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밤까지 산티아고 이후 일정을 정하지 못하다가 새벽에서야 묵시아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급하게 결정한 것에 비해 묵시아행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촉박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 순례길에서 몇번 마주쳤던 한국인 아줌마였다. 여기서 또 만나게 될 줄이야. 역시 여기는 가는 곳이 다들 비슷해서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녀는 곧 한국으로 가기 때문에 하루동안 묵시아와 피스테라를 다 보고 산티아고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탔고,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걷지 않고 목적지로 이동하게 됐다. 편하게 앉아 느긋하게 산티아고 시내를 구경하며 빠져나갔는데 걸을 때와는 또다른 시점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약 2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풍경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건만 따뜻한 햇살 덕분인지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계속 버티다 시내를 벗어난 지 얼마 안되어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 깼고, 주변 풍경에 다시 집중을 했다. 보이는 풍경이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걸을 때 보던 마을이나 숲, 교회와 바 등의 모습들이 버스로 지나치며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한꺼번에 조망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어느 순간 바다의 모습이 살짝 들어왔다. 여기와서 처음보는 바다에 흥분되는 게 느껴졌다. 설레기도 하면서. 살짝 모습을 보이던 바다는 곧 항구와 함께 완연한 모습을 드러냈고 얼마 후 우리를 태운 버스는 묵시아에 도착을 했다.

 

묵시아
묵시아

 

바다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기는 했는데, 여기까지 걸어서 오다 바다를 봤으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감격스럽지 않을까 싶은. 하지만 난 버스를 선택했기에 이를 통한 느낌을 즐기기로 했다.

 

묵시아는 조용한 항구도시였다. 마침 날씨도 화창하여 푸르른 바닷물은 햇빛에 비쳐 반짝거렸다. 도착한 후 일단 숙소를 먼저 잡기로 해서 같이 온 아줌마와는 이따 만나면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얘기하고 헤어졌는데 길이 엇갈렸는지 그후 만나지는 못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예전에 받아놓은 지도앱을 처음으로 이용하여 알베르게를 알아봤다. 그 중 깔끔하고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고, 여러 군데를 둘러봤지만 결국 그곳을 선택했다. 관리인이 친절하게 맞아준 것도 끌린 이유 중 하나였다.

 

묵시아-알베르게
묵시아 알베르게

 

숙소에 배낭만 내려놓고 동네탐방에 나섰다. 일단 바닷가 쪽으로 동네 한바퀴를 쭉 돌기로 했다. 그때부터가 순례길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느긋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후 이틀간 구경하고 증서받고 미사보고 점퍼사고... 계속 이것저것 하다보니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묵시아에 와서 푸른 바다를 감상하고 한적하게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때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조용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있었다.

 

 

바다를 감상하면서 언덕의 가장 높다란 곳으로 올라가 주위를 조망했다. 한눈에 사방이 내려다보였다. 동화 같이 예쁜 집들도 좋았지만 저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대서양의 수평선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한참을 그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저 너머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이런 풍경들이 보며 재충전되는 느낌을 받았고 여기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왔으면 이렇게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내가 선택한 것에 집중하며 만끽하는 게 제일이다.

 

 

바다의 내음과 소리를 감상하며 언덕을 내려와 동네를 마저 돌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빵 조금 먹은 것 빼고 아직까지 먹은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근처 마트에 들러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사려고 갔는데 아뿔싸! 문이 닫혀있는 게 아닌가. 여기는 도시가 아니어서 마트도 시에스타를 적용하는 것 같았다. 좀 허탈하긴 했지만 일단 숙소로 돌아와 주방에 있던 빵으로 허기를 살짝 채운 후 빨래와 샤워를 했다. 빨래한 것은 테라스로 올라가 널었다. 오랜만에 햇빛이 있을 때 빨래를 말리니 기분이 좋았다. 별거 아닌데 이런 걸로도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를 향했고, 관리인이 이제 마트 문을 연다고 해서 밥종류의 조리된 음식과 필요한 것들을 사왔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맥주와 같이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물론 배가 고픈 상태여서 뭘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일몰을 보러 가려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서둘러 먹고 밖으로 나갔다. 막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날은 저물고 있었고, 해를 보려면 좀 걸어가야 했다. 이미 해가 넘어간 건 아닐까 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렇게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해가 막 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지나자 해는 밑에 깔려 있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해를 보기는 했지만 해 지는 모습을 충분히 즐기지 못해 좀 아쉬웠다. 제대로 일몰을 보려면 적어도 30분 전에는 와서 자리잡아야 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한참 동안 노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본 바다와 마을도 낮과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감상을 하다 낮에 보았던 방파제를 따라 쭉 걸어보기로 했는데 난데없이 갑자기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나 시끄럽게 얘기를 하며 뒤에서 계속 따라왔다. 조용하게 걷고 싶었는데 아쉬운 대목이었다.

 

묵시아-야경
묵시아의 야경

 

숙소로 돌아와서 테라스에 올라가 주변을 가만히 감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거기서 밤하늘의 별도 볼 수 있었다. 마을의 불빛들이 많다보니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졸음이 밀려왔다. 그대로 침대에 몸을 묻고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하게 되었다.

 

묵시아에 온 건 참 좋은 선택이었다. 휴양지에 온 것처럼 한적하게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오감으로 느끼며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아득했던 수평선의 모습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일몰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아쉬움은 피스테라에 가서 채우기로 하자.

 

내일 묵시아와 피스테라 구간을 걷는 것도 기대가 된다. 어떤 길과 풍경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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