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이른 시간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덩달아 움직이게 됐습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여유가 있었고, 일찍 나갈 생각이 없었기에 방에 머물던 사람들이 다 나간 이후에 숙소에 남아 마음 편하게 나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숙소 밖은 화창하게 개어있었고, 전날 계속 비내리는 날씨를 맞이하다가 파아란 맑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습니다. 날씨기 확실히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이날 산티아고로 가는 기차편은 늦은 오후에 있었기에 좋은 날씨를 즐기며 일단 좀 걷기로 했습니다.

 

 

 

전날 비가 내려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중심가를 걸으면서 성채도 보고 바도 이용하려고 했는데 들어갈 만한 곳을 찾지 못해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역 안에도 바가 있었고, 거기서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너무 오픈된 공간에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리면서 편하게 있을만한 장소는 아니었고, 곧 필요한 것을 구입할 겸 마트를 가기로 했습니다.

 

마트는 전날 들렀던 백화점 지하에 있는 곳이었는데요. 이곳의 좋은 점은 와이파이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순례길 중의 숙소나 바에 있는 와이파이는 신호의 세기가 강하게 잡혀도 속도 자체는 빠르지가 않습니다. 한국처럼 와이파이 속도가 빠른 곳에 살다가 이런 속도를 체감하면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지죠. 그런데 백화점 내에서 연결되는 와이파이는 비교적 속도가 빨라서 필요한 것을 받기에 좋았습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것도 알게 되더군요.

 

기차타기 전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알고 지도를 살펴보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 지역에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곳 가는 길에는 넓게 길이 펼쳐져 있으면서 공원도 있었고, 레온 중심부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변 구경을 하고 돌아오니 기차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렌페라고 불리는 기차를 타기 전에 공항에서 하는 수화물 검사를 이곳 역에서도 했습니다. 기차탈 때 이런 검사를 받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기차 출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이런 검사를 받게 되니 살짝 초조해지기도 했습니다. 기차를 탈 때는 여유 있게 탑승하는 게 필요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타게 되는 기차의 첫 인상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외관도 지저분한 느낌이 있었는데, 탈 좌석에는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남아 있어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와이파이가 되는 줄 알았는데 잡히지 않는 것을 알고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래 기차를 타고 가야 하니 자리를 한번 정리하고 나서 앉았고, 기차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기차는 그렇게 레온을 떠나 산티아고로 향했습니다.

 

산티아고로-가는-렌페-기차입니다

 

기차는 생각보다 느리게 갔습니다. 렌페 자체는 고속 기차였지만 중간에 경유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약간 우리나라의 무궁화호 느낌도 났습니다.

 

기차의 좋은 점은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인데요. 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른 칸으로 이동하며 구경도 하고 좀 더 편해보이는 빈자리에 앉아 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승무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길래 원래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아서 그런 건가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어로 계속 얘기하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데, 근처에 있던 한 외국 여성이 영어로 그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원래 이 기차는 산티아고까지 바로 가는 것인데, 중간에 공사 중인 구간이 생겼고 그래서 그 구간만큼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이 되는 여성 덕분에 무사히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승하는 과정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려 버스타는 곳까지 이동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때 타게 된 버스는 예전에 탔던 알사 버스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크지 않은 버스에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타니 조여 오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고 그런 공간에서 가는 내내 계속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어 불안함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전혀 모르는 곳에서 깜깜한 밤에 갑자기 버스를 타게 된 것이 낯설기도 했고, 밖은 비까지 내리고 있어 기분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버스 타는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체감상으로는 상당히 오래 느껴졌죠.

 

다시 기차로 환승하는 곳까지 버스가 도착하자 바로 내려 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되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숙소 체크인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산티아고에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감안해 체크인을 밤늦게까지 할 수 있는 숙소를 봐두기는 했지만 중간에 시간이 지연이 되다면 그 숙소를 이용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다시 환승한 기차는 늦지 않고 원래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맞추려고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 경유를 하지 않으니 기차는 거침없이 빠르게 달렸습니다. 두번째 기차는 처음에 탄 기차보다 깔끔하고 시설도 좋아 안 좋았던 기분이 그때 좀 풀리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이런 경우에 조바심을 내봤자 별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흐름에 맡기면 오히려 별 일 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여하간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에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기분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숙소까지 가는 길은 지도가 알려주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비 내리는 역사를 잠시 내려다보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산티아고-역입니다

 

숙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체크인도 가능했습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면서 짐을 풀어놓고 한숨을 돌렸습니다. 숙소는 늦은 시간임에도 떠들썩한 소리들이 들려 왔습니다. 이 소리들은 자정이 될 때까지 지속이 되었는데, 그때는 그러한 소리들이 소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늦은 시간에 들어와 정리도 하고 씻기도 해야 하는데 소란스러움 덕분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할 일을 마치고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 잠시 오늘의 일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산티아고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이것도 여행의 묘미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앞으로의 일정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면서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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