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던 숙소는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나갈 준비를 했고, 혼잡함을 벗어나려다 보니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밖은 바람이 불어 쌀쌀했지만 비가 오지 않고 아침의 상쾌함이 더해져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쉴 때 날이 추워서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초반에 들렀던 마을들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릴없이 바깥에서 조금씩 쉬면서 간식을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빵을 먹다가 소화가 안되어 반 이상을 뱉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추운 날씨에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밖에 쉴 때에는 따로 뭘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바가 문을 연 곳을 발견하여 들어갔습니다. 전에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외국인도 먼저 와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차를 시켜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역시 휴식은 상황에 맞게 잘 쉬어주는 게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충전한 다음 다시 길을 나섰고, 머지않아 오늘 목적지로 생각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시간이 12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날도 춥고 다음 마을까지는 중간에 마을도 없이 꽤 멀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머무르려 했습니다. 그곳의 숙소 컨디션은 좋았으나 먼저 와 있던 사람이 있었고, 순례길에서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던 이었기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머물게 된다면 불편함이 클 것이 예상이 되었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좀 더 길을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들어 그곳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마침 바람도 약하게 불고 햇살이 쩅쩅 비추기 시작하면서 걷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고, 역시 날씨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오후 길을 출발했습니다.

 

날씨는 좋아졌으나 가파른 오르막으로 길이 시작되면서 산으로 진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면서 힘이 많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구간에는 중간에 마을이 없었기에 휴식을 위해 적당한 곳을 찾았고, 햇빛이 비치면서 앉아 있기에 괜찮은 장소를 발견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바람을 등지고 바닥에 앉아 쉬면서 바람의 소리를 가만히 감상해 보았고, 고요함과 함께 회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길바닥에 앉아 쉬는 것이었지만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기분 좋게 쉴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충전을 하고 나서 그때부터는 속력을 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길 주변이 숲으로 형성이 되어 있어 그 구간을 명상의 숲길이라고 명명하고, 한동안 잡념 없이 바람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길을 유유히 걸어 나갔습니다. 걷는 명상의 시간이었고, 비가 오락가락하기도 했지만 이때의 순간들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산을 벗어나면서 햇빛이 비치는 들판이 눈에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상점도 다 문을 닫았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 황량한 느낌이었고,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때부터는 새로운 숲길과 함께 주변 경치가 좋아서 걸을 맛이 났습니다. 중간에 돌부리에 세게 부딪히며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경치를 즐기면서 숙소를 잡으려고 생각한 마을 아헤스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헤스로-들어가는-길입니다

 

이곳의 알베르게를 찾아 가까이 갔는데 문이 닫혀있으면서 인기척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직 이곳 숙소가 문이 여는 기간임을 확인하고 온 것이었는데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근처 바에 들어가 물어보니 지금은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픈 기간에 대한 정보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좀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카운터에 있던 여성이 다음 마을은 숙소가 문을 열었다고 친절히 알려줬고, 여기까지 오는 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더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 쉬고 갈까도 생각했는데 다음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 규모가 작아서 혹시라도 사람이 금방 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로 출발을 했습니다.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쉬지도 않고 출발을 하니 얼마 되지 않아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날 이렇게까지 걸을 생각이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으면서 계속 걷게 된 것이었죠.

 

쉬더라도 숙소에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아 힘든 발걸음을 옮겨 다음 마을에 도착을 했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 정보센터 같은 곳이 있어 그곳에서 숙소 위치를 묻고 가보니 방이 없다는 반갑지 않은 얘기가 돌아왔습니다. 힘이 빠진 상태로 다시 정보센터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거기 근무하는 사람에게 다른 숙소 정보를 물어봤는데, 이 여성은 다음 마을에 가면 알베르게가 있고 전화를 걸어 그곳에 머물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원래는 더 갈 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아 그 마을의 다른 숙소를 찾아보려고 물어본 거였는데, 나의 이런 상태와 마음을 모르고 그 여성은 다른 마을의 알베르게 정보를 알려준 것이었는데요. 그렇게 얘기를 듣고 나니 더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 마을까지는 1시간 조금 넘게 걸어가야 했고 해가 곧 저물 시간이어서 몸은 힘들었지만 그렇게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직 밝기는 했지만 언제 어두워질지 모르기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을 빨리 움직였습니다. 돌이 가득히 박히고 경사진 언덕길을 계속 나아가다가 이곳에 예전 순례길 때 걸었던 구간임을 알고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속도를 줄일 수는 없었습니다.

 

몸이 무겁고 힘이 드는 게 느껴졌지만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나아가다 멀리 넓게 펼쳐져 있는 도시의 형체가 보였습니다. 그곳이 근처에 있는 대도시 부르고스임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불빛을 비추기 시작한 대도시의 전경을 보게 되면서 이 시간에 이렇게 걷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기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가려고 한 곳까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렸고 해는 진작에 넘어가면서 어둠이 깔린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은 불빛이 보여서 그곳이 도착지인가 했는데 목적지의 전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을 비껴서 지나가는 게 지름길이었는데 그만 마을로 들어가면서 거기서 시간이 더 소요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마을 구경도 한번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참을 걸으며 깜깜한 밤길도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까르데뉴엘라 리오피코라는 곳이었는데, 이름도 외우기 쉽지 않은 이 마을에서 숙소부터 일단 찾아 들어갔습니다. 바도 겸하고 있는 숙소에는 이전에 보았던 외국인 아저씨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오랜 걸음 끝에 아는 얼굴들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기도 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올라가보니 두 개의 도미토리가 있었고, 사람이 없는 빈 방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친 상태였지만 숙소를 편하게 쓸 수 있어 힘들게 온 보람이 있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제서야 허기가 느껴졌지만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갖고 있는 빵으로 해결하고 아래 바로 가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오랜 시간의 여독을 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휴식을 취하고 씻고 나니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방을 혼자 쓰게 되서 잠들기 전까지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의도치 않게 늦은 시간까지 걷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바로 이날이 그랬습니다. 예전 순례길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고, 그때는 길 방향까지 헤매서 더욱 고생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장시간 걷다 보니 무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만큼 걸은 것이기에 다음에 도착할 대도시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으니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면 좋은 일은 있는 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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