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의 밤은 꽤나 추웠습니다. 중간에 추위에 깨서 잠바와 양말까지 껴입고 나서야 다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밖은 어두컴컴했고 비가 오는 듯 보였습니다. 숙소가 공립은 아니어서 이른 시간에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날씨가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어 준비되는 대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개인실처럼 방을 쓸 수 있어 불도 일찌감치 키면서 편하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가기 전 밖을 살펴보니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고 있어 우비를 입는 게 낫겠다 싶었고 우비를 챙겨 입은 후 숙소를 나섰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바람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의를 입고 나온 건 정말 잘 한 일이었는데요. 우의가 비바람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보온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미리 입고 나온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우의가 뒤집어지면서 난리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입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참고로 11월 이후 시기의 순례길은 점차 우기가 접어들어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우의는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비와 바람뿐만 아니라 추위로부터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은 전날 늦게까지 먼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 이날 목적지인 부르고스까지 가는 거리가 짧았다는 것입니다. 가는 도중의 길이 대부분 포장도로였던 것도 걷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전날 머물렀던 곳까지 오지 않았다면 언덕과 진흙길을 비 오는 날씨에 질퍽거리며 힘들게 걸었을 것이 분명했지요. 이런 측면에서 전날 고생하며 걸은 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부르고스 공항을 지나는 구간으로 접어들자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닥쳤습니다. 그것도 맞바람과 옆으로 불어오는 바람이어서 앞으로 조금 나아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뒤로 돌아서 가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보면서 조금씩이나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옆으로는 차가 쌩쌩 달리고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마의 구간을 힘겹게 헤치고 부르고스 직전에 있는 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주기 위해 바부터 찾았는데요. 괜찮아 보이는 바에 들어가 화장실도 다녀오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점차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부르고스로 향했습니다. 주변 광경은 도시에 진입한 느낌이었지만 공장 지대 같은 건물들이 계속 이어졌고, 시내로 진입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1시간 여를 걷자 도시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부르고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시내로 진입하는 데만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초입에 있는 성당에서 잠깐 쉬다가 이어 걸었는데, 근처에 순례길의 표식인 가리비 모양의 마크가 크게 새겨진 아파트 같은 건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면서 그곳이 어떤 건물인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부르고스-진입하는-데-있는-순례길-표식이-새겨진-건물입니다.
ttt

 

그곳에서 부르고스 대성당이 있는 곳까지 가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고,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살펴보며 가다보니 어느덧 부르고스 대성당의 자태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예전 순례길에서도 많이 보았던 곳이었기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인 성당의 모습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관광객들을 비롯해 많은 인파들이 몰려 있었기에 일단 숙소부터 가보기로 했습니다.

 

숙소는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문이 닫혀 있었고, 그 주변에 딱 봐도 숙소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다수 대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숙소 앞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 쉴만한 장소를 찾았고, 한참을 돌아다닌 뒤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음료도 마시면서 인터넷을 할 생각으로 들어간 곳이었지만 아뿔싸, 이 곳은 와이파이가 없다는 것을 음료를 시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될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당황스럽게도 했지만 다음부터는 들어가기 전에 미리 확인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기도 했죠.

 

비록 와이파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음료로 시킨 초코라떼가 굉장이 진하고 맛이 있어서 만족감은 있었습니다. 음료를 마시고 마트에 들렀다 숙소로 돌아가니 문은 열렸지만 줄이 길게 서 있었습니다.

 

굳이 줄을 서면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기에 다시 그곳을 벗어나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비가 쏟아지던 날씨도 화창하게 개어 다시 찾은 대성당의 자태도 더욱 선명하고 멋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부르고스-대성당의-모습입니다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는데, 샤워기가 불호하는 원터치 방식인 것을 보고 그 숙소를 쓰는 것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짐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놔두고 밖으로 나가 다음날 숙소로 생각했던 호스텔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대도시에서처럼 부르고스에서도 하루는 더 머무르며 충분히 즐길 예정이었죠.

 

보통 호스텔의 경우 부킹닷컴 등의 숙소 예약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미리 한 후 당일 체크인 시간 이후에 가는 게 보통인데요. 그렇게 예약하지 않고 이용이 가능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이용하게 되면 더 저렴하게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기도 했고요.

 

찾아간 호스텔에 벨을 누르자 호스트가 응답을 했고, 올라가니 직접 예약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숙소 비용을 내고 바로 예약을 했습니다.

 

예상대로 그렇게 직접 방문하여 예약을 하니 사이트를 통해 예약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미리 위치도 확인할 겸 직접 방문하여 숙소를 예약하는 것도 하나의 팁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숙소를 에약하고 나니 그냥 오늘은 샤워하지 말고 가볍게 씻으면서 잡은 곳에서 머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해프닝이 하나 벌어지고 맙니다. 배정받은 침대를 누군가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왜 그 침대를 쓰냐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 원래 자기 침대를 쓰고 있어서 그렇게 쓰고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황당함을 느꼈지만 차분하게 내가 처음에 그 자리에 시트와 배낭을 놓은 것을 당신도 보지 않았냐는 얘기를 하자 그는 당황스런 기색을 보이며 자기가 오해를 했다는 말로 둘러대더군요.

 

이미 다른 사람의 시트와 짐이 놓여진 침대를 다시 쓰고 싶지 않아 숙소 관리인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고 침대를 바꿔달라고 했고, 관리인은 확인을 해보더니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겨 주었습니다. 이런 일은 순례길에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는데, 예전과 달리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다보니 이런 일도 벌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경 쓰이는 일은 식사 이후에도 발생했습니다. 새롭게 자리 잡은 침대 근처에 있는 벨기에 남성이 음악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있던 것입니다.

 

보통은 주방이나 공용장소에서 그런 행동을 하기는 해도 숙소 내에서는 다른 순례자들을 배려해서 대놓고 음악을 트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는 그런 것을 잘 모르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음악소리가 크다는 얘기를 하자 그가 소리를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음악 소리는 들렸고, 나중에는 다른 순례자와 늦게까지 큰 소리로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 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 그곳을 벗어나 공용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소등 시간 가까이 되서 침대로 돌아와 잘 준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강렬한 비바람을 뚫고 부르고스까지 오는 여정도 쉽지 않았지만 숙소에 도착해서도 신경을 쓰이게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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