를 일찍 잡기로 하고 산티아고의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전에 있을 때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만들었던 외국인 여성이 그때까지 머물고 있었습니다. 연박은 3일까지만 가능하다고 했던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더 머물 수 있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과 더는 같이 머물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그곳을 떠나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고, 체크인 전에 숙소 상태가 궁금해 미리 한번 시설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니 숙소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그건 안된다고 했습니다. 왜 안되는지 이해가 안되 물으니 화장실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낯선 사람이 들어가면 놀랄 수 있다는 식의 답을 했습니다. 원래 알베르게가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는 곳이고, 여러 사람이 왔다갔다 하면서 쓰게 되는데 그러한 대답에 타탕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사실 숙소 시설을 미리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은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더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잠깐 고민을 해보다 더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그냥 머무는 게 낫겠다 판단이 되어 체크인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아까 물어본 것에 대해 계속 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이미 끝난 얘기였고, 체크인도 하겠다고 했는데 자꾸 쓸데없는 지난 얘기를 이어가려고 하자 짜증이 났고, 그만 얘기해도 된다고 말을 하자 그녀는 뭔가 겸연쩍은 웃음을 짓더니 방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사실 그 순간 기분이 안 좋아져서 그냥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순간의 기분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안내를 받았습니다. 숙소를 보고 정 마음에 안 들면 환불받고 나가도 늦지 않으니까요.

 

시설을 살펴보면서 침대를 비롯해 화장실도 대체로 깔끔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사설 알베르게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한번 보고 싶었던 거였는데, 다행히 이곳은 머물러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방금 전에 그 여성이 한 말로 인해 기분 나쁘다고 바로 나가지 않은 건 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의 감정만으로 그냥 나가 버렸다면 그 숙소는 다시 이용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후 숙소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숙소 분위기가 조용해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밤에는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면서 약간 숨막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끌벅적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했죠.

 

오후가 되어 계속 내리던 비가 드디어 그쳤습니다. 날이 아직 밝았을 때 움직이기로 하고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저녁 무렵의 성당을 바라보며 감상하다가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습니다. 근처에서는 연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감성적인 음악소리에 한껏 흥이 나기도 했습니다.

 

산티아고-대성당-주변-모습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원래 살펴보려고 했던 곳 중 하나였는데, 그곳 관리인에게 시설을 한번 볼 수 있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보여주더군요. 그걸 보면서 이날 묵게 된 숙소 주인이 폐쇄적으로 굴었던 것임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시설을 보니 이날 머문 곳보다는 가성비가 좋아 보이지 않아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숙소를 보여준 관리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산티아고-골목-모습입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늦은 밤이 되었고, 비가 그친 상쾌한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들어와 이날의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