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숙소에서 좋지 않은 일들을 겪고 추운 데서 샤워하고 넘어지기까지 하면서 몸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침낭을 꼭 닫고 잔 덕분인지 일어났을 때 목이 아팠던 게 좀 나아졌습니다. 그전까지는 침낭 밑을 열고 잤는데 이번에 잘 때는 추위가 많이 느껴져 그 부분을 완전히 닫았었는데요. 그렇게 자도 막 답답하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보온을 유지하며 잘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개인실을 잡을 때 나이 먹은 호스트가 체크아웃 시간이 9시라고 했는데 전날 실랑이를 벌일 때 있던 젊은 남자가 8시에 나가야 한다고 말을 바꾸더군요. 9시까지 머물러도 별 문제는 없었겠지만 어제 그런 일을 겪었는데 이 숙소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8시가 될 무렵 미련 없이 숙소를 떠났습니다.

 

 

 

가기 전에 호스트에게 한 마디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날 일도 그렇지만 나이 먹은 호스트가 실내에서 담배를 펴서 숙소 내부에 그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순례자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펴대는 것만 봐도 이곳 호스트의 수준이 어떤지 알 만 했죠. 내부 공간에서 그렇게 담배를 피지 말라는 얘기를 남기고 최악의 숙소를 빠져 나왔습니다.

 

아침 날씨는 꽤나 쌀쌀했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어 마을에 바를 찾았으나 그 시간에 열린 곳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마을까지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그곳으로 가서 차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걸으면서 전날 샤워하다 넘어진 부분이 쑤시기 시작했고, 배낭 무게도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갈 수 밖에 없었고 걸으면서 부상 당한 부위의 근육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 나아갔습니다.

 

이날 순례길의 경치는 좋았으나 몸에 아픈 부위가 복합적으로 있다 보니 이전과 같은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빨리 쉬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계속 걸어도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죠. 그러면서 몸이 건강해야 풍경도 눈에 들어오고 잘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마을인 벤또사에 힘겹게 도착하자마자 바로 보이는 바에 들러 차를 주문했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목상태도 점차 괜찮아졌습니다. 그곳에서 어제 끊겼던 연락도 이어서 하고 충분히 쉰 다음 길을 나섰는데, 여기서 그만 힘을 엉뚱하게 빼게 됐습니다. 나가는 길이 차 마시던 곳 바로 옆에 나 있었는데, 그걸 못 보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못 찾고 한참을 돌게 된 것입니다. 보통 길이 마을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기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간 것인데, 벤또사의 순례길은 마을을 비껴서 이어져 있던 것이었죠.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묻기도 하면서 방향을 제대로 잡았지만 힘을 한번 빼고 나니 휴식이 다시 필요해 졌습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마을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몸 상태를 고려하여 한번에 길게 가기보다 중간에 짧은 휴식을 많이 가지면서 나아갔습니다. 다음 마을인 나헤라까지도 텀이 길었고, 건물은 계속 나오는데 마을에 진입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지친 몸을 안고 나헤라에 도착했을 때는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구입하고 바로 떠났습니다.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도 했지만 좁은 골목에 차들이 많이 지나 다니면서 매연이 심해 오래 있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잠깐의 휴식만 가지고 다음 마을이자 이날의 목적지인 아소프라로 향했습니다. 이곳까지도 거리가 꽤 되서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나아갔고, 그렇게 아소프라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몸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머물고자 한 공립 알베르게가 마을 끝 부분에 있어서 마을 내에서 이동하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구간을 걸을 때 나헤라가 규모가 있는 마을이어서 그곳에서 숙소를 많이들 잡지만 이번에 아소프라로 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전 순례길에서는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것이었는데, 아소프라의 침대가 단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방에 두 개의 침대가 놓여져 있어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던 것입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과연 듣던 대로 단층 침대가 2개 놓여져 있었습니다. 방의 규모가 크지는 않아서 처음에는 그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누워서 쉬기도 하고 잠을 자 보니 확실히 편하고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소프라의-단층-침대입니다

 

또 하나 몸이 성치 않음에도 이곳까지 온 이유가 이날이 아소프라 알베르게가 올해 오픈하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층 침대를 꼭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힘이 좀 들어도 온 것이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었는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국어로 말하는 게 역시 아직은 더 편함을 느낄 수도 있었고요.

 

저녁식사는 밖에서 사먹어도 좋겠다 싶어 마을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마땅히 먹을 만한 곳은 찾지 못해 바에 들러 따뜻한 차 한잔만 마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추운 날씨에 몸도 따뜻해져서 좋았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씻으려는데, 샤워 시설이 내가 불호하는 원터치 방식임을 보았습니다. 샤워를 마친 한국인에게 물이 어떻게 나오냐고 물으니 그는 뜨거운 물만 나와 샤워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고, 그걸 듣고 나니 샤워는 패스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찬물도 같이 나오는 세면대가 있어 그곳에서 씻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은 숙소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누워서 휴식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편하게 침대에 누워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확실히 체력이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숙소에 도착하면 보통 바로 씻고 빨래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러면서 개인 시간이 잘 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잘 쉬어주면서 여유 시간도 확보하여 보낼 수 있었습니다.

 

순례길을 마치고 바로 씻고 빨래하면서 개인 정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체력과 시간을 잘 확보하면서 여유를 갖고 이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함을 느끼며 아소프라의 밤은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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