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늦게 찾아온 산티아고의 첫번째 숙소의 체크아웃은 오전 11시까지였습니다. 산티아고가 보통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에 이 곳의 알베르게는 공립을 제외하고 대부분 체크아웃 시간이 여유가 있어 아침에 일찍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날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고, 덕분에 잠에 깨어 일찍부터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숙소 밖에 나와 보니 전날에 이어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근처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산 뒤 돌아오는 길에 성당을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순례길을 마친 후 성당을 보았을 때는 탑 기둥의 일부가 공사중이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말끔한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성당 앞에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고,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순례길 완주의 기쁨을 누리는 그들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산티아고-대성당의-모습입니다

 

성당 주변을 감상하다가 안에도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미사가 곧 있다는 표시가 되어 있어 참석을 할까 하다가 숙소 체크아웃 시간과 겹쳐서 내부만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산티아고-대성당-내부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빠져나간 숙소에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쉬면서 이날 머물 숙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산티아고가 순례길의 종착지인 만큼 알베르게도 꽤나 많지만, 11월이 넘어가는 시기부터는 문을 닫는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머물 수 있는 숙소가 한정적이었고, 오픈한 것으로 표시된 곳 중 가볼 만한 데를 몇 군데 선정해서 보기로 했습니다.

 

비도 오고 해서 우선 가까운 곳부터 지도를 보면서 갔는데, 숙소 위치가 헷갈리는 곳이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고 막상 가보니 문을 닫은 곳도 있었습니다. 결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고, 거세지는 비를 맞으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길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로 들어오는 길이기도 해서 순례자들을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중에는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보통 순례자들이 비가 올 때는 우의를 입고 길을 가는데, 우산을 쓰고 가는 모습을 보니 새롭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숙소는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숙소의 외관은 군대 막사나 체육관 같은 형태였는데 내부를 보니 공간이 넓고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이 보이지 않아 거기서 또 한참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오후 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관리인은 나타났습니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고 얘기하니 그는 책상 위에 있던 팻말을 가리켰는데, 알고 보니 체크인 시간이 1시였던 것이었습니다. 체크인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도 일종의 공무원이라서 쉬는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딱 1시가 되자 체크인이 시작되었고, 숙소 관리인은 한국말도 섞어 가면서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관심을 보이며 소통하려는 그의 모습에 나중에는 마음이 조금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곳에 연박할 때마다 하루에 1유로씩 늘어나는 요금을 받는다는 얘기를 하여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농담으로 한 말이었고, 이후에도 실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관리인이 짖궂은 농담을 즐겨하는 스타일인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악의 없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느껴지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길었던 체크인이 끝나고 짐을 푼 후 근처 쇼핑몰이 있길래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가 본 것이었는데 특별히 볼 것은 없었고 내부에 큰 마트가 있어 그곳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로 배불리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숙소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제서야 산티아고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계속 안에만 있다 보니 밖에 나가보고 싶어졌고, 비오는 날에 생맥주 한잔 하면 좋겠다 싶어 근처에 있는 바에 들렀습니다. 맥주의 첫 맛은 좋았지만 갈수록 뭔가 거북함이 들어 채 다 마시지 않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비내리는 밤의 분위기에 괜시리 맥주 한잔이 땡겼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맥주 맛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걸 하니 미련은 없었습니다.

 

당분간 산티아고에서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보자고 생각을 했고, 이날은 푹 쉬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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