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는 침대로 밤새 밝은 가로등 빛이 정면으로 비췄다. 눈을 감아도 그 빛이 눈 속으로 들어와 환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사모스의 숙소는 추웠다.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려웠고, 침낭 밑부분을 열어두면 찬바람이 온몸으로 술술 들어와 감기 걸리기 십상일 것 같아 침낭을 꼭 잠그고 잤다. 그러다보니 다리를 쭉 필 수 없어 답답했다.

 

눈부심과 추위, 몸의 불편함이 합해져 계속 뒤척이는 잠자리가 이어졌다. 잠을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게 자고깨고를 반복했고, 결국 새벽에 일어나고 말았다. 더 자려고 하다 가만히 누워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생각이 정리되는 게 있었다. 잠을 못 자 깬 것이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전화위복이라 해야 하나.

 

숙소를 나와 출발하려고 할 때 밖은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의를 꺼내고 나가려고 하니 비가 딱 그치는 것이 아닌가. 좋아라 하며 우의를 얼른 집어 넣었다. 우의를 입고 안입고의 느낌은 많이 차이가 난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순례길은 아직 어둑하긴 했지만 상쾌했다. 전날 나가는 길을 봐두었기 때문에 다른 쪽 길로 한번 가보았다. 마을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했는데, 가다가 까미노로 이어지는 길이 없으면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가다보니 역시나 중간에 길이 막혀 돌아가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변을 자세히 보니 빠져 내려가는 길이 있는게 아닌가!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비슷했다. 편의성을 생각하면 빠지는 길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딱 있었던 것. 그렇게 기분 좋게 사모스를 떠났다.

 

 

길은 초반에 도로를 따라가다 마을들을 지나면서 점점 산속으로 들어갔고, 사리아 근처에 갈 때까지 산길이 이어졌다. 이번 여정의 특징은 들리는 마을마다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1시간 정도 걷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서 그런지 가볍게 갈 수 있었다. 날씨가 계속 흐려 이따금 실비를 뿌렸고 땅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길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걷다보니 2시간이 지나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마을에 바가 있으면 식사도 하고 쉬어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런데 들리는 곳마다 조용하기만 하고 바는 보이지 않는게 아닌가. 오래 걸었지만 아직 힘들다는 느낌은 없어 일단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 하고 걸음을 이어갔다. 오늘은 사진찍느라 정신이 팔릴 정도의 구간도 없어서 걷는 속도도 평소보다 빨랐다.

 

 

인적 없는 마을만 계속 나타나더니 결국 3시간이 지나도록 쉬지 못하고 걷게 되었다. 이렇게 쉼없이 오래 걸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다지 힘든 느낌이 없는 게 신기했다. 물 한잔 먹고 나온 게 전부라 배도 고팠는데 말이지. 체력이 그만큼 늘은 것일까? 아니면 자연풍경과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줘 배고픔도 뒤로 하고 오랫동안 걸을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래도 이제는 식사도 하고 쉴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사리아에 가까워진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 전에 한번은 쉬고 싶었다. 산길을 빠져나오고 조금 가다보니 알베르게가 하나 나왔다. 식사 표시도 되어 있어서 여기서 잠깐 쉬어가야겠다 했는데, 가보니 문을 닫았다는 게 아닌가.

 

 

잠깐 쉬기라도 하려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왔던 하나 남은 에너지바를 꺼내 먹었다. 애초에 10일차, 20일차, 30일차에 한번씩 비상용으로 먹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을 보니 재밌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쉬며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좀 더 가다보니 사리아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개 때문에 선명하진 않았지만 도시의 느낌은 충분히 났다. 그때서야 다리에 조금씩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분 좋게 사리아를 향해 갔다.

 

사리아
사리아

 

사리아에 도착했을 땐 날이 맑아져 있었다. 입구 근처에 있는 안내센터에 들러 지도와 정보를 얻고 일단 공립 알베르게부터 살펴보러 갔다. 베드수가 많지 않다고 나와 있어 빨리 살펴보고 싶었는데, 도착했을 땐 문이 잠겨 있었다. 1시부터 오픈이었는데, 아직 막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먼저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근처 식당으로 가서 어제 맛있게 먹었던 프랑스식 또르띠아를 시켰다. 어제와는 달리 야채는 나오지 않았고 전날 먹어본 것보다 맛은 떨어졌지만 배고파서였는지 그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먹으면서 숙소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니, 두 군데 사립 알베르게 추천이 있었다. 염두에 두고 1시가 넘어 공립 알베르게로 다시 가보았다. 생각보다 시설이 괜찮아서 더 둘러볼 생각하지 않고 등록을 했다. 여분의 옷이 덜 마른 상태여서 말려 놓고 주변 탐방을 나섰다. 

 

우선 큰 마트로 가서 물 한병을 사고, 남은 초콜릿을 뜯으며 입구지점으로 갔다.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거기서부터 슬슬 걸으며 구경을 했다. 날이 다시 흐려지기는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었다. 강과 성당, 건축물과 주위 풍경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돌십자가가 있는 조형물을 발견했다. 이곳에는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뷰포인트였다.

 

사리아-전경
사리아 전경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리아의 모습을 감탄하며 즐기고 있는데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다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조금 서둘러 출구 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수도원으로 보이는 건물에 다다랐다. 사진은 낼 나가면서 찍자고 생각하며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건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린 아이들이 가방 매고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이곳이 학원을 겸하는 곳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둘러보고 성곽 쪽으로 빙 둘러서 숙소로 돌아왔다. 빨래와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따뜻한 물이 안 나오고 찬물에 가까운 미지근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빨래할 때까지는 괜찮았으나 샤워를 하려고 하니 막막해졌다. 가뜩이나 비도 와서 추웠는데. 빨래하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간 건 처음이었다. 드디어 샤워차례! 첫 느낌은 차가웠으나 하다보니 나름 괜찮았다. 좀 춥기도 했지만 시원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치고 나오니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그 시간대에 행사 같은 것을 한다는 얘기가 생각나 한번 가보기로 했다. 거리가 꽤 멀었고 비는 그쳤지만 상당히 쌀쌀해서 맨발이 살짝 어는 느낌도 났다. 설상가상으로 도착한 수도원은 문이 닫혀 있었고 행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어둡고 추워지기 전에 필요한 물품이나 사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 옷을 더 껴입고 나왔다. 

 

일단 전날 부서진 전압기를 사러 갔다. 봐둔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엔 전압기만 따로 팔진 않았다. 거기 여자분이 맞은 편에 전압기만 따로 파는 곳이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런 작은 친절이 그 도시의 인상을 결정할 수도 있게 되는 것 같다. 맞은편 가게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이었다. 웬만한 것은 다 있을 것 같은 이곳에서 드디어 원하는 것을 찾았다. 기분좋게 구매하고 상점을 나와 마트로 가서 저녁거리와 기타 필요한 것을 샀다.

 

그렇게 필요한 것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마트에서 사온 빵을 뜯으며 여기서도 이렇게 저녁을 먹는구나 싶었다. 평소 먹는 것에 그렇게 신경쓰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맛있는 것을 먹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사리아에는 뽈보가 맛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렇게 마트에서 산 1유로 짜리 빵으로 저녁을 때우니 이때는 좀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도착하기 전에 뽈뽀는 꼭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외국인 남자 2명이 자기네가 사온 와인을 한잔 건넸다. 오, 맛이 좋았다. 그렇게 와인의 기운도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형광등의 불빛과 아래층 주방에서 크게 떠드는 목소리에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사리아에서 숙소를 사실 여러모로 잘 고른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묵었던 곳 중 처음으로 찬물로 샤워를 한 것도 그렇고 애초에 관리인의 성의 없는 태도를 봤을 때 그 느낌을 잘 알아차리는 건데... 뭐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시설이 좋은 게 기분 좋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사림이 그곳의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여기 관리인은 숙소에 대한 책임의식도 느껴지지 않았고, 일을 억지로 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들어와 공간을 살펴볼 때 재촉하는 듯한 소리를 했던 것 그리고 와이파이를 물어보려고 몇 번이나 불러도 응답이 없었던 것은 나중에 생각해보니 모두 관리인의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 숙소에 대한 느낌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는데 이미 9시부터 문이 잠겨 나갈 수가 없었고, 밤 10시가 넘어도 공용공간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잠자는 것을 방해하도록 둔 것을 보면 시설에 대한 관리를 안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음, 그러고보니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본 건 처음인 것 같네. 사리아에 머무는 순례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사리아는 산티아고 전 마지막 도시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도착하려고 일정을 조절해서 들어왔다. 도시에 머문 시간이 길긴 했지만 시간은 금방 갔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하고 볼거리를 살펴본 것은 좋았으나 숙소에서 받은 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순례길의 일부이다. 여기니까 경험하는 것들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백여 킬로 정도 남은 산티아고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끝까지 무리하지 않고 순간순간 즐기면서 가보련다. 후회없이,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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