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소 와이파이가 갑자기 끊기는 바람에 오늘 일정정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목적지만 확인한 채 떠나게 됐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떠난 길은 발의 통증이 다시 느껴지면서 처음부터 걷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도로 옆을 지나야 했기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금방 도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자연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정은 중간에 가장 많은 마을을 경유했다. 목적지인 벨로라도까지 중간에 무려 5개의 마을이 있었다. 덕분에 길가에서 앉아 쉬지 않아도 됐다. 들리는 마을마다 쉬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 또 마을 사이사이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들을 맘껏 즐기기도 했다.

 

 

출발할 때 날이 흐렸기에 비가 오나 싶었는데 다행히 비는 안오고 점점 개어 구름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창하고 맑은 날씨 속에서 찍힌 사진을 보니 실제보다 더 예쁜 색감이 나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사진 찍을 맛이 났다.

 

 

그렇게 풍경을 즐기며 벨로라도 이전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마을의 성당으로 가보았다. 보통 낮에는 마을 성당들이 문이 닫혀 있는데 이곳도 역시 그랬다. 그래서 주변만 둘러보고 돌아서려는 찰나, 한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면서 내 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몸짓을 보니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자기가 보여주겠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본인 집으로 들어가 커다란 커다란 열쇠 하나를 가지고 나와 성당문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사실 굳이 안 봐도 됐지만 할아버지가 보여주고 싶어 하시더라.

 

 

그렇게 같이 성당으로 들어가 한바퀴 빙 둘러 보면서 사진도 찍으라고 손짓을 자꾸 보냈다.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해서 성당 안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나오게 됐다.

 

 

성당 안을 보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닐 수 있지만 동네 할아버지가 이방인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는 게 인상깊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는데 쑥스러워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 컷 남겼고, 이렇게 또 하나의 스토리가 생겼다. 이런 게 여행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겠지.

 

 

마지막 마을부터 벨로라도까지 가는 길은 로그로뇨와 부르고스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럴 줄은 몰랐지만 가는 길 내내 고속도로가 함께 했다.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트럭들이 바로 옆에서 쌩쌩 지나다니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걸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 구간에서는 풍경에는 덜 집중하게 되고 앞만 보며 계속 가게 됐다. 마침 걷는 속도에 탄력이 붙어 좀더 빨리 걸을 수 있었다.

 

 

차들이 내뿜는 바람과 강하게 불어오는 역풍을 헤치며 가다 보니 벨로라도를 얼마 안 남기고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계속 오랫동안 평지를 걸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안 아프던 무릎 위 장딴지까지 통증이 올라왔다. 그래서 벨로라도를 눈 앞에 두고 쉼터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쉼터에서 벨로라도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런데 들어와보니 이전에 머문 곳들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규모도 소도시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진입로에 몇몇 건물들만 보였고 숙소까지 들어와도 그리 큰 느낌은 못 받았다.

 

벨로라도
벨로라도

 

나중에 광장을 둘러보니 이곳은 규모 있는 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동네도 조용한 편이고. 미리 정보를 모르고 와서 볼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오늘 머물게 된 알베르게는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였다. 내가 들어갈 때 딱 한자리 남아있었는데, 다른 건 괜찮았지만 와이파이가 안 되지 않아 숙소로 잡는 게 좀 고민이 됐다. 좀 생각을 해보다 와이파이는 밖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용하는 걸로 결정을 했다.

 

오늘 저녁은 괜찮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대충 빵으로 때우고 싶지는 않았다. 숙소를 나와 마을을 둘러보다가 식사하기에 마땅한 곳을 찾았다. 물론 와이파이도 되는 곳이었다. 순례자 메뉴를 시킬까 하다가 빠에야가 눈에 띄었다. 가격을 보니 단일메뉴치고 비싸게 느껴졌지만 다른 메뉴는 잘 모르고 이곳 빠에야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시켜보았다. 

 

음, 맛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이것까지 빠에야를 먹어본 게 세번이었는데 그 중 두번째 정도? 이전에 먹었던 빠에야가 맛도 가격도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와이파이 잘 터지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순례길에서 자주 마주친 브라질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갑게 눈인사를 나누고 나서 오늘 일정을 되돌아보았다. 다리가 전체적으로 아팠던, 조금은 피곤한 일정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도착하여 반가운 순례자도 만나고 세번째 빠에야도 먹으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으니 뭐 이정도면... 그런데 아마도 앞으로는 레스토랑에서 빠에야를 먹는 일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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