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렀던 올레길의 첫 발을 드디어 떼었습니다. 예전에 제주에서 잠시 지낼 때 몇몇 코스를 걸은 적이 있었지만 그 후 시간이 많이 지나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었는데요. 어느 코스부터 걸을까 생각을 하다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 10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제주 올레길 10코스는 화순 금모래해변에서 출발하여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지나고 사계해변(사계포구), 송악산 둘레길, 해모해수욕장을 거쳐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하는 일정입니다. 크게 보면 화순부터 모슬포까지의 올레 코스라 부르기도 합니다. 

 

제주 올레길 10코스

 

버스를 타고 화순환승정류장에서 내려 바다 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화순 금모래해변이 나옵니다. 그곳에 있는 제주올레 공식안내소에 들러 가지고 있던 패스포트를 꺼내 출발 지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으면서 가면 좀 더 동기부여도 되고 기념도 되니 특히 완주를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는 패스포트 지참을 추천드립니다.

 

 

날씨가 흐려서 전체적으로 날이 어두운 느낌이 있었지만 햇빛을 가려주고 덥지 않아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방산 방향으로 바다풍경을 구경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화순 금모래해변

 

조금 지나니 넓은 모래사장과 함께 옆으로 깎아놓은 듯한 돌산의 형상이 나타났는데요. 자연이 빚은 걸작품에 눈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눈앞에 웅장한 산방산이 점점 눈앞에 다가오던 찰나 카페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제주 원앤온리라는 카페였는데요. 산방산 주변에 있는 유명한 카페 중 하나로, 이렇게 올레길을 걷다가 만나게 됐습니다. 점심 때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고 곳곳에서 사진도 찍으면서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주 원앤온리

 

원앤온리를 지나가니 한적한 숲길이 나왔는데요. 산방산을 향해 점점 올라가는 이 길은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고 주변 자연의 경관을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이번 올레길 코스 중 가장 기억에 남기도 했습니다.

 

 

잠시 후 용머리해안에 진입했는데요. 이곳 역시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구경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최근 지구적 문제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기후변화를 다루고 있는 홍보관이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커다란 배 한척도 하나 있었는데요.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 시대에 제주도로 표류했다가 이곳에 오랫 동안 거주하며 살았던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 놓은 하멜상선전시관이었습니다. 

 

 

그렇게 용머리해안까지 지나고 곧이어 발이 닿은 곳은 사계해변입니다. 사계포구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개인적으로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해안가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 나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왼편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오른편으로 송악산이 보이고 정면에서는 형제섬을 바로 볼 수 있는데요. 아름다운 사계의 바다와 더불어 이러한 다양한 풍경과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계해변

 

사계해변을 걷다가 마을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다보면 전복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제주 사계해변 맛집 중 하나로 유명해진 선채향인데요. 이번에 갔을 때도 줄이 서 있고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이곳은 늘 이렇게 북적입니다. 먹으러 간 것은 아니어서 잠시 구경만 하고 패스.

 

계속 걷다 보니 송악산이 점점 가까워져 옵니다. 그러고 보니 동네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사계에서 산이수동이라는 마을로 넘어온 건데, 이곳부터는 대정이라 불립니다. 이곳에 들어온 것을 반기는 듯 귀여운 모습을 한 돌하르방이 익살맞은 웃음을 지어 주네요.

 

 

날씨가 점점 개어 송악산에 들어올 쯤에는 파란 하늘도 드문드문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아래 맑은 시야 사이로 보이는 송악산의 자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제주 송악산 둘레길

 

송악산은 둘레길로도 유명한데요. 많은 사람들이 둘레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대열에 슬며시 동참하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보이는 주위 풍경은 어느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더군요. 바람에 휘날리는 들풀과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산방산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송악산 위에 수놓아진 길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유유히 지나가는 유람선을 품은 바다 역시 한동안 바라보게 만들었는데요. 멀리 아득히 보이는 수평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산을 깎아서 만든 듯한 기암 절벽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네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바다에 떠 있는 두 개의 섬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데요.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가파도와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가 그 정체입니다. 가파도의 경우 날씨가 맑아서 섬 해안가에 위치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둘레길을 벗어나 길을 건너자 올레길의 표식과 함께 하나의 안내판이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다크투어리즘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다크투어리즘이라고 하는데요. 이곳부터해서 일정 구간에서 다크투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것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는 게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죠.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네모로 되어 있는 문을 지나니 넓은 원으로 파여져 있는 곳이 나왔습니다. 제주 섯알오름 일제고사포진지라는 곳이었는데요. 일제 말에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 시설로 파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곳을 지나 좀 더 가다가 정자를 하나 만났습니다. 추모정이라 불리는 이곳 근처에는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해 양민들이 학살당한 것을 추모하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4.3사건과 더불어 제주의 아픈 역사 중 한 장면을 느낄 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녀상으로 보이는 커다란 조형물도 있었습니다. 쪼갠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다는 이 소녀상은 일제 때 그리고 광복 이후 제주에서 희생당한 많은 이들을 추모하고 있는 거였을까요?

 

 

소녀상 근처에는 일제 때 전쟁에 쓰기 위해 만든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도 있었는데요. 지금도 터와 건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었습니다. 격납고 안 비행기 조형물에는 수많은 추모의 글을 적은 리본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격납고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당시 관제탑으로 쓰이던 건물이 현재 골조만 남은 채 서 있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흔적들을 통해 당시 이 지역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제주 역사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다크투어리즘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니 넓게 펼쳐진 밭이 나오고 곧이어 바다가 다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해모해수욕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주 하모해수욕장

 

한적하면서도 넓게 트인 바다를 보니 기분이 전환되기도 했는데요. 그곳에는 하모해변으로 들어오라고 만들어 놓은 듯한 벽돌문이 덩그러이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모해수욕장을 지나 모슬포 시내에 있는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하면서 이번 올레길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구경하느라 잠깐씩 멈춘 것을 빼고 특별히 쉬지 않고 가니 5시간 가량 걸렸는데요. 종착지에 오고 나서야 다리가 조금씩 아파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올레길을 걸을 때는 중간중간에 잘 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네요.   

 

 

 

이날 걸으면서 실수한 게 있었습니다. 캡모자 쓴 것을 제외하고는 햇빛에 별 대비없이 목과 팔을 계속 노출시킨 채 걸었는데요. 걸을 때는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까 팔등이 새빨갛게 익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목등과 양볼까지 마찬가지로 익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노출된 부분들이 쓰라리면서 통증이 계속 되더라고요. 날씨가 흐려서 괜찮을 줄 알고 별 대비를 안했는데 이러면 안되는 것을 몸으로 여실히 느꼈습니다.

 

올레길을 걸을 때는 햇빛이 강한 날은 물론이고 날이 흐리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자외선 차단 패치를 붙이거나 썬캡, 장갑, 팔토시 등으로 자외선을 잘 차단해야 좀 더 기분 좋게 여행을 끝마칠 수 있으니 꼭 기억해 두세요(☞자외선 차단패치 보러가기).

 

제주도 혼자여행으로 떠난 제주 올레길 10코스. 실수로 인해 끝나고 나서 약간의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산과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코스도 가봐야 알겠지만 충분히 추천할만한 올레길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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