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머문 숙소의 좋은 점은 주방 외에도 휴게실 같은 공용 공간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에서 깬 뒤 아직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방을 나와 그 공간에 있으면서 조용하면서도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방으로 갔을 때는 사람들은 모두 깨어나 분주히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나도 짐 정리를 하고 나서 다시 휴게실로 가서 할 일을 하다가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될 무렵 숙소를 나섰습니다.

 

밖에는 전날 예보된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 또한 강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의를 꺼내 입은 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는 곳은 산티아고 외곽에 위치한 마트가 모여있는 단지. 전날에 물 한통을 사긴 했지만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상태여서 우선 먹을거리를 사기로 했고, 근처는 아니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큰 마트들이 모여 있는 단지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길을 가로질러 지도에 나온 좁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더 빨리 갈 수 있을 줄 알고 그 길을 선택했지만 그건 실수였습니다. 길이 나 있는 것으로 표시되었던 곳은 막상 제대로 길이 이어져 있지 않기도 했고, 도중에 만난 굴다리 같은 곳은 비로 인해 길이 잠겨 건너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큰 길이 나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여 다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악천후의 상황에서 모르는 길을 갈 때는 무조건 큰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게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시간 넘게 걸려 큰 마트들이 모여 있는 단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배낭을 메고 비바람을 헤치며 걸어왔기에 아직 오전임에도 지친 상태였고, 일단 바로 보이는 곳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간단하게 먹을 것만 사고 나와 먹으면서 휴식을 가졌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그동안 봤던 웬만한 큰 마트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 중 익숙한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쉬기도 하면서 먹을거리들을 든든히 구입을 했습니다. 배낭의 무게가 확 늘어난 느낌을 받으며 숙소로 향했습니다. 전날 머물렀던 곳이 괜찮아서 그곳에 하루 더 묵기로 했습니다. 비가 계속 왔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곳을 가기보다 아는 숙소로 일찌감치 들어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는 도중에는 전에 보지 못한 예쁘게 장식되어 있는 산티아고 글자 표식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산티아고-글자-표식입니다

 

체크인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숙소에는 관리인이 전날과 바뀌어 있었습니다. 깐깐해보이는 나이든 여성 관리인이 체크인 시간이 아직 아니라고 말해서 로비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인 한 명도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도 비가 많이 와서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오전 내내 비바람 속에서 돌아다니며 고생을 했지만 일찍 숙소에 와서 그때부터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것으로 예보가 되어 있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돌아다닐 때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집중해서 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방을 쓰는 외국인이 외출했다가 밤늦게 들어와 방문을 열어 놓고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잠에서 깼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산티아고를 앞두고 기분을 내는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열려 있는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순례길에도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만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기도 하죠. 서로 조금씩 배려하면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인데 다 내 마음 같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해하는 마음을 낼 수도 있고, 상대에게 직접 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정답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내가 좀 더 마음 편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가장 좋지 않나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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