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배웠던 윤리 교과서에는 동양의 다양한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그들 대부분 책을 보고 이치를 깨쳐 성인의 길로 나아간다는 가르침을 펼쳤다. 그런데 그 중 결이 좀 다른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왕수인. 치양지설을 주창했던 명대의 유학자이자 장군이다. 치양지는 밝은 마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밝은 마음으로 나아가자고 했기에 그를 왕양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주창한 학문은 양명학이라 일컬어진다. 왕양명이 펼쳤던 가르침과 생각을 제자들이 엮은 책이 바로 「전습록」이다. 

 

「전습록」은 주로 제자들이 궁금한 것을 물으면 스승인 왕양명이 그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는 다양한 제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공부하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면서도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양명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동감을 표하며 지지해주기도 한다. 책 곳곳에서 제자들이 올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양명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제자들이 양명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호소하는 어려움은 마음을 궁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라는 게 일단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공부해야 할지 막막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차라리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며 이치를 파악하는 공부는 어렵더라도 보이는 게 있으니 어떻게라도 할 수 있겠는데 마음의 작용을 파악하고 공부한다는 게 그 당시 주자학이 성행하던 시대의 분위기상 쉽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왕양명은 양지는 분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위에서 힘써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힘써 행하려 하지 않고 말로만 설명하면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대들이 이 도를 실제로 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드시 자기 마음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체득하여야 하고, 내 마음 밖에 달리 무슨 대단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밖에서 구하는 데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 때라야 이 도를 깨닫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양명에게 있어 마음은 곧 도이고, 도는 곧 우주다. 마음을 알면 도를 알 수 있고, 도를 안다는 것은 세상을, 즉 우주를 아는 것이다. 이러한 도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체득하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마음이 실체임을 알고 스스로가 구체적으로 탐구하면서 양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양지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이라고 양명은 또한 말한다. 

 

"성인의 마음은 천지 만물을 한몸으로 봅니다. 성인들은 천하 사람들을 볼 때 안팎이 없고 멀고 가까운 게 없습니다. 혈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면 모두 자기 형제나 어린 자식으로 여겨 안전하게 보살피고 가르쳐 기르려고 하면서 만물일체의 생각을 수행합니다.

처음에는 천하 사람들의 마음도 성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게 있다는 사사로움과 물욕에 마음이 가려진 상태 등으로 다른 사람과 사이가 벌어지고 간격이 생겨, 컸던 마음이 작아지고 통쾌하던 마음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마다 각각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부모와 자식, 형제 간에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래 사람들의 마음도 성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지만, 사사로움과 물욕이 마음을 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치를 닦고 또한 이치를 어기지 않게 되면 본성의 본체를 회복하게 된다고 한다.

 

"마음을 하나로 집중한다고 할 때의 하나는 천리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온 마음을 천리에 두는 것을 가리켜 주일(主一)이라고 한다. 지금 그대처럼 오직 하나에 집중하는 것만을 알고 그 하나가 천리임을 알지 못하게 되면, 일이 생길 때마다 온통 바깥의 사물이나 사건을 쫓아다니게 되든가, 일이 없을 때 마음 둘 곳이 없어 공허하게 되든가 하게 된다. 그러니 일이 있건 없건 마음을 언제나 천리에 두어야 한다."

 

일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마음을 언제나 천리에 두어야 한다는 양명의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얘기가 아닐까? 사람들이 일이 있을 때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 움직이고 일이 없을 때는 집중할 것이 사라져 공허하게 되는 것은 마음을 욕망의 흐름에만 맞춰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늘 천리, 즉 올바른 이치에 두게 된다면 일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감정이 움직이지 않은 중의 상태에 관한 공부는 오직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고 순수한 천리를 보존하는 것뿐이다. 고요할 때도 매순간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고 순수한 천리를 보존하려고 해야 하고, 움직일 때도 매 순간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고 순수한 천리를 보존하려고 해야 한다. 이것은 편안함과 고요함의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만약 편안함과 고요함 등에 의지해서 아직 감정이 움직이지 않은 중의 상태를 찾고자 한다면, 점차로 고요한 것을 좋아하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병폐가 생길 것이다. 또한 그러는 동안 더욱더 많은 폐단이 잠재되어 끝내 제거할 수 없게 되어, 막상 일을 만나서는 그 병폐가 여전히 자라게 될 것이다. 이치를 따른다면 어찌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편안하고 고요한 것을 위주로 한다면 결코 이치를 따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양명의 위 얘기는 개인적으로 울림이 컸던 부분이었다. 편안함과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집중할 것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변이 시끄럽고 번잡하면 집중하기도 힘들고 예민해져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의 말을 통해 내가 편안함과 고요함에 의자하고자 한 게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거기에 의지하는 마음이 점차 커지면 고요한 것을 좋아하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삶의 일부분이고 보통 시끄럽고 번잡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 쉬운데, 고요함을 좋아하고 그것을 추구하게 되면 사람과 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그것은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이 양명이 얘기한 폐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치를 따른다는 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양명의 이와 같은 얘기는 되새겨볼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존천리거인욕.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한다는 이 말은 양명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학창시절에 단편적으로 배웠던 내용이 이제는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는 것에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하지만 양명은 말한다. 아직까지 알면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알지만 행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아직 알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양명에 의하면 행해야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알고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가면서 앎과 행위의 본체를 회복하는 게 필요한 것이다. 양지로 나아갈 것을 역설하는 양명의 얘기 중 각자에게 와닿는 게 있었다면 그리고 진정 그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행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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