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잠에서 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도시의 불빛이 환히 비추고 있어 가는 길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고요하면서 한적한 아침의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을 하니 7시가 조금 넘어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첫번째로 순례자 사무실에 와서 대기를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다 여성 한 명이 왔는데, 자세히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동양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녀도 식사권을 얻기 위해 일찌감치 줄을 서려고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산티아고-순례자-사무실입니다

 

이후로 사람들이 간간이 오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문을 여는 시간까지 그날 미리 와 있던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되었는데요. 예상과 다르게 오픈 시간도 1시간 늦은 10시였고, 아침의 날씨가 꽤나 추워 장시간 기다리면서 추위에 떨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적게 오는 줄 알았다면 굳이 일찍 와서 이런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이렇게 일찍 와서 기다린 적은 거의 없던 일이라 신선한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10시가 되기 직전 사무실 문이 열렸습니다. 이곳에서는 순례자가 그동안 걸어온 거리에 대한 완주증을 발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미리 와서 QR코드로 사전 등록을 하면 따로 작성하는 것 없이 바로 증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리 작성하지 않아도 사무실에 들어가면 한 쪽에 등록을 하는 기계가 있으니 거기서 등록을 하면 됩니다.

 

언제 레스토랑 식사권을 주는 지가 궁금했는데, 등록을 하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사무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장씩 나눠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착순으로 발부된 식사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식사권을 받는 시간은 찰나였지만 드디어 말로만 듣던 레스토랑 식사를 하게 됐다는 생각에 성취감은 있었습니다.

 

참고로, 순례길 전체 구간을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완주한 것이 아니면 완주증이 아니라 거리 증명서의 형태로 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요. 순례자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식사권은 완주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순례길을 통해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나와 그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아직 체크아웃 시간 전이었고, 원래는 짐을 맡겨두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날 불쾌감을 안겨준 외국인 여성이 계속 머무르는 것을 보면서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짐을 맡겨두고 가는 것보다 좀 무겁더라도 챙겨서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 짐을 가지고 숙소를 나왔습니다.

 

먼저 점심 때 식사를 할 레스토랑 위치를 알아두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검색해 찾아간 곳은 간판은 붙어 있었으나 뭔가 규모도 작고 이런 곳이 레스토랑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상호만 동일한 다른 장소였고, 대성당 바로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이 이날 식사를 하는 곳임을 알았습니다.

 

레스토랑 입장 시간이 1시부터여서 주변을 둘러보다 시간에 맞춰 들어갔습니다. 이날 식사권을 받은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먹게 만든 테이블이 레스토랑 한 쪽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아침에 두번째로 사무실에 도착했던 순례자는 보이지 않고 그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꽤 보였습니다.

 

다들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테이블 분위기는 어색함이 있었으나 음식이 차례로 나오면서 사람들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이 든 외국 남성이 나를 자꾸 손으로 건드리면서 떨어져 있는 음식과 술을 여러 차례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호의로 해 주었으나 계속 반복이 되자 건드리지 말라고 얘기를 했고, 이후에는 그 남성이 조용히 자기 음식을 먹으면서 더는 신경쓰지 않으며 음식을 편안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산티아고-레스토랑에서의-식사입니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는데, 맞은 편에서 식사를 하던 한 외국인 남성이 말을 걸었습니다. 번역기를 이용해서 제주에 대해 묻기 시작했는데요.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나중에 제주에 갈 예정이라면서 궁금한 점들을 물었고, 나중에 제주에 대해 더 묻고 싶다며 인스타 아이디를 받아가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이 이렇게 제주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호의적인 마음도 들더군요.

 

코스로 진행된 식사는 1시간 여에 걸쳐 마무리가 됐습니다. 음식도 배불리 먹었지만 함께 나온 와인을 꽤 마신 탓인지 밖으로 나와 걸으면서 알딸딸한 기분을 한참 동안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산티아고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이날 새로운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정한 숙소는 전날 머문 곳보다 산티아고 중심부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사실상 외곽 지역이었고 꽤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곳을 배낭까지 메고 가니 순례길을 걷는 기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지친 상태가 되었습니다. 잠시 쉬고 나서 숙소라고 생각한 곳을 들어갔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다려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위쪽에 있는 바가 열려있어 그곳에 물어봤고, 내가 머물려고 한 숙소는 더 위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무거운 가방을 메고 경사길를 한참 올라가 보니 알베르게 표시가 보였습니다. 한숨을 돌리며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보니 시설이 괜찮아 보여 멀리 온 보람이 느껴졌는데요. 다만 이곳이 중심지랑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당장 움직이기에는 힘든 상태였고 이날이 일요일이라 마트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기에 다른 곳에 가도 사정은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이 곳은 산티아고 직전에 있는 몬테 도 고소라는 마을이었는데요. 사실 이곳은 예전에 순례길을 걸을 때 산티아고를 앞두고 지나간 곳이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면서 이곳의 숙소를 봤는데, 군대 막사처럼 생긴 숙소가 큰 규모로 조성되어 있어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묵게 되면서 그 속살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막사처럼 생긴 건물들이 수십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가 숙소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고 맨 위층에 한 동만 공립 알베르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보았던 아랫쪽 건물은 사립 알베르게 관리동으로, 관리인이 계속 머물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쉬면서 날씨예보를 보니 내일부터는 비가 당분간 계속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몸이 좀 고되기는 했지만 이날 여기 주변을 한번 구경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가리키는 동상을 보러 갔습니다.

 

이 동상의 존재를 예전 순례길을 걸을 때는 알지 못해 지나쳤습니다. 나중에 GOD 맴버들이 순례길을 걷는 프로그램이였던 '같이 걸을까'에서 그들이 그 동상에서 산티아고를 바라보는 풍경을 보면서 그곳을 가보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여기에 왔으니 꼭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동상은 듣던 대로 산티아고 시내를 바라보며 손을 뻗고 있었고, 그 끝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날이 흐리긴 했지만 산티아고 전경을 볼 수 있는 풍경도 좋았습니다.

 

산티아고-대성당을-가르키고-있는-몬테도고소의-동상입니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동상 근처에서 돌하르방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제주올레의 상징물인 돌하르방을 이곳에서 보게 된 것에 놀라기도 했는데요. 확인해보니 2022년도에 제주도와 스페인의 갈라시아 주가 공동번영과 관광교류 활성화를 위해 양측 우정의 길에 상징물을 설치한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먼 외국에서 제주의 흔적을 이렇게 볼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도 들면서 이곳에 와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몬테도고소에-있는-제주-돌하르방입니다

 

그렇게 멋진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쉬려고 했지만 곧 다시 먼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중에 갖고 있는 물과 식량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마트도 대부분 쉬는 날이라 전날 들렀던 쇼핑몰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쇼핑몰에는 그래도 뭘 팔지 않을까 싶어서였죠. 다행히 쇼핑몰 내에 문을 연 작은 상점이 있어 물을 큰 것 하나 사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는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어 북적거렸습니다. 조용히 머물 수 있겠다는 기대가 깨져 아쉽긴 했지만 힘든 몸을 쉬어주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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