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0일 토요일

 

오늘 조사를 하러 가는 곳은 시내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동면에 있었다. 사전에 지도를 살펴보면서 춘천이라는 지역이 시내만 보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외곽 지역을 고려하면 결코 작은 면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동면을 향해 한참을 달려 갔다. 이번에 살펴본 유적은 다음과 같다.

 

유령약천 > 부사 선정비 > 남근석 성황당 > 물로리삼층석탑 > 몰로리사지 > 산신각 > 한천자묘 > 물로리미륵불 > 칠성목 > 상걸리 돌탑

 

 

본격적인 답사에 앞서 유령약천을 들렀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넓게 펼쳐진 산의 풍경이 기분좋게 답사객을 맞아주었다.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빛 자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좁게 나 있는 소로를 타고 올라가보니 약수터가 나왔다. 유령약천이라 불리는 곳이였는데, 왜 이름이 그렇게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을 들여다보니 물이 아주 조금씩 흘러내리기는 했으나 대체로 고여 있는 물이어서 마시기에 적합해보이지 않았다. 

 

 

약수터 옆 돌 위에는 자그마한 부처님 상과 표범 같이 생긴 동상이 한데 놓여져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약수물을 떠 놓고 치성을 드리지 않았을까?

 

 

약수터를 떠나 이동하는 길에는 5월의 신록이 무성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길 한편에는 양봉을 위한 상자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논밭이 보이는 곳에서 크지 않은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이 비석이 부사 선정비였다. 날씨가 맑고 화창해서인지 비에 새겨져 있는 글씨가 오늘따라 잘 보인다고 했다. 영세 비망비의 성격을 가진 비로, 이 사람에 대한 선정비가 여기 말고도 여러 군데에 분포해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을에 있는 대장간이었는데, 오래 전에 이미 무너져내렸다고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알려줬다. 그래서 근방에 남근석이 있는 성황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답사를 이어갔다. 남근석은 말 그대로 남성의 성기를 닮은 돌이었는데, 누군가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남근석 뒤쪽으로는 성황당이 있었다. 성황당은 서낭당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장소이다. 아까 약수터에서 봤던 곳보다는 좀 더 규모가 있었다.

 

 

이렇게 살펴보고 물로리에 있는 은주사로 향했다. 이곳에는 절터와 석탑을 비롯해 다양한 유적들이 모여 있었다. 은주사로 가는 길에 파란 하늘 아래 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가리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은주사에 들어와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물로리 삼층석탑이었다. 사실 석탑이라고 하기엔 뒤죽박죽 쌓여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후대의 사람들이 무너져 있던 석탑을 별 고려 없이 다시 쌓아 이렇게 둔 게 아닐까 싶다. 

 

 

석탑 근처에는 자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백송이었다. 백송은 원래 중국에서 서식하는 나무로, 어렸을 때는 나무 기둥이 국방색마냥 얼룩덜룩한 색깔을 띤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색깔이 점점 하얗게 변해가기 때문에 백송이라 불리는데, 여기서 백송을 보게 될 줄이야.

 

 

석탑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물로리사지가 있었다. 지금은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나무로 둘러싸인 가운데 부분에 돌과 흙이 남은 것을 보고 절터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로리 사지에서 올라가는 길에 산신각이 나왔다. 산신각은 절에서 산신을 모신 집을 말하는데, 여기서 산신은 단군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절에는 이 산신각이 꼭 있다고 하는데, 단군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전해내려오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산신각 옆에는 누군지는 몰라도 정성스럽게 쌓여져 있는 돌탑도 있었다.

 

 

산신각을 지나 들린 곳은 한천자 묘였다. 이곳에는 한천자 묘와 함께 여기에 묘가 묻히게 된 유래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설명에 따르면 실상 이 묘는 한천자 묘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묘인데, 왜 한천자의 묘라고 했을까? 아마도 한천자라는 위명을 살리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한번 추정해본다.

 

 

한천자의 묘까지 살펴보고 내려오니 절터 근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오늘이 코로나 때문에 미뤄졌던 부처님 오신날을 대신하는 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 덕에 우리도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절에서 먹어서 그런지 떡과 식혜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절터에서 내려오는 길에 물로리미륵불이 서 있었다. 만들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은 하얀 불상이 화창한 하늘 아래 은은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칠성목. 일곱 그루의 커다한 소나무가 품걸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품걸리 마을사람들이 마을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이 일곱 그루의 나무는 북두칠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칠성목의 위용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원래 예정된 곳은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돌탑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돌탑은 길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돌탑의 형태를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겨울에 와야 그 형태를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돌탑 근처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길가에는 거기서 키우는 듯한 개들이 여럿 보였다. 그 중 한 마리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쫄랑쫄랑 다가오면서 마치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사를 마치고 산을 넘어 돌아가는 길에 전망대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넓게 펼쳐진 산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탁 트인 풍경에 마음까지 절로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로는 아까 보았던 가리산의 봉우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해서 동면에 있는 품걸리와 물로리 답사를 마쳤다. 거리가 있어서 평소보다 다소 늦게 끝났지만 5월의 끝자락에 화창한 날씨 속에서 기분 좋게 돌아다녔던 하루였다. 이번 답사를 끝으로 전체 조사는 마무리되고 앞으로는 개별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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