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자고 있던 사람들이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덩달아 잠에서 깼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잘 잔 느낌이었고 조식 시간에 되어 준비된 음식을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건너편에 있던 한 외국인이 내게 한국 영화가 좋다는 얘기로 말을 걸면서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그는 아일랜드 사람이었고, 올드보이를 비롯해 자신이 본 한국 영화에 대해 좋은 평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기부함 통에 기부금을 넣었습니다. 기부제 알베르게의 경우 숙소에 머문 뒤에 자율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데요. 보통 마음이 나는 만큼 기부를 하게 되는 듯 합니다. 식사와 잠자리가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합당한 느낌의 금액을 넣었는데, 하필 그때 숙소 관리인들이 기부함 통 바로 옆에 있었고 괜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기부금 넣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기부금 넣는 것에 대해 남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불편했던 감정을 놓아버릴 수 있었습니다.

 

 

 

밖을 나와 보니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어제처럼 여전히 쌩쌩 불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침의 상쾌한 기운을 느끼며 기분 좋게 출발했습니다. 여러 마을을 거치던 도중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비바람과 함께 하는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중간에 길도 헷갈리다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안심하기도 했지만 우의도 입지 않고 나온 상태여서 추위가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스로 다음 마을에 도착하여 쉬기 위해 바를 찾았는데, 눈에 보인 곳은 문이 닫혀있었고 옆에는 고기를 파는 듯한 식당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마침 근처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있어서 쉬고 있는데, 순례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거기에 바가 열려있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고, 그곳에서 좀 더 쉬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에 들어갔습니다.

 

바 안은 따뜻했고, 차를 한 잔 마시니 속도 따뜻해지면서 비로소 제대로 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쉬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들어오면서 바 안이 시끄러워졌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비바람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우의를 챙겨입어 대비가 된 상태였고, 이어폰을 끼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면서 가니 궂은 날씨에도 그 길을 나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비를 맞으며 가다 보니 결국 순례길 들어 처음으로 신발까지 젖게 되었습니다. 다음 마을이 얼른 나타나기만을 고대하며 걷다가 건물이 나타났고, 곧 벨로라도 표지판이 보여 반가웠지만 마을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했습니다.

 

벨로라도에 진입을 하고 일단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성당 밑으로 가서 어디로 갈지 생각을 했습니다. 공립 알베르게가 아직 문을 여는 시간이 아니었고, 빨리 숙소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다른 곳을 알아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개인실 밖에 없었고 비용도 비싸서 그냥 좀 기다렸다가 공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여는 시간에 맞춰 간 공립 알베르게 문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서 다들 어디선가 비를 피하고 있다가 알베르게 오픈 시간에 맞춰 온 느낌이었죠. 천천히 들어갈 생각으로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이후에 먹을 것을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샤워와 빨래도 편안하게 하면서 오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흠뻑 젖은 신발은 외부에서 발견한 건조기에 돌렸습니다. 예전에 비에 완전히 젖은 신발을 그냥 말려놨다가 다음날 거의 마르지 않은 것을 경험했기에 건조기로 최대한 말려 놓는 게 필요함을 느꼈는데요. 건조기에 돌린 신발이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건조하고 나서 말려 놓으니 다음날 신는 데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순례길을 걷다가 한번쯤은 비로 인해 신발이 완전히 젖어버리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냥 외부에 말리면 다음날까지 거의 마르지 않기 때문에 바로 건조기에 돌려서 어느 정도 말리면 다음날 큰 무리 없이 신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팁입니다.

 

벨로라도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고 비로 인해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몰리다 보니 저녁 무렵이 되자 숙소 주방이 사람들로 바글거렸습니다. 자리도 마땅치 않아 밖으로 나와 빵을 먹고 근처 바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저녁 시간을 보냈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침대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벨로라도에-있는-바-안의-모습입니다

 

거센 비비람을 맞으며 계속 걸었지만 그런 경험이 기억에 더 남기도 하고 순례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어서 추억이 될 만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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