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낭송 장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가? 자유에 대한 이미지는 제각각이겠지만, 자신의 욕망을 억압받지 않고 원하는 삶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로서의 의미로 자유를 바라본다면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자유를 언급했지만 그 중 가장 '자유'에 가까운 인물은 장자가 아닐까 싶다.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노장 사상이라는 하나의 일파를 이루었다. 장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는 노자에서 더 나아가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규모를 헤아리기도 힘든 물고기가 새가 되어 오랜 기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다는 대붕 우화는 판타지적인 느낌마저 든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이름을 곤이라 합니다. 그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곤은 변하여 새가 됩니다. 이름을 붕이라 합니다. 그 등 길이도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힘차게 날아올라 날개를 펴면 하늘을 뒤덮은 구름 같았습니다. 붕은 바다가 크게 출렁이면 남쪽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장자가 추구하는 자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지인은 위로는 푸른 하늘 끝까지 엿보고아래로는 황천 바닥까지 살피며사방팔방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도순수한 기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공자가 군자를 제시하듯 장자에게서는 지인으로 나타난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호방함이 연상된다. 그 스케일이 남달라도 한참 다르다. 


"옛날의 진인은 삶을 좋아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라태어난 것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갈 뿐이었습니다삶이 시작된 곳을 잊지 않았지만 삶이 언제 끝나는지 알려 하지도 않았습니다생명을 얻어 기쁘게 살다가 때가 되면 잊고 자연으로 돌아갑니다이처럼 하는 것을 분별심으로 손상시키지 않고 인위를 자연에 덧붙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런 사람이 진인입니다."


진인은 참된 사람이란 뜻으로, 역시 장자가 제시하는 인간상이다. 장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삶을 좋아하지도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무심히 살다가 죽을 뿐이다. 때에 맞게 살다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이 과정에서 분별심으로 시비선악을 따지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움에 따라 사는 것. 자연스러움은 도의 작용이고, 도를 실현하며 사는 것이 장자의 자유를 실천하는 삶인 것이다.


장자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도 재밌는 비유를 통해 얘기하고 있다.


"던지기 놀이를 할 때 기와 조각을 걸면 잘 맞추고혁대고리를 걸면 약간 위축되고황금을 걸면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그의 솜씨는 언제나 같지만 아끼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소중해져 마음을 뺏기기 때문이다외부 사물이 소중해지면 자기 마음은 졸렬해지는 법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솜씨는 변함없지만 마음이 사물에 대한 욕심에 의해 흔들리면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외부 사물에 의한 마음 작용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장자는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산의 나무는 자기를 해치고

등불은 자기를 태웁니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 잘리고,

옻나무는 쓸모 있어 잘립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 알고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모르고 있습니다."


쓸모 있는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태워지고 잘리면서 자기를 해치게 되지만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나무들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 타고난 수명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내용은 혜시가 장자의 말이 쓸모없다고 한 것에 대해 장자가 했던 대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다네. 천하의 땅은 더할 나위 없이 넓고 크지만 실제 사람에게 쓸모 있는 것은 단지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정도의 땅뿐이지. 그렇다고 발을 딛는 부분만 잰 후 그 부분만 남겨 두고 나머지 땅을 바닥까지 깎아 버린다면, 그래도 발을 딛는 부분이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나?”


쓸모 없음으로 인해 쓸모가 생긴다는 장자의 역설적인 말은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에 대해 분별하고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일침을 가하며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게 있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삶을 제시하는 장자의 말을 별다른 능력도 갖출 필요도 없고, 마음내키는 대로 편하게 살라는 얘기로 받아들인다면 큰 오해라 할 수 있다.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을 얘기한 것은  직접적으로 유용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고, 오히려 쓸모의 기준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건 더욱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여기저기 얽매이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산다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연'이라는 것의 표상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은 사실 순조롭고 평화스러운 이미지가 아니다. 풀과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나 있는 모습도 있지만 거센 비바람이 불 때도 있고 그 속에서 생물들은 살아가기 위해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기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씨앗이 꽃을 피우고 새끼 동물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모습으로 커 가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곳이 자연이다. 낭만적인 이미지로만 접근하면 큰 코 다치게 된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때에 맞게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비추어 볼 때, 장자의 자유는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 의미의 그것이다. 치열한 사유를 거치고 때론 혁명적 사유를 통해 기존의 가치들을 뛰어넘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는 공자를 대표로 하는 유가의 유위有爲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속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자의 자유는 오히려 현실 속에서 치열함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야 유유자적함의 진정한 모습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장자의 자유는 멋있다. 드넓고 호쾌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그 자유를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면 헛된 바람만 들어갈 수 있다. 그 자유를 획득하고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낭송 장자」를 통해 하나씩 살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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