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의 공립 알베르게는 비용도 비교적 저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공립과 다르게 체크아웃 시간도 여유가 있습니다.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한 만큼 여유 있게 쉬고 가라는 하나의 배려일 수도 있겠습니다. 덕분에 여유 있게 일어날 수 있었지만 주방을 비롯한 공용공간은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숙소 바깥에서 식사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예전 순례길 때 들러서 옷을 구입했던 곳이기도 해서 둘러볼 겸 가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쇼핑몰 안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느낌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옷을 샀던 매장은 간판이 바뀌어져 있어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쇼핑할 일은 없었기에 한번 둘러보며 구경을 하고 1층에 있는 까르푸로 들어갔습니다. 이곳 까르푸도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 사려고 한 물품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먹을 것만 약간 사고 나서 무인판매대로 가서 결제를 했는데, 잔돈으로 동전이 잔뜩 쏟아져 나왔습니다.

 

동전이 많으면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돌아다닐 때는 웬만하면 동전을 비우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매장 직원에게 동전을 지폐로 바꿀 수 있는지 물었는데, 영어로 잘 소통이 되지 않기도 했고 바꿔주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여 결국 동전을 그대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쇼핑몰 밖은 비가 강하게 내리고 있었고, 어디를 더 가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전날 머물렀던 숙소로 바로 향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것입니다.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연박하는 사람들은 굳이 방을 비워주지 않아도 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곧장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습니다.

 

사실 이날 숙소를 다른 데 머물 것도 생각을 했기에 어떻게 할까 그때까지 고민이 있었는데, 비가 계속 내리기도 했고,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이용하는 데 이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 더 머물기로 확정을 했습니다. 전날 본 숙소 관리인은 이번에는 금방 체크인을 마치면서 확인 티켓도 주었습니다.

 

산티아고-공립-알베르게-체크인-증서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물고 있던 방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중년의 외국인 여성이었는데 들어올 때부터 뭔가 시끄러운 느낌이 있어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요. 그 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짐 정리하는 것부터 요란스러웠고, 외부의 지나다니는 통로에서 담배를 푹푹 피워가며 냄새를 풍기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콘센트를 쓰는 걸 가지고 간섭하듯이 자꾸 뭐라고 하자 기분이 상했고, 신경쓰지 말라는 식으로 얘기를 건넸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성과 더 마주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곧 샤워를 하러 갔고, 기분 좋게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방에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계속 나누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크더군요. 잠깐이면 모르겠지만 한동안 그렇게 얘기를 이어가자 얘기 소리를 좀 낮춰 달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의 안색이 확 바뀌면서 나보고 잘 꺼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공간인데 소리가 너무 크다고 얘기를 다시 하니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서 얘기를 더 하다가 나갔습니다.

 

그런데 밖에서도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방 안에까지 다 들렸고, 그 여성의 말 중에는 내가 그녀에게 말한 것에 대해 비꼬는 것도 있었습니다. 마치 들으라는 듯이 말이죠.

 

그러한 모습에 기분이 매우 나빠지면서 그녀가 한 말에 대해 항의를 해볼까도 했지만 더 얘기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그냥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기에 관리인을 찾아가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했고, 그는 내가 얘기한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그 여성이 잘못한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여성에게 얘기를 하겠다 했습니다.

 

시원하게 기분이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 벌어진 상황에서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을 확인을 한 것이었기에 더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소통이 잘 되는 지의 여부는 꼭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제멋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직접 얘기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고, 관리인을 통해 얘기를 하는 게 낫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외국의 숙소에서 인생의 한 단면을 보게 된 시간이 되었죠.

 

그렇게 하나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빨래를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원래는 침대를 이용해 말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쓰고 있던 침대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서 양이 꽤 되는 빨래를 다 널기가 곤란해졌고, 그냥 건조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돈이 더 들어가게 된 것이었지만 밖에 계속 비가 오고 있어서 실내에 말리더라도 다음날까지 다 안 마를 가능성이 컸습니다. 또한 밤이 되어 추워지면서 빨래 돌렸던 옷을 입을 필요도 생기면서 오히려 건조기를 돌려서 바로 입을 수 있었던 게 더 도움이 됐습니다. 돈을 아끼기만 하기보다 필요할 때는 확실히 쓰는 게 좋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숙소에는 전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주방에도 사람들이 많았고, 식사로 먹을 게 마땅히 없는 상태여서 쇼핑몰에 있는 마트로 다시 향했습니다.

 

낮과는 다르게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쇼핑몰에서 힘겹게 먹을 것을 사와 밖으로 나가니 비가 거의 그쳐 있었습니다. 잘 됐다 싶어 바깥에 마땅한 공간을 찾아서 식사를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잠시 할 것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인기척에 잠이 깨었습니다.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그때 아래층에 침대를 쓰는 사람이 불빛을 켜고 부스럭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왠지 자기 전에 밑에 사람이 나중에 들어오게 되면 깰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층 침대가 조금만 움직여도 흔들렸기 때문에 깬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람이 짐 정리하는 게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원한 밤 공기를 한번 마시면서 환기를 시켜주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아 휴대폰으로 앞으로 일정을 계획해보다가 산티아고에서 레스토랑 식사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 근처에는 유서가 깊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는 예전부터 산티아고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일정 인분의 점심 식사를 무료로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그 식사를 먹을 수 있는 티켓을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선착순으로 10명에게 제공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새벽에 깨어나 휴대폰을 살펴본 덕분에 그러한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가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다양한 감정을 맛볼 수 있었던 숙소에서의 하루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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